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인생시계
아픈 지구의 열이 펄펄 끓었던 한 여름. 열사병과 전염병 경고로 대부분의 대외활동이 필수적이지 않은 난 훨씬 이전부터의 봉쇄생활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취소요구가 높았던 도쿄올림픽이 강행됐기에 망정이지.. 온종일 TV 앞에서, ‘파이팅, 대한민국!’ 집중 에너지로 응원하고, 감탄하고, 아쉬워하며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그들의 지난한 노력에 대한 감동으로 위안받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단순한 생활 - 생산적이지 못해 죄책감이 들지도, 화면에 몰두하는 내 모습에 유치함도 느끼지 않았다. 무게 없이 그 속에 내가 있는 게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 갱년기의 위기상황에서 빠져나온 덕일 것이다.
평소 안 좋았던 오른손목은 의식적으로 며칠간 반대 손을 사용해 쉬면 늘 회복되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회복의 기미 없이 코 닦기는커녕 휴지를 뽑으려는 두 손가락의 모임조차 극심한 통증에 끝내 ‘악’하는 의식 못한 비명을 몇 번 터뜨리고선 의사를 찾아 근육 내 염증해소를 위한 주사를 맞았다. 통증이 사라지면서 손목에서, 팔로, 그리고 온몸으로 무력증이 퍼졌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내 의도는 뇌에만 머무른 채 도대체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지만, 그저 껍데기일 뿐, 늘 소리 없이 함께한 찰랑찰랑 에너지는 어딘가 뚫린 배수구로 모두 빠져나간 느낌. 이 분리감을 통해 과연 생명/삶이란 것이 둘의 오묘한 합체였음을 본다. 무력증이 주사의 부작용도 아니라는데.. 특별한 신체적 병이 아닌 듯 우울증과 연관된 내용만 보여주는 인터넷정보. 한 달을 훌쩍 넘어도 변화의 기미도 없고, 도대체 내 기력을 되찾을 수는 있을까 하는 회의에 진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전의 내 보폭이 확 줄어든, 휘청휘청 조심스런 발디딤으로 걷다가 내 마음을 보았다. ‘아, 예전엔 내 맘이 저만치 앞서 갔구나!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앞서가는 맘을 쫓아가느라 내 발걸음이 늘 허둥대고, 더 지쳤던 이유가 그 간격 때문이었구나!’ 몸이 그렇게 솔직히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수많은 삶의 명령으로 버텨왔던 모습을 이젠 벗을 때가 되었다고. 예전의 기준이라면 하찮은 속도로 느려진 지금의 걸음걸이지만 괜찮다고 했다. 천천하지만 이제 몸과 마음이 나란하지 않느냐고.
새로 적응하는 내 인생 새로운 단계, 앞섰던 마음을 늦추기 위해 겸허히 옹알이를 시작했다. 냉장고 앞에서 까마득한 날 책망하지 않도록, 냉장고로 향할 때면 곧바로 혼잣말을 시작한다. ‘우유, 우유!’ 거침없이 운전했던 나,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선 ‘귀한 사람, 귀한 사람!’을 읊조리며 차를 우선하는 사람들에게 양보를 선사한다. 또한 늘 대립각을 세웠던 남편에게조차 배운다. 결혼 후 갈등의 최고요인인 감정을. 더 구체적으론 공감능력. 남편이 뒤돌아서면 표 안 나게 연습해 오긴 했지만.
선물 받은 고들빼기를 맛나게 먹다가 “근데 좀 짜다”는 말에 내 본연의 대꾸가 튀어나온다. “(기본이 소금인데) 짜지 않은 김치가 있을까?!” 농담에 정색하고, 감정에 사실증명으로 엇박자 놓은 내 소통장애의 순간, 그 껄끄러운 긴장감… “그럴 땐 ‘그렇게 짜?!’하는 거야” 의리 있게 남편이 친절한 가르침을 준다. “그렇군. 맞아” 적극적 긍정 후 난 세 번 옹알이를 한다. 언젠가 그의 감정선에 함께 머물 수 있는 말꼬를 틀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아, 그렇게 짜!?’
‘오, 그렇게나 짜?!’
‘어, 그렇게나 짜구나!!!’
또다시 기력이 사라지면, 얼마간의 위기 후 어디선가 스멀스멀 다시 채워지겠지? 지금의 반쯤으로. 그 때 새 조정기간이 약간 걱정된다. 옹알이 보다 더 원초적인 학습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