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의 책 소개 : 밥데기 죽데기 | 권정생 | 바오로딸
어른들께도 권하고 싶은 동화책
동화책이 어린이들만 읽는 책은 아닌데도 선뜻 동화책을 읽지 않게 되는 어른들에게 ‘강아지똥’으로 잘 알려진 권정생이 쓴 다른 ‘똥’ 이야기 ‘밥데기 죽데기’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일본군 위안부, 일본 원폭 피해자와 육이오 전쟁 같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루며 그 슬픔을 극복하는 길은 통일이라고 말하는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이 책이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라고 조금 익살을 떨어 보았습니다.”
그의 말처럼, 무거운 주제이지만 등장인물이나 상황, 주고받는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와 읽는 내내 깔깔깔 웃으며 읽었습니다만, 그저 가볍게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 한 가지, 권정생이 경북 안동에서 더 들어가는 일직면에서 교회 종지기로서 자연과 더불어 생명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기에 아름다운 산골 모습들이 눈에 선하도록 그려져 있습니다.
“소나무가 우거지고 철 따라 진달래, 보라색 등꽃, 주황빛 산나리꽃, 하양 초롱꽃, 보랏빛 붓꽃이 소나무 숲 사이로 피어나고, 감나무에 땡감이 누릇해질 땐 도라지꽃 마타리꽃, 과남풀꽃, 잔대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아름다운 솔뫼 골에 늑대 할머니가 삽니다.”
본래 늑대였는데 사람들이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총으로 쏘아 잡아가 버려서 백일기도 끝에 사람으로 둔갑해 50년 동안 혼자 살던 할머니는 ‘어느 해 긴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자’ 드디어 원수를 갚기로 작정하고 달걀 두 개로 손자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장에서 달걀 두 개를 사 온 그날 밤 할머니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쑥과 마늘을 넣은 솥에다 달걀을 삶습니다. 삶은 달걀을 소반 위에 올려놓고 일곱 번 절을 한 다음 삼베 헝겊에 잘 싸서 뒷간 ‘똥통’에다 담갔습니다.
“모든 목숨은 모름지기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한다. 똥통에 들어가 보지 못하면 똥통 같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니? 그리고 이 더럽고 흉측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겠느냐?”
한 달이 지난 뒤 산사꽃이랑 등어리꽃이 활짝 피어날 때 똥통에 담가두었던 달걀을 건져내어 깨끗이 씻은 다음 흐르는‘맑은 물에’ 또 한 달을 담급니다.
“아무리 원수를 갚아야 하지만 물처럼 깨끗하고 정직해야 하니까. 너희는 원수를 갚아도 정당하게 갚고 깨끗하게 행동해야 한다.”
개울에 담갔던 달걀을 이번에는 사방에서 찔레꽃 자귀꽃, 치자나무꽃 향기가 풍기는 산자락 양지쪽 ‘등꽃나무 아래’에다 파묻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예쁘고 아름답고 꿀을 만들어 벌과 나비한테 나눠주고,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라는 거다”
한 달이 지나자 할머니는 달걀을 꺼내어 질경이 씨앗으로 짠 기름을 담은 접시에다 얹어 놓고 열흘을 기다립니다. 백일이 다 된 것이지요. 이 날밤 할머니는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소반에 달걀 접시를 올려놓고 또 일곱 번 절을 한 뒤 질경이 씨앗에 불을 붙입니다. 파르스름한 불꽃이 펑 하고 방안에 연기가 가득 차면서 아름다운 꽃향기가 사방에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해서 얼굴이 동글동글한 머슴애하고 얼굴이 길쭉하고 키가 큰 머슴애 둘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름을 ‘밥데기’, ‘죽데기’라고 지어줍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책을 함께 읽었던 어린이들이 “세상이 정말 더럽고 흉측하나요?”라고 질문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들도 자기들 수준으로 세상이 더럽고 흉측하다고 짐작하고 있었을까요?
솔뫼 골 늑대 할머니는 밥데기 죽데기를 데리고 자기 가족을 총으로 쏘아 죽인 사냥꾼을 찾아 서울로 갑니다. 서울에서 만난 황새 아저씨라는 청년을 아들로 삼아 함께 원수를 찾아내지만, 자신은 원래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를 잡는 큰 사냥꾼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헌병에게 끌려다니며 억지로 짐승들을 사냥하고, 미군정 시기에는 미군들을 위해 사냥을 했다고 하며 할머니께 용서를 빌며 자신도 큰 벌을 받았다고 털어놓습니다.
“나라가 한번 망하니까 그 누구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었단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단다. 전쟁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폭격으로 쑥대밭을 만든단다. 그 폭탄으로 식구를 다 잃고 이렇게 다리를 잃었단다.”
늑대 할머니는 50년이나 별러 왔던 원수를 만났지만, 원수는 용서하기로 하고, 사냥꾼 할아버지 부탁으로 다섯 살 때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맞아 50년 동안이나 캄캄한 벽장 속에 숨어 사는 인숙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들을 돌보는 일까지 맡게 됩니다. 서울에 와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 늑대할머니는 양아들 삼은 황새 아저씨에게 질문을 퍼붓습니다.
“얘야, 북한군하고 남한군하고 왜 총을 마주 겨누고 있냐?”
“그래 북한 군인하고 남한 군인하고 누가 못된 짓을 했느냐?”
“대체 그놈의 총을 만들고 원자탄을 만든 놈이 누구야?”
“어머니, 그것도 누가 만들었다고 꼭 집어 찾아내기가 힘들어요. 만들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있고 만들어 놓으면 가지고 나가 쏘아 죽이라고 또 명령하고….”
”그럼 그 국회의원인지 하는 놈들을 모두 없애면 되잖니?“
”그런데 그 국회의원인지 하는 대표는 모든 백성들이 뽑거든요.“
”그럼 이 세상엔 슬픈 일이 사라지지 않는단 말이지?“
“모르겠어요. 모두가 사이좋게 평화롭게 살도록 애썼지만 되지 않았어요. 부처님도 오셨고, 예수라는 하느님의 아들도 와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가르쳐도 여전히 슬픈 일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으려거든 총도 만들지 말고 폭탄도 없애고 군대도 다 없애라고 해. 가까운 데는 걸어 다니고, 제발 공장에서 더러운 물 흘려보내지 말고 짐승이고 벌레고 죽이지 말라고 해. 그러면 되는 게 아니냐?“
“그런데 그걸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아요. 어머니가 무언가 하실 수 있잖아요, 네에?”
세상 모두가 함께 살아가자면 사람들 마음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밤새 잠 못 이루고 고민하던 할머니는 밥데기 죽데기와 황새 아저씨에게 보리밥을 열한 그릇씩 먹게 합니다. 그리고 그 똥을 모아 황금 가루를 만들어 서울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금가루를 뿌립니다. 이들에게 똥을 누게 하는 장면이나, 똥으로 금가루를 만드는 장면을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합니다. ‘똥의 활약’으로 사흘 뒤 세상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달걀들이 병아리가 되어 깨어나고, 휴전선 철조망이 모두 녹아내리고 모든 전쟁 무기 탱크도 장갑차도 대포도 유도탄도 심지어 군인들이 쓰고 있던 철모도 다 녹아내립니다.’
시인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에서 노래 한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시구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쇠붙이보다 더 굳은 ‘사람들의 마음’마저 녹아내린 일입니다.
”평양 주석궁에서는 지도자 장군님이 울면서 중앙방송을 통해 북남통일을 선언하고 남쪽의 청와대 대통령도 눈물로 통일을 선포했습니다. 녹아내린 철조망을 통해 흩어졌던 남북가족들이 어느새 달려와 얼싸안고, 그 사이로 수천수만 노랑 병아리가 귀엽게 모여듭니다. 이번 일은 어느 외롭고 불쌍한 할머니가 오십 년 동안 정성을 다해 눈물로 기도했고 코리아는 남북의 착하고 어진 많은 할머니들이 긴 세월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덕분에 코리아에는 하나가 되고 전 세계로 평화가 파도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라고 세계에 뉴스가 나갑니다.
권정생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셨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현실, 옛날에도 그랬지만 너무도 어둡구나. 어떻게 휴전선이라도 틔워져야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모두가 미친 상태야. 부디 우리 적은 숫자의 인간끼리라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자꾸나. 그러면, 나는 외롭지 않다. 안녕!”
권정생은 이런 마음을 늑대 할머니에게 담아 가장 천하게 여기지만 소중한 ‘똥’ 덕분에 우리 민족이 통일되고 세계로 평화가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쓰셨겠지요. 그는 책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강아지똥>을 쓴지 꼭 30년 만에 다시 똥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 똥 이 똥다워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도, 부처님처럼 사는 것도 모두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모두가 있어야 할 곳, 찾아야 할 곳,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딘지 잊은 채 허둥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각자의 자리만 찾아 살아가면 사람도 짐승도 산도 들도 강물도 세상 모두가 평화롭고 깨끗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