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겨짐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지금은 이사했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서 다니던 스포츠센터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스포츠센터였는데, 그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그 스포츠 센터도 꽤 오래 왔다갔다 다녔습니다. 이 종목도 등록했다가, 저 종목도 등록해봤다가,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가늘고 길게 다니다 보니 말은 섞지 않아도 익숙해진 얼굴들도 꽤 있었죠.
수납하는 여직원들, 365일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가도 헬스장에 상주하시는 근육아주머니, 샤워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등..... 그리고 그 중에는 늘 혼자서 스포츠센터에 오는 어느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아마 20대였을 텐데, 제가 그 스포츠센터를 왔다갔다가 하는 세월을 그 분도 꾸준히 다니셨으니, 나중에는 30대가 넘었을 겁니다. 제가 A씨라고 부를 그 분은,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소위 말하는 정상인은 아니었습니다.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던지, 아니면 자폐스펙트럼이 있나보다, 저 혼자 짐작했습니다. 표정과 걸음걸이, 움직이는 모습도 그렇고, 가끔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거나, 분위기에 안맞는 소리로 짧은 문장을 내뱉는 모습을 보면 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폭력적이거나 말썽을 부리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다행히 혼자 스포츠센터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정해진 운동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샤워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그 긴 세월을 스포츠센터에 꾸준히 나오셨지만, A씨에게 몸매가 달라지거나, 친구를 새롭게 사귀게 되는 변화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쓸쓸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스포츠센터에 나와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내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에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바삐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스포츠센터가 바로 광장 옆이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는 그 시간에 광장에 혼자 서 있는 A씨를 보았습니다. 아마 편의점에서 샀을 과자 한 봉지를 들고, A씨는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지는 해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무방비 상태의 표정으로 광장 한복판에 서서, 친구도 없이 혼자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그 행위 때문이었을까요... 스포츠센터 밖에서 보기는 처음인 A씨의 모습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제게 떠오른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 이건 너무 외롭다.... A씨는 30년 넘는 세월을 자기 속에 갇혀 있으면서 누구랑 친구가 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물론, 이 부분은 저의 전적인 오해일 수 있습니다). 친구랑 과자를 나누어 먹으면서 사귀는 게 어떤 경험인지 A씨는 알지 못해.’
이것만 해도 참 시리게 외로운 일인데, 곧이어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이 지금 외롭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A씨는 자신이 외로운 상태라는 것을 설명할 말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 무언가 막연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걸 감지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A씨는 모르고 있어....어쩌면 만족스럽지 않음을 단순히 허기로 오해하고 저렇게 과자를 먹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A씨는 자신이 외롭다는 것도 모르고, 한 번도 자신의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어....’
혼자 외롭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인지만, 자신이 외롭다는 것도 알 수 없는 마음의 상태는 너무나 까마득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어떤 심연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도저히 닿을 가망 없는 가장 깊고 깜깜한 어딘가에 혼자 남겨진 상태라는 것이 제게 떠오른 그림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고, 가끔 한 번씩 불쑥 떠오르곤 하는 어떤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글쎄, 왜 그럴까요. 지금껏 제가 말한 A씨에 관한 이야기들은, 실은 A씨와는 별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저의 어느 부분을 설명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the capacity to be alone)에 대해 위니캇(D.W. Winnicott)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삼자관계가 확립된 이후에 도달하게 되는 고도로 정교화된 현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별히 연구가 필요한 초기 삶의 모습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를 기초로 하여 정교화된 홀로 있음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중략).....이러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고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는데, 그 경험이란 엄마가 현존한 가운데 작은 유아, 아기로써 혼자 있었던 경험이다. 그러므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란 일종의 역설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혼자 있었던 경험.
- 「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 」 중
우리는 홀로 있을 때도 결코 홀로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인가 봅니다. 적어도 생의 초기에는 말이죠. 누군가의 현존 앞에서 충분히 홀로 있었던 경험만이 정말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가능하게 한다는 성찰이 참 놀랍습니다.
앞서 적은 A씨에 대한 이야기들이, 위니캇이 말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과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 설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A씨의 홀로 있음에는 그 누군가(좋은 엄마상)의 현존이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홀로 남겨진 것으로 보였던가 봅니다. 아득하고 까마득한 저의 느낌이 아마 거기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