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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고백여행

posted Mar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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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사무국장의 요청으로 1월 7일부터 14일까지 있었던 ‘베트남 고백여행’을 개인일정 때문에 9일부터 프로그램에 합류해서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길목 자체 평화기행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평화기행을 가기도 했었으나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고백여행’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아 길목 프로그램으로 적당한지 알아보기 위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시작된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한베평화재단 (kovietpeace.org) 이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이 재단의 목표입니다.

‘베트남 고백여행’은 베트남전쟁 피해지역 현장 답사, 베트남 작가·전쟁 피해자와의 만남을 가집니다. 베트남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전쟁증적박물관, 남부여성박물관, 밀라이박물관 등을 탐방하고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현장인 베트남 중부의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를 참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며,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여행을 진행하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는 1993년부터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대한 연구로 시작하여, 한겨레 21 통신원으로 역할을 하면서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국내에서 알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지속적으로 이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밀라이구수정resize.jpg

밀라이 전쟁 박물관에서 구수정 이사(액자사진은 당시 학살 현장을 목격하고 희생자들을 구조하려고 했던 헬기 조정사였던 휴 톰슨 주니어)

 

밀라이.전.박물관장resize.jpg

몇 달전까지 박물관장이었던 팜탄콩
 


밀라이 학살 때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제일 밑에 있게 하고 부모와 모든 가족이 그 위에 감싸서 학살을 면한 팜탄콩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은 보내지 못하는 하노이로 보내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열심이 해서 하노이 대학을 졸업한 팜탄콩은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지만, 마을로 와서 일을 하였고 인민위원장으로 승진할 수 있게 되자, 그 자리를 그만두고 밀라이 전쟁박물관의 청소부부터 일을 시작해서 밀라이 전쟁박물관장이 되었습니다. 그와 만났을 때, 그가 우리에게 보인 감사와 연대감에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학살현장의 하나인 하미 마을은 1968년 135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2000년에 위령비를 세우기로 하고, 월남참전전우복지회에서 위령비 만드는데 지원하기로 하였으나, 위령비의 비문을 보고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측에서 수정을 요구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정하느니 차라리 뚜껑을 덮겠다고 하여 연꽃무늬의 석판으로 덮어버리고, 2001년에 위령비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또 다른 학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미위령비resize.jpg

하미마을 위령비

 

 

하미.위령비앞면resize.jpg

하미마을 위령비 앞면
 


하미.의령비resize.jpg

연꽃무늬 석판으로 덮은 위령비 뒷면
 

 

퐁니·퐁텟 학살 생존자인 탄 아주머니는 “여러분이 두 번째 만나는 자리라면 증언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여러분에게는 꼭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그 때 경험한 일들을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무서웠고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땠는지, 그리고 그 후에 간신히 살아남은 오빠와 같이 먹고살 수가 없어서 헤어져 살아야 했던 긴 시간의 고통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차라리 그 때 자기도 같이 죽었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퐁니위령비resize.jpg

퐁니 위령비
 

 

탄resize.jpg

탄 아주머니
 


빈호아사 한국군 증오비도 방문하였습니다.
“증오비 오른쪽에는 66년 12월, 미제국주의의 용병인 남조선군인이 43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의 비문이 쓰여 있고, 비석 맨 위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에 기억하리라”는 문구가, 비석 아래 제단에는 ‘미 침략 적군에 대한 복수심을 영원토록 깊이 새긴다’는 글이 쓰여 있으며, 증오비 오른편에는 도표를 그려 희생자의 현황을 기록했습니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렴.

  한국군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렴.”

빈호아사 마을엔 이런 슬픈 자장가가 구전돼 오고 있고 마을 안쪽으로는 아직 한국인을 들여놓고 있지 않습니다.
 


빈호아사.한국군resize.jpg

빈호아사 한국군 증오비
 


국내에는 82개의 월남 참전 기념탑이 있고 베트남에는 3개의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도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진행형입니다.

미국의 비밀문서는 518민주화운동에서 광주에 대한 한국군의 잔인한 처리는 현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모두 베트남전에서 실전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이 문서에서 한 정보원은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베트남 고백여행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여행이며, 제주 4·3을 포함한 국내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고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근본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미 마을의 꽃무늬 석판으로 가려진 부분의 원래 비문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역사책은 기록하기를,
예로부터 디엔증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신성한 기운을 머금은 락롱꿘과 어우꺼의 자손들이

호안선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땅을 넓혀 500년 전 이곳에 나라를 세웠다. 

백성들은 하미, 하꽝, 하방, 하록, 지아롭 등에 마을을 세웠으며 본디 어질고 선한 그들은 평화롭게 아이를 낳아 키우며 쟁기질과 괭이질로 땅을 일구고 채소를 가꾸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다. 하늘이 고요하고 바다가 잔잔하며 땅이 평온할 때까지는.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적들이 사납게 들이닥쳐 땅에 풍파를 일으켰다.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전략촌을 세우고 강제로 마을과 고향을 버리게 하였으니, 칼로 자르듯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에 주민들은 땅을 잃고, 강을 잃고, 바다를 잃었으며 농사를 짓고 강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삶을 잃었다.

잔악함이여,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구르고 피가 흘러넘치고 끔찍한 전쟁으로 물야자나무 숲은 마른 머리카락이 빠지듯 산산이 흩어지고 강도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몸을 구부리고 밤새 흘린 눈물이 고여 못을 이루었다.

단두대에 잘린 머리가 굴러다니는 광경이 다시 펼쳐지고 사원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으며 하지아(HA GIA) 숲은 마른 뼈만 하얗게 남았고 캐롱(KHE LONG) 선착장에는 주검이 더미를 이루었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 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 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친 것보다도 더 참혹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집 문턱에는 늙은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들이 떼로 쓰러져 있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 끙끙대며 신음하니 또 얼마나 공포스럽던가. 허둥지둥 시체를 쌓아 올리는데 악의 탄환이 관통하지 않은 시신이 없었다. 시체에는 여전히 마른 피가 고여 있고 아기들은 어머니의 배에 기어올라 차갑게 시든 젖을 찾았다. 

입과 턱이 날아간 아이는 목이 타는 듯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또 하나의 참극이 더해졌으니 탱크의 강철 바퀴가 무덤들을 짓뭉갠 것이다.

황혼이 서린 땅에는 풀이 시들고 뼈들은 말라가고 원혼이라도 나타난 듯 구름은 푸른 하늘에 울부짖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하늘은 어두울 때도 있으나 밝을 때도 있어 25년 간 평화를 일구어 고향에 평온이 찾아왔다. 디엔증 땅에도 단 감자와 푸른 벼가 돌아와 풍년을 이루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와 새우가 넘치며 당의 지도 아래 주민들은 황량한 벌판을 개척했다. 그 옛날의 전장은 이제 고통이 수그러들고 과거 우리에게 원한을 불러일으키고 슬픔을 안긴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사과를 하였다. 그리하여 용서를 바탕으로 비석을 세우니 인의로써 고향의 발전과 협력의 길을 열어 갈 것이다.

모래사장과 포플러 나무들이 하미 학살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할 것이다.

한 줄기 향이 피어올라 한 맺힌 하늘에 퍼지니 저 세상에서는 안식을 누리소서.

천 년의 구름이여,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2000년 8월 경진년 가을


디엔즈엉 사의 당과 정부 그리고 인민들이 바칩니다.

 

홍영진-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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