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4월입니다. 눈을 들면 온통 꽃 천지입니다. 하얀 매화, 노란 산수유, 개나리와 민들레, 분홍 진달래, 진분홍 복사꽃, 우아한 흰 목련…… 메마른 겨우내 꽃피는 봄날은 기다렸습니다.
생명이 소생하는 4월은 부르는 이름도 많고 기억할 일도 많습니다. 인디언 체로키족은 4월을 ‘머리맡에 씨앗 두고 자는 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고 시인 신동엽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 했습니다. ‘빛나는 꿈의 계절, 생명의 등불을 밝혀 준다’라는 노랫말도 있습니다. 4월에는 동백꽃 붉은 제주 4.3의 기억이 있고 사월혁명과 ‘이제 내게 4월은 옛날의 4월이 아니’게 하는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시인 이성부는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라고 했습니다. 자연의 순환을 따라 봄이 찾아왔지만, 또 다른 봄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합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시킨 정권이 첫 임기를 마치고 더 이루어야 할 촛불 정신의 숙제는 남았는데, 오히려 우리 사회가 퇴행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가득한 봄날입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피난민이 천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아무 잘못 없는 어린이들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매일 듣습니다.
1991년부터 1999년에 일어났던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겪은 전쟁의 공포를 증언하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글과 그림을 모아 엮은 ’나는 평화를 꿈꿔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일이지만 마치 오늘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글과 그림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전쟁은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어른 중 어린시절에 “나는 자라서 어른이 되면 꼭 전쟁을 일으켜야지!”라고 결심했을 사람은 없었을 텐데,…… 복잡한 현실에서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이 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10살이던 로베르토가 쓴 시를 소개합니다.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탱크들은 어린이들의 놀이 집이 될 거예요.
사탕 상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거예요.
박격포에선 풍선이 발사될 거예요.
총구멍에서는 꽃들이 피어날 거예요.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공습경보나 총소리에 놀라지 않고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을 거예요.
피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새로 시작할 거예요
-로베르토/ 10살. 옛 유고슬라비아 폴라 지역
끝날 듯 이어지는 코로나와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전쟁과 또 다른 일들로 어렵고 힘든 봄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용기를 내어 ‘새로 시작하는 4월’을 만들기를 꿈꾸어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눅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