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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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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37 - <퀴어성서주석>을 읽는 재미

posted Jun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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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37 : <퀴어성서주석>을 읽는 재미

 

 

얼마 전 출간된 <퀴어성서주석>을 읽고 있다. 색다른 해석이 주는 깨우침과 도전만이 아니라, 최근 성서비평학의 성과에 기반을 둔 짜임새 있는 해석과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전통까지 포함된 풍부한 자료를 섭렵하는 재미가 크다. 가끔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로 오십여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동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함이 주는 여행의 묘미를 포기할 수 없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선 성서를 에로틱한 이야기로 만드는 저자들의 재치있는 불경(不敬)과 이유 있는 과장을 지나야 한다. 때론 견디고 때론 즐기면서. 예를 들어, 창세기를 안드로진(androgyne, 남녀동체)의 고대 신화에 빗대어 읽어낸 M. 코든의 해석은 익숙한 이야기를 색다른 풍경으로 채색한다. 게이가 된 족장들과 해방적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카리스마적 여성들, 전능한 신 ‘엘 샤다이’ 역시 안드로진 이미지를 띤다. 

 

이건 해석이라기보다는 주장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의심은 퀴어 해석에만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정작 날카로운 비판은 성서의 세계를 이분법으로 갈라 편협하게 만든 그간의 규범적 해석방법론에 먼저 붙여지는 것이 기독교 신학을 위해 이로울 것이다. 

 

불편한 독서의 보상은 폭넓은 해석 가능성이다. 퀴어 성서해석은 그동안 간과한 것, 아예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해설 자료에 기독교만이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 전통까지 포함되어 있어 교차 읽기가 진행될 경우 성서에 담긴 셈족 공통이야기는 새롭게 태어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첩 하갈을 파라오의 딸로 해석한 랍비 전통은 창세기에 나오는 그녀의 종속적인 모습을 새롭게 보게 하며, 신의 현현을 경험한 (창 21:17-19) 당당한 여성의 모습에 주목하게 한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이성애적 관점으로 읽을 때 이 이야기는 주인(보디발)과 종(요셉)의 신뢰 관계를 깨뜨린 여주인의 어리석음과 욕정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녀를 ‘빛나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이름 ‘줄라이카’(Zulaikha)로 부른 이슬람 전통은 남편 보디발의 손아귀에서 요셉을 구출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연대의 파트너십을 이루는 여성으로 재탄생시킨다. 

 

퀴어 성서해석이 던지는 불편함에는 분명 전복과 해방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만이 아니라 진보적 자유주의자에게도 해당한다. 먼저, 보수적인 전통과 극명한 대척점을 이루면서 성서의 숨겨진 목소리를 들려주는 퀴어 해석에 주목해 보자. 

 

전통적 보수주의는 동성애 혐오를 마치 성서의 명령처럼 주장하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이야기로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룬 창세기 19장을 든다. 이들은 소돔이 멸망한 이유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동성애적 경향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 해석은 천사 손님을 강간하려는 소돔 사람들의 위협에 담긴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남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관통’하려는 폭력을 동성에 대한 욕망 때문으로 보는 왜곡, 이른바 ‘강간’과 ‘동성애’를 구분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강간의 도덕적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남성 중심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의미한다.

 

한발 더 나아가, 퀴어 해석의 특징은 창세기의 설화가 구성된 세계의 문화에 관한 이해에서 두드러진다. 이에 따르면, 고대 세계에는 현대적 의미의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이분법적 개념이 없었다. 남성이 성적 관계에서 관통하는 자로서 지배적 역할을 하는 경우, 그 대상은 여성과 (노예나 포로가 된) 남성을 가리지 않았다. 이 사실에 착안한다면, 남성을 성적으로 관통하려는 소돔 사람들의 폭력은 다르게 이해된다. 그것은 동성애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 방문자를 지배하려는 여성 혐오적 폭력, 다시 말해서 관통당한 남성의 특권(남성성)을 제거하여 그들을 퀴어로 규정하려는 폭력으로 보는 것이 옳다.

 

소돔에서 일어난 일을 ‘동성애자들의 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과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들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적 오류와 실패를 교정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거꾸로, 이 이야기를 ‘동성애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읽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해석이 허용한 혐오 범죄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퀴어 성서해석은 역사비평에 기초한 진보적 해석에도 영향을 준다.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누가 구성/편집했는지 알 수 없으며, 그 이야기를 담은 판본들 역시 다양하여 사실을 복원하는 최우선적 길을 말해 주지 않는다. 이런 모호하고 미 확정적인 특징이 한편으로 성서비평의 필요성을 만들었다면, 거기에는 인문학적 진지함이자 학문적 책임감이 있다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짜인 해석학적 틀에 이야기를 집어넣고자 하는 욕망과 얽혀 있다면, 또 다른 억압적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퀴어 성서해석은 서구신학에 내장된 본원적인 폭력성과 식민주의적 성서해석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것이 하나의/자신의 해방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타인의 해방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라는 말이겠다.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 불편한 일이다. 자신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과 전통의 존재를 자신이 확장될 기회로 삼고 여행과 모험을 펼친다면, 그것들은 삶의 축복이 될 것이다. 퀴어 성서해석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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