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바보
어릴적 자주 듣고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담벼락에 쓰인 바보를 보면, 벌겋게 달아올라 탐정이 되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왕방울 영민이는 억울하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고 대두 상훈이는 까만 손을 감추고 시치미를 뚝 떼기도 했습니다. 동네 바보가 됐다는 사실에 화가나 쌍심지를 켜고 돌아 다녔지만 물적증거의 한계 때문에 번번히 좌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네마다 다 있는 철수와 영희의 존재와 얼레리 꼴레리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 그리고 나를 바보로 지목한 놈 '골목 3대 미스테리'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추억입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나만 많이 덥고 나만 많이 지치고 나만 많이 예민해지고 나만 먼저 생각합니다. 모두 어려운 시기인데 나만 보입니다. 지쳐 무력해진 하루, 피곤함에 구겨진 어깨, 짜증 섞인 얼굴이 떠나질 않습니다. 폭염이 펄펄 끓는 날 '바보야'하며 거울이 말을 겁니다. 바보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단순하고 무표정하게 '바보야'를 반복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바보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님은 '참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 '그 사람의 기쁨 고통 서러움 번뇌를 나눌 수 있는 그 어둠 마저 받을 줄 아는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는 그런 사랑' 바보 같은 사랑이 참사랑이라 하셨습니다.
바보 자화상
거울에 비친 저를 보니 참사랑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듯 합니다. 하지만 진짜 바보로 남고 싶진 않네요. '나만 많이'를 반복하는 이기에서 좀 벗어나고 싶습니다. 참사랑, 당장은 힘들지만 오늘 하루정도는 바보가 되어 추기경님의 자화상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