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주인장을 꿈꾸는 변혜정 조합원
빛나는 꿈의 계절이라고 노래한 봄날이 한참 무르익어 갑니다. 한바탕 마음을 흔들던 벚꽃이 지고 꽃보다 화려한 연초록이 자태를 뽐내는데도 그 끈질긴 코로나는 연일 수백 명 신규 환자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를 작은책방 나들이로 이끄는 변혜정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작은책방 유랑기’ 글 아래 실린 사진 속 모습을 기억하며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처음인가? 싶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A: 산업 안전보건 컨설팅을 합니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을 평가 분석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일이에요. 내년부터 중대 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는데요, 그것과 연관이 많은 일이지요.
Q: 어떻게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A: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산업보건을 공부했어요. 제가 71년생 90학번인데 제 뒤로는 운동권이 없어지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에 있는 학번이었어요. 대학 3학년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어요.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살다가 한 달 반 동안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생물학을 계속할까 다른 공부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행 말미에 ‘사람들에게 직접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오자마자 대학원을 알아보다가 대학 선배가 다니는 대학원에 미국에서 산업보건을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있다고 하셔서 고민 끝에 진학을 결정했어요.
Q: 대학원 졸업 후에 맞이한 당시 현장은 어떠했나요?
A: 환경안전보건이 사회의 주류는 아닌지라,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도 사회의 주류가 아닌 주변으로 계속 살 수 있을까 고민은 많았지만, 사실 하는 일은 재미있었어요. 94년 당시 교수님을 따라 공장을 다녀보면 현장도 많이 열악했고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싶었죠.
졸업 후 공기업에 취업해서 현장으로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현장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세상에는 자기 건강을 상해가며 일하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사람들에게 내가 배운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회사에 다니면서 야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데, 어려운 생활 중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고요. 20대 때 겪었던 이런저런 경험이 제 삶을 이쪽으로 이끈 것 같아요.
Q: 직장을 몇 번 옮기셨다고 들었어요
A: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즈음의 사회 분위기는 ‘안전보건’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는 때여서 취직할 곳은 공기업이 전부였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공기업에 다니다가 LG에서 일하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하는 마음에 박사과정을 하고 난 후에는 삼성 SDS에서 9년 정도 일했어요. 그 후 인하대 환경안전 융합 전공 대학원에서 산학협력 교수로 잠깐 있다가 지금은 쿠팡에서 EHS(환경안전보건)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회사가 일정 규모가 되면 이런 조직이 있어야만 관리가 가능해요. 쿠팡이 코로나19 때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어 대응할 조직을 만들게 된 거죠.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 분야 일을 하고 있어요.
Q: 대학에서 다시 현장인 쿠팡으로 옮긴 까닭이 있나요?
A: 처음 쿠팡과 학교에서 동시에 제안이 왔을 때는 좀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학교를 선택했더랬어요. 여유롭게 지내다 보니 다시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그동안 주로 컨설팅만 했지, 그 컨설팅을 받아서 현장에 적용하는 일은 해보지 않았거든요. 이번에는 현장에서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몇 달 겪어보니 컨설팅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공부할 시간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현장은 역시 매일매일 전쟁이더라고요. 바쁘고 쉴 새 없는 매일 이지만 쿠팡에서 환경안전보건 관리를 제대로 하면 다른 동종업체에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미를 두며 지내고 있어요.
Q: 택배 노동자 문제가 사회에서 관심을 끌고 있지요?
A: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많이 늘어 택배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게 되고,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분들이 택배 노동자로 많이 들어오다 보니 그분들의 평균연령도 같이 높아졌어요. 업무도 주야간으로 돌아가고요. 저는 야간업무 하시는 분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프로그램과 그분들의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상담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아마 코로나19가 끝나도 소비자들이 택배에 익숙해져서 배송업무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아요. 일례로 이마트 같은 곳도 배송을 키우고 있으니까요. 배송업무로 인한 안전보건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해결하기 쉬운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Q: 사진에 관심이 많고 사진 학교에 다니셨다고 들었는데요?
A: 사진을 좋아하는데 우연히 한겨레문화센터의 강재훈 사진 학교를 알게 되어 바로 등록했어요. 그때는 프로젝트 때문에 송도에서 살 때였는데 주말에 일이 많아 힘들었어도 사진 학교에 다니는 게 큰 기쁨이었어요. 제가 60기인데요, 길목조합원 중에 강재훈 사진학교 출신들이 많이 있지요? 바빠서 사진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지만 거기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것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Q: 사진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A: 가장 단기적으로는 주제를 정해서 매년 열리는 강재훈 사진 학교 단체전에 참가하는 거예요. 한 번도 못 해봤거든요. 우선 단체전에 몇 년간 참가하고 나중에 실력이 되면 개인전도 열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말 쓰시면 안 돼요. 다른 분들은 다 실력이 탁월하신데 제가 이런 얘기 하면 다 비웃을 거예요. 호호호.
Q: 길목인에 연재하는 ‘작은책방 유랑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 글을 연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강재훈 선생님이랑 60기 몇 분이랑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일정에 없던 ‘책방 무사’라는 독립서점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책방 무사는 가수 요조가 운영하는 독립서점인데, 요조가 자기 책도 전시하고 한 달에 한 번 미니 콘서트를 열어 공연도 하고, 좋은 분들과 맥주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이에요. 그때 홍 이사장님이 제가 독립서점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아시고 아마 글을 연재해 보라고 권하신 것 같아요. (역시 우리 이사장님!)
Q: 독립서점이 무엇인가요? 작은 책방이나 전문서점과는 다른 것인가요?
A: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같이 대량유통망을 통해서 하는 서점이 아니라 책방주인의 성향에 따라서 주제를 정해 책을 팔고, 책뿐 아니라 서점이라는 것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그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는 곳이 독립서점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요즈음은 약간 작고 자기 개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책방을 그냥 전부 독립서점이라고 하는 것 같긴 해요.
Q: 특색 있는 독립서점을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A: 고양이책방 슈뢰딩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고양이 관련 책만 팔아요. 고양이 굿즈와 고양이 사진도 전시하고 고양이에 관한 행사도 열고요. 그곳은 전국의 고양이 집사들이 모여서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 주인장은 고양이 집사들의 우상이에요. 그 서점은 다른 주제는 관심이 없어요. 의외로 잘 되어서 강릉에 2호점도 냈다고 하고요. 연신내에 있는 니은 서점이라는 곳은 ‘세상 물정의 사회사’라는 책을 쓴 노명우 교수님이 운영하는 곳인데 요즘 독립서점이 굿즈나 커피를 팔아서 이익을 얻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책만 팔아요.
Q: 독립서점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이 있나요?
A: 제가 책을 좋아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안 읽잖아요.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책이 생활처럼 늘 곁에 있는 그런 삶이요. 저는 살면서 책 덕분에 용기를 얻은 적이 많아요. 힘들 때면 묘하게 제 맘에 와닿는 책을 읽게 되고 그래서 ‘잘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고요. 저의 그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서점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 독립서점에 기대하는 바가 있겠네요?
A: IT가 발달하고 e북도 늘어나고 그래서 문자를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어디나 있는데, 서점이라고 하는 공간이 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점은 책을 매개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서 소통하는 계기를 만드는 곳이잖아요. 외국도 이런 시도들이 많고 관련 책들도 많아요. 제가 파리에 갔을 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역사가 백 년이 넘는 유명한 서점을 가보았어요, 좁은 공간에 책이 꽉 차서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스러울 정도였어요. 헤밍웨이가 앉았던 의자며, 유명한 작가들이 숙식하면서 글도 쓰고 한 흔적들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지요. 이번 코로나19 때 문을 닫을 뻔했는데 지역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살렸다고 해요. 그들에게는 그 서점이 인생에서 없으면 안 되는 곳인 거지요. 우리나라에도 역사가 있는 그런 서점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Q: 어느 지역에서 어떤 주제로 독립서점을 열 생각이신가요?
A: 원주에 가서 서점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원주에 친구가 있어서 한 해에 두어 번씩 갔었는데, 치악산 자락에 박경리 씨가 사시던 동네가 공기도 좋고 안온하고 좋더군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서울도 가깝고요. 저는 소설을 좋아하고 B급 스릴러를 특히 좋아해요. 그래서 추리소설을 주제로 하는 서점을 열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을 가득 두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 인생 제2의 꿈이에요.
Q: 앗! 사람들이 많지 않으면 수익이 염려되지 않을까요? 독립서점이 서점주인장의 관심사를 반영한 특화된 서점이라면 고객층이 한정되겠네요? 그런 것을 지향하는 건가요?
A: 그렇지요. 저는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너무 다양한 책을 두면 오히려 사람들이 오지 않거든요. 그런 책은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팔고 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교류 하면서 문화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요즈음은 도서관이 잘 되어있는데, 지역 도서관이 대형유통이 아니라 지역 책방에서 책을 산다든가 해서 서로를 살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독립서점의 주요 고객을 책을 많이 읽지 않는 20, 30대로 둔다고 들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요?
A: 제가 ‘알라딘 서재’에서 20년 가까이 활동을 해오면서 매번 알라딘이 내는 통계를 봐오는데요, 알라딘의 통계가 전부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책을 많이 사는 세대는 40대 여성이 많아요. 30대 초중반은 어린이 책, 40대 여성들은 소설을 많이 사고요. 남자들이 책을 많이 안 사고 읽는다면 주로 철학책, 사회경제 서적이 많지만 소설은 잘 안 읽는 것으로 나와요. 사실 20, 30대가 책을 사야만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홍대나 마포같이 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서점을 만들어서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오도록 하고, 책에 관심이 생기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문화적 콘텐츠 속에서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로 생각해요. 독립서점 대부분은 책을 팔아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명감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사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죠. 그래서 망하는 사람도 많아요. 책이 좋아서 무작정 서점을 여는 사람들은 3년 이내에 망한다고 할 정도로 쉽지 않죠. 서점 주인이 직업을 두 개 가지는 경우도 많아요.
Q: 작은책방 유랑기를 계속 연재할 계획이지요?
A: 전국의 작은 책방을 돌아보려고 해요. 제가 작은 책방에 관한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전국에 정말 유명한 독립서점들이 많아요. 서울 경기권보다 특히 지역에서 문화공동체로 자리매김한 훌륭한 서점들이 많아서 시간 날 때마다 그런 서점을 찾아가 보려고 해요.
Q: 덕분에 길목인 독자들이 호사하겠는데요?
A: 이번 기회가 너무 좋아요. 저도 책을 주로 인터넷으로 사기 때문에 서점을 예전만큼 가지 않게 되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야 되는 거잖아요. 어디를 갈까 어떤 서점을 가볼까 고르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그동안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곳을 찾아다니고 주인장을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고 책도 한 권 사서 읽고 하면 참 행복해요.
Q: 사협 길목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A: 홍 이사장님을 통해 길목을 알게 되었는데요. 학교 다닐 때 진보적이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모이는 것도 힘들고, 생각을 나누는 기회도 거의 없는데, 길목의 공감 편지나 길목인의 글을 보면서 ‘아, 여전히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구나’라 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즈음은 보수 진보하면 정치 이야기만 하는데 사실 생활 속에서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옳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왠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모태신앙이기는 한데 어떤 계기로 교회를 안 나가게 된 지 꽤 되었거든요. 그런데 향린교회에 가보니 다시 교회를 다닐 수도 있겠다, 다니고 싶은 교회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길목은 제게 좋은 인연이고 고마움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잘 참여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변혜정 조합원을 만나보니 사협 길목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힘을 얻고, 할 일을 찾고 다시 흩어져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길목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혜정 조합원이 발품 파는 덕에 나는 앉아서 전국 유명 독립서점을 구경하는데, 문득 우리 동네에도 독립서점이 있을까?’ 기웃거리다가 영어책을 팔면서 작은 공연도 열고 외국인과 영어와 한국말 대화 프로그램도 여는 독립서점을 발견했어요. 여러분도 가까운 곳에서 독립서점을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