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유랑기 5 - 책문화 생산자들의 플랫폼, 노들서가

작은책방 유랑기 5 - 책문화 생산자들의 플랫폼, 노들서가 

 

 

친구가 말했다. 이번 일요일에 나랑 커피 한잔 할래?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라서 잠시 머뭇하다가 대답했다. 그러지 뭐. 친구가 말했다. 노들서가에서 보는 게 어때? 노들서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서점에서 본다는 기쁨에 선뜻 대답했다. 그래, 거기서 보자. 

 

노들서가가 어떤 곳인지 찾아본다 생각만 하다가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요일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검색해서 그 곳이 한강 위 노들섬에 있고 노들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에서 꽤 머네. 근데 노들섬은 어떤 곳이지? 정보의 부재 속에 뻔뻔하게 찾아간 곳이 노들서가였다. 전철 안에서도 블로그 몇 개 열어보다가 깜빡 잠이 들어 그냥 들이닥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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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참 좋았다. 아침 일찍 갔더니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잔디밭 위에 드문드문 놓인 ‘Nodeul Island’라는 하얀 글자들이 푸르른 하늘 아래 참 잘 어울렸다. 노들섬에 들어가 그렇게 조금 더 들어가면 노들서가 입구가 보인다. 처음에 안을 기웃거렸을 때는 한 층의 작은 서점이라는 생각에 여기가 왜 유명하지? 싶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아래층이 메인으로, 넓고 쾌적한 공간에 책들이 센스 있게 놓여 있어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래층 전경이 예뻤다. 나무와 네모반듯한 서고들이 정갈하게 배치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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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간 입구 쪽은 기증한 책들과 브런치용으로 추천된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책상과 의자가 있어서 책도 읽고 일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한 분이 앉아 두꺼운 책을 펼쳐 들고 열심히 뭔가를 정리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노들서가의 특징은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도 군데군데 있지만 이렇게 정돈된 자세로 독서를 할 수 있는 자리들도 잘 마련된 데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편한 장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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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 내려가 보면 훨씬 많은 책과 다양한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 책이 많아서 가족이 함께 와 각자 원하는 책을 구경하고 때론 뽑아들어 읽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특이하게도, 자기 이야기를 써서 파일에 넣고 책처럼 볼 수 있게 해둔 1인분의 서가도 있었다. 올 때마다 한 장 한 장 더할 수 있는데다가 서점에 오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서 읽어볼 수 있도록 해둔 것이 재미있는 아이디어 같았다. 아이나 어른이나, 많은 양은 아니지만 각자의 짤막한 이야기들을 한두 장의 종이에 적어둔 것들을 읽는 맛이 있었다. 들어보진 못했어도 추천할 만한 출판사의 책을 따로 모아둔 곳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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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가운데는 널찍한 공간을 두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게 해두었다. 피곤한 지 축 늘어져 소파에 앉아 있는 곰돌이 인형은 이미 어느 아이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어느 서점이나 그렇지만 약간의 소품들도 있어 슬쩍 슬쩍 구경하며 지나칠 수 있었고. 그렇게 슬슬 걸어가다 보면 노들서가의 메인 장소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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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두기 보다는 사람들이 책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둔 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전등갓이 있는 작은 조명이나 그 곳에 앉아 호젓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나 서점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책을 읽은 누군가의 평들을 메모한 색색깔의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는 판넬도 있었다. 포스트잇만으로도 한 몫의 인테리어가 될 수 있구나 싶은 느낌이 확 들 정도로 화사했다. 곳곳에는 서점에서 추천하는 책들이 표지를 내세운 채 서 있었는데, 지나가다 보니 영화로도 나왔던 <69세>라는 책이 문득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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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기자기한 맛만 있는 서점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큐레이션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작가 한 명을 엄선하여 그의 책과 말만을 따로 둔 코너가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보통의 존재>를 쓴 작가인 이석원의 책과 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요 작품들을 배치해두고 작품 속 인상 깊은 구절을 프린트해 두어 이석원이라는 작가를 잘 몰라도 그의 글을 찬찬히 읽으며 감상하는 데 충분했다. 아마도 서점에서 생각하는 방향대로 잘 구분된 책들을 서가에 꽂아두고 옆에 작은 안내 글을 두어 내가 바라보는 책들이 어떤 책인지 알게끔 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진지하게 바라보면 이 서점이 그렇게 허투루 큐레이션을 하는 곳이 아니구나, 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이렇게 했겠구나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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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책을 살까 고르다가 흥미로운 서가를 발견했다. ‘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크기의 갈색 박스가 쭉 진열된 곳이었는데, 각각 날짜가 적혀 있었다. 자기 생일인 날짜를 집어 그냥 정해진 돈을 내고 오면 그 안에 내 생일과 같은 어느 누군가의 책이 담겨 있다는 거다. 다행히 내 생일날 박스가 남아 있어서 두말 않고 사서 왔다. 과연 나와 같은 생일의 어떤 작가의 책이 여기 들어 있을까.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두둥. 열어보니, 소파 방정환의 <방정환 말꽃모음>이라는 책이 있었다! 방정환 선생님이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나셨구나 생각하니 뭉클해지는 것이, 괜스레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더랬다. 

 

어린이는 슬픔을 모른다. 근심을 모른다. 

어느 때 보아도 유쾌하고 마음 편하게 논다.

아무 데 건드려도 한없이 가진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나온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놀고 기쁨으로 커 간다.

뻗어 나가는 힘! 뛰노는 생명의 힘! 그것이 어린이다.

온 인류의 진화와 향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 방정환 말꽃모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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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 적진 않았지만 노들섬이라는 곳은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노들서가라는 아기자기한 서점이 있고 작은 미술 전시공간이 있고 식물원이 있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편집샵도 있다. 널찍널찍해서 사람들이 조금 많이 와도 번잡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특히나 노들서가는, 그 외따로 떨어진 곳에 서점이 있으면 과연 사람들이 찾아갈까 싶은 내 기우를 한 번에 불식시킬 정도로 다정한 느낌의 아름다운 서점이었고 그래서 언제고 시간이 되면 꼭 다시 들르고 싶어지는 서점이었다. 

 

노들서가 

서울특별시 용산구 양녕로 445 노들서가 

https://www.instagram.com/nodeul.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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