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와 돌봄
심심에 이름을 걸어 놓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제 심심에 기여한 바가 없어 파리에서 돌아온 후에는 심심 집단팀 중 그래도 가장 한가한 내가 달마다 있는 통통톡 집단 프로그램팀 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통통톡 집단 프로그램 회의는 여러 가지 주제와 관련한 회의를 주로 하지만 몇 달 전부터는 거기에 모이는 선생님들이 각자 자신들의 특기를 회의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을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특기라고 일도 없는 나는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다른 선생님들은 절에서 명상을 오래 배우신 분도 계셨고, 타로상담이나 오일, 향기 테라피를 배우신 분들도 있었는데 내 차례가 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통통톡 집단 팀 선생님들이 아무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흥미 있어 하는 분야가 뭘까를 고민하다가 집 근처 고대 평생교육원 원예 치료반을 등록했다. 요즘은 치료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원예복지 과정이라고 했다. 집에 있는 반려식물도 잘 키우지 못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식물에 관심이 생긴 터라 밤 시간을 이용해서 배워보기로 했다.
파리에 가서 사는 2년 동안 많은 사람들은, 특히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에펠탑을 바라보고 루이뷔똥 가방을 메고 루브르나 오르세를 들락날락거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부럽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냈지만 실제 파리에서 우리 가족과 나의 삶은 잠시 여행을 오는 사람들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기 한 달 전에 불어를 속성으로 배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봉쥬르” 밖에 없었던 나는 영어를 전혀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점원들이 있는 프랑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로지 불어만으로 소통하는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우리로 치자면 구청과 교육청엘 들락날락 했지만 그들 역시도 영어를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으려 해서 일을 한번 볼라치면 프랑스 인들의 냉대와 무시에도 상처받지 말자는 다짐을 굳게 하며 집을 나서야했다. 게다가 물가는 왜 이리 비싼지.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몇 번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껴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장을 보고 오면 하루가 다 가버린 느낌이었다. 여름에 도착했는데 가을은 금새오고 비는 하염없이 구질구질 내리고, 해가 안 뜨는 날이 다반사다 보니 마음엔 우울함이 자리를 틀어 가라앉기만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가장 가까운 길이 집 근처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작지만 오밀조밀하고 겨울에도 푸른빛을 간직하고 있는 공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며 데려오며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이상은 다니게 되었다. 얼마 지나서는 아이아빠가 아이를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아침엔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봄이 오고 기온이 조금 올라가자마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나는 아침엔 혼자 공원에 앉아있는 날이 많아졌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가면 늘 같은 벤치에 앉아 기도인지 명상인지를 하는 중년의 남자와 기공인지 태극권인지를 하는 어르신 한분이 계셨다. 그 사이에 나도 벤치에 앉아 잠시라도 햇볕을 받으며 기도와 명상과 졸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날이 더 따뜻해지자 나는 공원에 나와 벗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옷을 벗고 햇볕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돗자리를 펴고 나무에 기대어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그때서야 풀이, 꽃이, 나무가, 새가 삶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해가 없는 긴 겨울을 지내야 하는 환경과 대낮에 청소기를 돌려도 시끄럽다고 득달같이 쫒아오는 아래층 아줌마와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갖가지의 문제들을 공원에 앉아 있으면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후에 나는 공원의 매력에 빠져서 조금의 시간이라도 있으며 공원에 나가 있었고 곧 공원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점심을 싸와 먹기도 하면서 진짜 공원을 내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다. 물론 우울함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매개치료를 하나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원예치료에 눈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직 배우는 중에 있고 원예치료는 치료보다는 원예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치료효과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원예치료는 가지가지의 장점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요즘 나는 원예치료 실습을 위해 수락산 자락에 있는 예룸예술학교에 일주일에 한번 나간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인데 실습을 가기 전까지는 그런 학교가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 20명이 있는 그 학교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 뿐 아니라 자폐스펙트럼의 아이들, 중복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학교 환경이 좋은 것 뿐 아니라 수업의 많은 부분이 음악과 미술, 춤으로 이루어져있어 일반적인 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학생들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원예도 학교 수업 중 하나이다. 정원에 식물을 심고 텃밭을 가꾸고 가끔은 수락산 자락으로 산책을 가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오기도 한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잡초를 뽑고 상추를 뜯고 토마토와 감자에 지줏대를 세우는 활동은 낯선 일이지만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에게 변화가 있고, 나에게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사실 나 역시 그런 일은 해본 적이 없어 그 학교에 다녀온 날이면 몸이 천근만근 되기도 하고 손가락이 뻣뻣하고 통증도 심하지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다. 장애영역에서 오래 일했던 젊은 벗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더니 발달 장애인들과 함께 있으면 대부분 경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식물이 주는 위안도 클 뿐 아니라, 속내를 감추거나 꼬여있지 않은,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나의 어린 벗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물론 그 중에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거나 귀찮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교에 다녀온 이후에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는 시간에도, 너무 지치거나 힘든 시간에도 아이들 얼굴이 생각나서 혼자 웃으면서 모든 관계에서 단순히 돌봄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관계 뿐 아니라 인간과 식물과의 관계 역시도 그렇고...
가끔 심심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왜 노경선 박사님은 잘 늙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많았는데 요즘 예룸예술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보고 있다. 여튼 통통톡 선생님들은 벌써부터 나에게 원예치료는 언제 한번 해볼 수 있는 거냐고 물으신다. 치료수준에 이르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단순한 원예 활동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느낌들만으로도 원예활동은 충분히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언제든지요~”라고 대답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