작은책방 유랑기 2 - 경주 황리단길의 독립서점, 어서어서

작은책방 유랑기 2 -

경주 황리단길의 독립서점, 어서어서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다 보니 경주 독립서점 ‘어서어서 서점’을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년 전인가 경주로 학회를 갔을 때 황리단길에 독립서점이 있다고 해서 시간을 쪼개 꾸역꾸역 찾아갔던 기억이 났다. 이름이 왜 ‘어서어서’지? 했더니만 간판에 있는 두 문장,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줄인 이름이구나 깨닫고는 참 기발하다 싶었다. 무엇보다 식당이나 카페, 기념품숍들이 한껏 즐비한 황리단길에 서점이 있다는 자체도 신기했고 문학전문 서점인 데다 그 흔한 카페나 굿즈 하나 없이도 작은 서점이 없어지지 않고 꿋꿋이 잘 버티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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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10평 남짓?)이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곳이 많았다. 주로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이라 옛날 책방의 정취가 물씬 났다. 오래된 풍금 위에 수동카메라가 놓여 있고 슬쩍 책도 한 권 얹어져 있다거나 옛 주판과 궤짝이 능큼스레 한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몇 권의 책이 함께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예전 할머니 집에서나 보았음 직한 갈색의 옛날 찬장에 눈을 돌리니 여러 장식품 아래 한 칸은 여러 권의 책이 차지하고 있었고, 하루키의 책들과 앙증맞은 미니언즈 피규어들이 같이 놓여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한 켠도 낭비 없이, 볼 만한 물건이 있으면 또 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서점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 섬세한 배치에 문득 감동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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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주로 소설과 시집이 위주였다. 서점 주인장이나 고정 고객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추천 도서나 시집, 소설을 디스플레이 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이번 주 추천영화도 함께 붙여둔다는 것. 지루하지 않게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재미도 소소해 보였다. 시집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게도 익숙한 시인들의 책이 색색깔로 전시된 모습이 예뻤다. 베스트셀러라고 아예 외면하지는 않아서 (이번 인터뷰에서 책방 주인장은 “서점도 사업이라 일정 부분 타협을 해서, 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역사, 페미니즘, 그림책 등도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책방 중앙에는 많은 사람이 요즘 즐겨 읽는 책들로 가득했다. 나도 그때 이 중에서 한 권을 골라 나왔다.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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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약국에서 파는 약 봉투처럼 생긴 황색 갱지로 만든 봉지, 이름도 ‘읽는 약 책 봉투’인 봉지에 책을 담아준다. 책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길 바라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이 봉투 덕분에 이 책방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주인장은 책상에 앉아 책을 사는 사람의 이름을 봉투 앞에 직접 써주면서 책방에 왜 왔는지,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살금살금 물어봐 준다. 말하다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달까. 그냥 그저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라 정말 책에 관해서 이야기하러 서점에 온 느낌이 나서 좋았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이것저것 질문해서 손님의 취향을 파악한 후 적당한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어서어서 서점의 특징이 바로 북 큐레이션이기도 하다. 대형 서점에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시스템으로 돌려받은 책 추천이 아니라, 내가 좋았던 책이나 작가를 얘기하면 서점에 있는 책 중 하나를 맞춤형으로 추천받는 과정이 아마도 나만의 체험을 중시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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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마음을 케어 해주는 책방. 동네서점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껏 안은 채 서점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특히나 경주처럼 지역주민보다는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이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해본다. 이렇게 지역에 뿌리내리는 동네서점이 많아지길 마음 깊이 바래며 책방 문을 나섰더랬다. 어디를 가도 좋은 책방이 있어서 마음껏 책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늘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진심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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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인장은 이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2호점도 계획하고 있단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이야기다. 꼭 성공하길, 그리고 2호점이 생길 때쯤엔 경주에 한 번 가서 들러봐야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찾아보니 주인장이 책방 설립부터 운영까지 노하우를 담은 책도 펴냈다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어서어서)> (양상규, 블랙피쉬 출판, 2020).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해보시길. 

 

어서어서 서점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278-1 

https://www.instagram.com/eoseoeo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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