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좌절
‘선생님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 편만 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런 선생님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몹시 화가 나요.’ ‘선생님은 변했어요. 선생님이 처음에는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이제는 아주 차갑게 느껴져요. 선생님은 나만 혼내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사기꾼 같아요. 상담을 하면 좋아져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참담한 내 현실이 보여요. 선생님이 나를 속인 것 같아서 배신감이 느껴져요.’ ‘상담 초기에 선생님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어서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에 대해 깊은 신뢰감이 있는데, 선생님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기분 나빠요.’ 이런 말들은 상담이 어느 정도 진전되었을 때, 내가 내담자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내담자는 상담 관계에서 상담자가 자기편을 들어주는 것을 공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담이 진전됨에 따라,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내담자는 상담자가 만족을 주지 않고, 좌절을 준다고 크게 화를 내고, 상담 관계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위기는 내담자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 편을 들어 주세요.’라는 내담자의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내담자와 소통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내 편을 들어 주세요.’라는 말은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말 같지만,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게 해 주세요.’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내 편을 들어 주세요.’라는 말 속에는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 주체적이고 독립된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은 깊은 내면세계에 너와 나의 구분을 가로막고, 자아를 붕괴시키는 융합 환상이 있다. 따라서 융합을 추구하는 개인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해코지 당하는 것으로 경험한다. 제이콥슨은 모든 인간은 전 생애를 통해서 대상과 융합하려는 리비도적인 갈망을 충족시키려 애쓴다고 보았다.
생애 초기 유아의 정신은 자기 자신과 엄마가 구분되지 않은 융합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유아는 엄마가 제공해주는 모든 것을 ‘내가 했다. 혹은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전능환상을 경험한다. 이 전능환상 경험은 창조성의 근원으로서, 유아의 주관 세계와 주관 대상을 창조한다(위니캇). 그러나 유아가 성장함에 따라, 유아는 전능환상이 깨지는 좌절을 경험한다. 유아는 이 좌절 경험에서 비롯된 불안과 고통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엄마의 공감을 통해서, 엄마와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자아를 붕괴시키는 융합 환상에 탐닉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아닌’ 객관 세계를 발견한다. 이것은 유아가 한 개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좌절은 유아의 성장을 자극하고(제이콥슨), 좌절에 따른 유아의 불안과 고통을 공감해주고, 만족을 주는 좋은 엄마 경험은 유아의 성장을 촉진한다(말러). 제이콥슨에 따르면, 자아 경계가 얼마나 단단한가에 따라 환상 내용이 다르지만, 대상과 융합하려는 환상은 모든 심리발달 단계에서 나타나고, 자기와 타인의 경계가 분명해진 후에야 만족스럽게 충족될 수 있다.
상담자의 공감은 내담자가 좌절 경험을 소화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불평불만과 짜증, 투덜거림, 깊은 절망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주고 소화해서 적절한 말로 소통해주는 것을 말한다. 내담자는 상담자의 공감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성취하고, 좌절을 주는 현실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세계를 멈추게 만든 코로나 19라는 복병을 만나 엄청난 불안과 좌절에 휩싸여 있다. 미래 학자들은 코로나 이후에 기존질서가 무너지고 판이 바뀌는 대변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들은 재빨리 새로운 질서를 파악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러 대처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희망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막막함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 봉착해 있다. 특히 디지털 방식에 비교적 유연한 젊은 세대보다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변화에 밀려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변화의 주체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더 큰 불안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성경 말씀을 되새겨 본다.
나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인가? 변화에 대한 불안 때문에 친숙한 헌 부대를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스스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은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변화를 담아낼 그릇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좌절은 새 술을 발견하는데 기여하고, 공감은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