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맥주를 탐하는 지식 2 - 홉을 아시나요?

맥덕목사의도원 주를 하는
 

둘,   홉을 아시나요? :

          맥주와 영성의 어머니 힐테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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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럽긴 하지만 봄이 온건 분명한 듯! 날이 점점 더워진다는 건 점점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이 다가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실 맛있는 맥주야 시와 때를 가리지 않지만서두! 맥주하면 떠오르는 ‘시원한 맛’은 역시 갈증이 극에 달할수록 강렬하지 않을까싶다.

여러분은 ‘맥주의 맛’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는지? 청량감, 구수함, 달짝지근함... 이와 함께 연상되는 대표적 맛 중엔 아마도 ‘쌉싸름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쌉싸름한 맛’의 기원은 홉 암꽃 혹은 그 추출물이다. 홉은 쌉싸름한 맛과 함께 다양한 과일 향, 수많은 풍미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물, 맥아, 효모와 함께 맥주의 4대 기본재료로 구분될 만큼, ‘맥주하면 홉, 홉 하면 맥주’이지만, 양조에 사용된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재료들에 비해 무척 짧고 역사적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수도원의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분의 이름은 힐데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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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테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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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독일인 여성철학자’, ‘최초의 여성신학자’, 그리고 ‘맥주와 영성의 어머니’
다양한 수식어를 동반하는 그녀는 1098년, 한 귀족가정의 10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10번째 자녀는 신에게 바친다는 관습에 따라 8살의 힐데가르트는 베네딕투스 계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당시는 대학 등의 교육기관이 출현하기 전이었고, 길드와 같은 기술교육은 남성들의 전유공간이었다. 거기에 전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광기가 어둡게 드리우고 있던 터,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한 아픔은 컸겠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힐데가르트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교육기관에서의 체계적 학습기회를 얻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3살 때부터 종교적 신비체험을 했던 힐데가르트는 수도원 생활 중 정신보다 악한 몸, 남성보다 천한 여성, 신학보다 저급한 기타 학문 등 수직적이고 이분법적이었던 당시의 사고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참을 수 없는 질문들은 그녀를 끊임없이 영감과 사유의 세계로 안내했고, 모든 면에서 성장하게 했다. 한국드라마에서 이때쯤 질투의 화신이 등장하지 않던가? 힐데가르트의 뛰어난 능력은 남성 중심 수도원의 대다수 남성 수도사들을 불쾌하게 했다.


  “저 하찮은 여자가 감히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잘난 척하는 건 또 어떻고? 여자답게 다소곳하면 좀 좋아?”


수도원은 힐데가르트에게 ‘여성의 머리는 남성’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또 그녀의 신비체험을 인정하려 들지 않은 채, 전통적인 수도원의 규정을 강요했다. 하지만 ‘천재 문제제기러’였던 그녀가 굴복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활동을 이어갔던 그녀는 마침내 1147년 교황 에우제니우스 3세로부터 신비체험의 정당성에 대해 공식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이때 그녀의 나이 49살, 수도사가 된 지 41년 만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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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는 남성 수도사의 통제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독자적 수행 공간, 즉 수녀원 건립을 추진했고, 루페어츠베어크, 아이빙엔 등에 여성 수도자들의 공동체를 세웠다. 드디어 형주 성을 얻은 유비마냥 자신의 둥지를 얻게 된 힐데가르트. 여기에서 그녀는 교회가 파문한 남성청년이 영내에 묻힐 수 있도록 했다. 또 미사 중 신부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강론을 펼치기도 했고, 미사에 참석하는 수녀들에게 신부들과 같은 미사복을 착용토록 했다. 그녀의 파격적인 시도들은 매번 극심한 반발에 직면했지만, 그때마다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관할교구는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여러 업적 중 우리들의 관심사는 역시 홉! 그녀는 신학과 영성 뿐 아니라 작곡, 의학, 생물학, 식물학 등 다방면의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맥주는 당시 수도자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우선 자신들이 마셔야 했고, 판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심혈을 기울여 빚은 맥주는 오래지 않아 산패되고 말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첨가물을 넣고 실험을 이어가던 힐데가르트는 드디어 홉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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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은 따뜻하고 건조하다. ~ 홉을 술에 넣으면 그 쓴맛이 부패를 막고 보존성을 높인다”

  -  힐데가르트의 “자연학” 중에서


사실 힐데가르트가 홉을 맥주에 처음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이미 736년 독일 바이에른의 할레타우에서 양조용 재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꿀, 나무열매, 생강 등 흔히 사용되던 첨가물에 비해 홉 맥주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힐데가르트의 시대에는 일종의 허브 혼합물인 “그루트(Grute)”가 대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홉을 주목하고, 실험을 통해 그 효능을 발견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힐데가르트는 홉에 관한 연구결과를 자신의 논문 모음집 “자연학(Physica)”에 담아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81세 되던 1179년 가을, 평생을 함께 했던 수녀들 앞에서 마침내 그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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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의 위대한 연구 이후에도 홉은 한동안 맥주와 만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던 첨가물 그루트의 인기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루트사용권을 지역의 교회가 독점하는데 있었다. 교회는 막대한 수요가 창출되는 그루트의 사용을 양조장에 승인하는 대신 세금을 부과했다. 홉의 등장은 교회에게 있어 독과적 수익을 안겨주던 사업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주교, 교회와 결탁한 영주들에 의해 ‘홉은 독초’라는 가짜뉴스가 퍼져나갔다. 그 결과, 오랫동안 홉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짜뉴스를 퍼 날라도 촛불혁명은 진행되었듯, 홉의 유용성은 숨길 수 없었다. 13세기가 시작되면서 폴란드, 발트 해 인접지역 양조장을 중심으로 홉의 사용이 정착되기 시작했고, 15세기에는 마침내 교회의 그루트 사용세금이 철폐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홉은 중심 첨가물의 지위를 확고히 점유하게 되었다. 힐데가르트의 연구 이후, 약 4백년 정도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냉장기술이 발달한 현대의 맥주양조에서 산패방지를 위해 홉을 이용하는 예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홉은 개성 있는 맛과 향을 위해 사용된다. 그동안에는 체코 필스너에 들어가는 ‘사츠’ 홉 등 이른바 ‘노블 홉’이라 불리는 전통적 유럽산 홉이 높이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 유럽권에서 발군의 홉이 재배되어 점차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소라치에이스, 미국의 캐스케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용도와 방법은 달라졌을지언정, 홉에 있어서 힐데가르트 원장님의 업적은 결코 희석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수도원 양조장에서 난데없이 홉을 첨가하던 그 진취성으로 당시의 교회와 세상을 향해 당당히 던졌던 그녀의 질문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추신: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연일 ‘미투’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12세기를 살았던 힐데가르트가 깨고자했던 질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에 대한 반증이라 하겠다.
시대 속 힐데가르트들의 용기를 응원한다.

Tip!
최근 크래프트 비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양조장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크래프트 비어에 있어 대세는 단연 개성 있는 ‘홉 향’! 아마도 이는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벨기에식 맥주와 강렬한 홉 맛을 주무기로 하는 IPA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국 크래프트 비어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성 있는 홉 향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양조장 중 부산의 와일드 웨이브, 제주의 제주맥주를 추천한다. 먼저 와일드웨이브는 부산 송정역 바로 앞에 위치해있고, 양조장과 펍을 함께 운영한다. 일반적인 라거나 독일 남부 계통의 밀맥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시큼함이 특징적인 사우어맥주를 만날 수 있다. 말만 잘하면 양조장 견학도 시켜주신다. 미국의 대표적 크래프트 비어인 부룩클린양조장의 기술지원을 통해 시작된 제주맥주의 위트비어는 향긋한 홉 향과 함께 감귤껍질에서 오는 상큼함이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안주 없이 마셔도 부담이 없다. 주말에 진행되는 유료견학 코스를 신청하면 시음을 할 수 있다. 또 견학 중 퀴즈를 통해 추가시음권을 주니 열심히 참여해 볼 것! (2018. 3. 23)

 4월 세 번째 이야기:

 맥주는 순수하라! 단 왕궁과 교회는 예외!
 (바이헨슈테판 수도원 양조장, 호프브로이 하우제, 그리고 맥주순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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