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말하기
심심 글을 써야 할 때가 되면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써야 하나 생각하다 보면 늘 아기에 관한 생각으로 머문다. 왜 나는 아기에 관한 생각이 날까 또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만큼 아쉬움과 후회가 많아서일 것이다.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딸을 낳고 키우면서, ‘아기 낳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큰다.’라는 어른들의 말을 찰떡같이는 아니지만 위로 삼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참 원망스러운 말이다. 절대 알아서 크지 않았고 과거 엄마의 실수가 딸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아픔일 때도 있다. 그때의 육아서는 먹이는 것, 씻기는 거 위주의 이야기들이라, 엄마가 정서적으로 담아주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기에게 말을 걸어주고, 아기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가 없었다. 물론 그런 책이 있었는데 알아서 크는 줄 알고 무심하게 지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백일 된 손자가 있는 친한 언니와 점심을 먹는데 그 언니가 ‘손자가 말을 너무 잘한다.’라고 하는데 순간, 이 언니가 ‘내 아이는 천재다’ 이런 태도인가 싶어 은근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고플 때, 놀 때, 졸릴 때 옹알이가 다 다르며, 엄마랑 놀면서 말을 하는 아이처럼 한참 수다를 떤다고 한다. 아이고 어찌나 샘이 나는지…. 아이가 말한다는 그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로 보지 않고 인격체로 보는 언니의 태도며, 엄마와 할머니에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백일쟁이에게도 샘이 났다. 역시 알고 키워야 했는데. 그 언니 딸이 몇 년 만에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리암 슈제이의 ‘아기에게 말하기’ 책을 선물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 책은 프랑스 산부인과 병동에서 정신분석적 해석이나 설명으로 산모와 신생아를 치유하는 정신분석가가 쓴 책이다. 산모가 자신의 개인사 때문에 신생아와 적절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아기는 젖을 먹지 않거나, 계속 울거나 설사를 하는 등 몸으로 증상을 표현하기도 하고, 엄마의 불안을 감지해도 신체화 증상을 보인다. 그런데 슈제이 박사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신생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 주면, 아기는 젖을 먹고, 울음을 그치는 등 신체화 증상이 완화되는 기적 같은 일들이 생겼다. 아기가 임신과 출산 과정 중에 생긴 고통이나 어려움을 말을 통한 사실이나 정서들로 설명해 주는 이 작업은 아픈 아기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엄마와 아기를 연결해 주는 일이었다. 물론 아픈 아기들뿐 아니라 건강한 아기에게도 말을 걸어주는 것이 그때그때 생기는 아기의 불안을 달래주고 안도할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는 아기에게 말하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아기가 우울을 경험할 확률이 줄어든다고 한다. 말하기는 산모에게도 아기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자원을 발견하게 하고, 지지해준다.
인상 깊은 사례 중 저체중으로 시달리는 생후 2일 된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는 잘 먹지 않아 빈사 상태라고 묘사될 정도여서 부모는 거의 마비 상태로 고통스러워했다. 슈제이 박사는 그 아기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먹어야 한다. 선택은 너에게 달렸지만, 부모님들은 너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아기의 피부와 엄마의 피부를 직접 접촉하도록 조언하며, 그렇게 하면 아기는 지지와 안전감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아기는 45분 후에 우유를 먹었다.
아니, 생후 2일 된 아기에게 어른에게나 함 직한 이런 말을 하고, 그 아기가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기를 선택하고. 만약 알아듣지 못한다고 여기고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기는 어땠을까?
여러 사례에서 아기에게 언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존중해주는 순간들은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 아픔, 경외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참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내 안에 내가 아직 미처 알아주지 못하거나 고통받고 있는 줄도 모르는 나의 마음(아기)에 관심을 두고 말을 걸어주면, 그 아픈 마음이 통합을 이루어 나 역시 새롭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