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56

상담은 내 삶의 안내자 - 이수미 조합원

인터뷰할 때는 녹음을 해야 하기에 조용한 공간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남들의 시선이나 다른 소리가 끼어들지 않는 조용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지요. 심심 활동을 하는 이수미 조합원을 만난 곳은 길목의 새 보금자리인 ‘전태일 기념관’ 4층 작은 방이었어요. 복도 한쪽에는 커피나 차를 마련할 수 있는 조그마한 부엌도 있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편하게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수미 조합원은 “상담은 삶을 살아가는데 안내자가 될 수 있어요.”라고 합니다. 자신이 지금의 삶을 살기까지 상담을 통해 성장해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면서 다른 조합원들도 삶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상담을 받아보시라 권했습니다. 

 

Q :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A : 이화여대 사회복지관내 어린이집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주말에는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Q : 길목에서는 심심 상담팀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A : 심심의 간사가 공석이라 다섯 사람이 비상 간사 체계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는 서기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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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길목 초기부터 활동하셨지요? 길목 회원이 된 계기가 있나요? 

A : 제가 세종로 정신분석연구회 회원이에요. 길목이 창립될 때 심심 상담 사업을 위해 저를 포함해 우리 회원 대여섯명이 참여했어요. 저는 특히 ‘길목심심은 마음 치유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의 안녕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심심상담 사업의 취지가 좋아서 참여했습니다. 둘째, 넷째주 토요일마다 향린교회 유치부방에 모여 노경선 선생님과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해, 심심 상담도 했었는데 지금은 상담은 하지 않고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Q : 유아교육이 전공이신데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려니까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상담이 무엇인지 제 삶을 통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실습했던 유치원에서 교사로 오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취직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전 공부를 더 해야 하니 취직은 안 해도 된다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자신을 속였던 것 같아요. 꼭 교수가 되어야겠으니 대학원을 가야 한다고. 그런데 대학원 진학도 잘 안 되었어요 ‘아직 24살이니까 일 년 정도는~’ 이라는 생각도 있고 해서 일 년 동안 일을 못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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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것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 

A : 그때는 몰랐어요. 저는 그냥 제가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현실에서 돈을 받고 일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일도 못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거지요. 아직 마음이 어리고 성숙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난 더 능력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데 사회가 날 안 알아준다, 세상은 뭔가 나하고 안 맞는다’ 는 생각만 한 거죠. 

 

Q : 제 주변의 젊은이들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던데요~

A : 그럴 수 있어요. 자신이 참고 견뎌내며 일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현실은 못 본 채 사회가 자기를 못 알아준다고 그렇게 투사하겠지요.

 

Q : 어떻게 극복했나요? 

A : 일 년을 놀고 나니까 더 이상 놀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청년부까지 다닌 교회 어린이집에 교사로 취업을 했어요. 모 교회이고 내가 이제 헌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거기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 모 교회가 직장이 되면 뭔가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A : 네 그렇지요. (근데 이거는 제가 누구한테도 말한 적은 없는 이야기인데~) 그때 담임 목사님이 저를 5~6년을 봐와서 잘 아시니까 교사로 뽑으실 때 약간 주저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저 자신이 굉장히 밝고 발랄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유아교육을 전공했으니 교사 역할을 아주 잘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른들이 볼 때 그 시절의 저는 위험 요소가 있었던 거예요.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감정 기복이 심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 모습을 못 보는 철없는 20대였던 거예요. 현실 감각이 없었던 것이지요. 일하다 보니 아이들 만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제 문제를 직장에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현실에 부딪힌 거죠. 그래서 저의 20대는 굉장히 우울했어요.

 

Q : 성격이 밝고 명랑해서 자기 자신이 우울한지도 몰랐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A : 그게 그림자이지요. 남들한테는 보여주기 싫은 내 모습인데…… 사실 남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도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고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면 발전이 있는 건데,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하니 발전도 못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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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학원 공부는 언제 하신 건가요? 

A : 어렵게 일하던 중에 대학원에 합격했어요.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려고 했는데 목사님께서 오전 근무만 하고 대학원을 다녀보면 어떻겠냐 제안해 주셨어요. 그런데 교사라는 본업이 있으면서 공부를 하니까 공부가 재밌더라고요. ‘나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는 IMF 사태 직후라서 여성 취업이 늘어나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팽창할 때이고, 유아교육계가 성장하는 시기였어요. 논문 마치고 유학 가고 하면 교수가 될 확률이 높았지요. 

 

Q : IMF 사태 이후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 수요가 많아지니 교수가 매우 필요해졌군요? 

A : 네 그렇지요. 논문을 쓰기 위해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는데, 시간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논문이 너무 안 써지는 거예요. 제 논문 주제가 다문화 관련한 것이었는데, 몸무게가 10kg나 늘면서 어찌어찌 논문을 썼어요. 논문을 쓰던 6개월 동안 심리적 브레이크 다운(Break down)이 와서 은둔형으로 살았는데 그때 ‘이대로 있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진로가 순탄하게 펼쳐질 상황인데도 그랬네요? 

A : 네 맞아요. 그런데 저는 거꾸로 그때 브레이크 다운이 와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나중에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나서 보니까 마음이 성장하지 못한 내가 성인 흉내 내면서 사니, 어른으로서 ‘생산’해야 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논문을 쓰는 일도 생산이잖아요.

 

Q : 브레이크 다운(Break down)이라고 하면 슬럼프나 무기력증 같은 건가요? 

A : 그걸 뭐라고 할까요~ 우리 말로 정당한 표현이 생각이 안 나네요. 슬럼프는 잘하다가 슬럼프가 찾아와서 못할 것 같은 그걸 극복하면 되는 거라면 저는 가까스로 버티다가 무너져 내리고, 다 무너져 내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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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렇게 힘든 순간에 어떻게 하셨어요? 

A : 그때는 핸드폰이 없을 때라 전화번호를 ’ㄱ부터 기타까지‘ 이렇게 쭉 적어놓은 조그만 수첩이 있었어요. 기억나세요? 그 전화번호 수첩에 있는 선후배에서 대학 교수님까지 제가 아는 모든 사람한테 전화해서 너무 죽을 것 같은 제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마다 솔루션을 제안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너처럼 능력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부터,“ 네가 앞으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는 식으로. 제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거를 이해를 잘 못 하는 거죠. 그러던 중에 이은경 선생님께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말 너무 힘들고 깊은 우울함에 빠져 있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후 이은경 선생님께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제 나이 스물여덟이었는데 한 2년간 상담을 받았어요. 

 

Q : 이은경 선생님은 길목 이사님이시고 심심 활동에 기둥 역할을 하시는 분이신데 이수미 조합원의 길목과 인연이 그때부터 시작된 건가요? 

A : 제가 96년도 여름에 대상관계연구소(현재는 현대정신분석연구소로 바뀜)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돌아보면 제가 대학원 간 것도 제 문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정신분석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어요. 나를 설명하고 이해하게 되는 학문이 있구나! 그래서 이 공부를 계속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 이은경 선생님을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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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상담 후 달라지셨나요? 

A : 네. 유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접고 현실에서 새 출발을 다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그래서 2년 후 딱 서른 살에 어린이집 교사로 취업을 했어요. 마포구청역 건너편에 임대 아파트 단지가 있어요. 거기가 서울시에서 첫 번째로 만든 임대아파트 단지였는데 단지 안에 성산 사회복지관이 있고 복지관 안에 어린이집이 있어요. 거기에 교사로 취업을 했어요. 

 

Q : 다시 현장으로 가셨네요? 

A : 저는 경력도 있고 나이도 있고, 일반 대학원 출신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오만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린이집은 나이나 학력 못지않게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20대부터 일하신 교사들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마 나이 들어서 취업하시는 분들은 이런 현실을 겪어야 할 텐데 그럴 때 자기 자신을 많이 다독여야 할 것 같아요.

 

Q : 성산 사회복지관 어린이집 교사 생활은 어떠셨어요? 

A : 그곳은 임대 아파트 지역이라 생활보호대상자 아이들이 많이 왔어요. 저도 나름대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언가 나누려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일하기로 한 건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제가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교사는 준비가 됐건 안 됐건 애들한테 많이 배워요. 그렇지만 저는 어린이집 교사 일을 일 년만 하고 때려치우려고 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Q : 어떤 점이 힘드셨나요? 

A : 성산 사회복지관 어린이집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운영을 해서 굉장히 잘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제 눈에는 부족한 점이 보이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부모들도 있고, 부모 자신도 아이 같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고, 거친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니까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교사도 있었어요.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일어나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제가 그분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런 정신 없는 속에서 저를 돌아보기보다는 애들 탓, 다른 교사들 탓으로 투사하기가 좋았던 곳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사회화가 덜 되어 소통 능력이 부족한 저를 원장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봐주고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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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성산 사회복지관 어린이집 취업 후에도 상담을 계속 받으셨나요? 

A : 취업한 뒤 상담을 그만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임상 심리를 전공한 친구가 상담에 너무 의존하는 거 아니냐고 그만하라고 권유해서 상담을 끝마쳤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자기가 힘들다면서 이은경 선생님께 상담을 받더라고요. 제 자리를 빼앗겼지요(호호).

 

Q : 그 후로는 상담을 받지는 않고 상담을 하시기만 했나요? 

A : 취업 후 9개월 정도 지나니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과 의논해서 다시 상담을 받았어요. 그랬더니 일하면서 부딪치는 힘든 상황을 조금 버티게 되었어요. 5년 정도는 너무 힘들었는데 제가 정신분석을 공부한 것이 아이들의 문제를 보고 대처할 때 도움이 되었어요. 그 후로는 잘 해와서 일 년만 다니려고 했던 곳에서 10년을 일했어요. 상담을 계속 받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 지금 일하시는 곳은 이화여대 사회복지관이지요?

A : 성산에서 10년 일하고 나서 이화여대 본교에 있는 복지관 어린이집에 원장으로 스카웃 제안을 받아서 오게 되었어요. 저를 스카웃 한 관장님은 제가 성산 복지관 어린이집에 있을 때부터 저의 변화를 지켜보셨던 분이세요. 제가 정신분석을 공부한 것이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문 닫는 어린이집도 꽤 많고 정원 채우기가 힘든 상황인데 우리는 정원을 잘 채워가고 있어요. 여기서 10년째 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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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 교육관이 궁금하네요? 

A : 어려운 질문이네요. 교사가 스스로 판단했을 때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교사로서 적합하지 않을까요? 원장은 교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돕는 역할이에요. 원장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교사가 잘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결정권이 저한테 더 많이 있으니 그런면에서 교사들이 저보다는 약자라고 볼 수도 있죠(그런데 왜 제가 더 약자 같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다른 원보다는 낮춰주는 등 교사가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려고 하죠, 교사들에게도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서 진정한 도움이 되는 기관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얘기해요. 제가 교사 시절에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원장일을 맡은 지금은 행정을 잘하고 싶어요. 행정은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고 좋은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직원과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어린이집도 교회처럼 교사, 부모, 아동의 협의체예요. 그중에서도 교직원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지고 훨씬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해요. 협의체 구성원들이 잘 연결되는 조직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이런 것들은 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는 안 되는 일이지요.

 

Q : 어린이집 원장 일과 심심 활동이 연결되는 점이 있나요? 

A : 지난번 심심 수업에서 수치심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어요. 아이들이나 학부모나 인간 모두 수치심이 있잖아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 아이들이나 교직원, 학부모를 대할 때 훨씬 도움을 많이 되죠. 그런 것이 현실적으로는 우리 어린이집에 대한 평판으로 돌아와요. 저는 잘 몰랐는데 엄마들 맘카페에 우리 어린이집 평판 중 원장인 저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잘 대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거예요. 어린이집 경영을 위해 심심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제가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 힘이 되어주는 셈이지요. 

 

Q : 유아교육과 심리상담가 중 어떤 것이 본인에게 더 잘 맞는 일 같으세요?

A : 제 어린 시절에 제가 상처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상처가 있지요. 요즘 깨달은 것은 상처에 매달릴수록 그것을 못 벗어난다는 거예요. 저는 인테리어나 장식미술, 공간을 잘 보고 꾸미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 마음의 문제로 인해 유아교육에 끌려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안정되고 자신을 깊이 있게 보다 보니까 내가 잘하는 게 이제서야 보이는 거죠. 그렇지만 유아교육에도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이제 와서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Q : 앞으로 삶의 계획이 있나요? 

A : 어린이집 원장은 정년이 60세인데 그때까지 여기서 계속 일할지 제가 일터를 한 번 더 바꿀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젊은 시절의 고민과 상처를 끌어안고 분석해낼수록 이 방향의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알게 되네요. 후배 교사들을 생각하면 전에는 왜 이렇게밖에 못 할까 답답했던 것들이 순화되고 이해하게 돼요. 이 사람들이 미래잖아요. 충분히 가르쳐주고 파트너십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이가 들어도 젊은 교사들에게 배울 게 있고, 그들도 나를 통해서 배울 수 있으면 좋고요. 젊은이들과 같이 잘 가야 하지요, 그래야 나중에 이 사람들이 원장이 되었을 때 나를 고문으로라도 한 번 써줄 거 아니겠어요? (웃음)

 

Q : 교회는 안 다니시나요?

A : 저는 단지 교회에 출석을 안 할 뿐이지 신앙은 있다고 생각해요. 성서의 많은 이야기가 정신분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늘 관심이 있어요. 신앙의 다른 식의 표현이 심심 활동이라든지, 어린이집에서 제 역할을 찾아내서 열심히 달란트를 발휘하는 것이 어찌 보면 성서를 따른 삶이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이유는 일요일 하루는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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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삶에서 ’길목‘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 벌써 8~ 9년 같이 왔네요. 이 기간중에 가끔은 왜 들어왔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심심 운영위원으로 공부 모임 준비와 진행을 돕고 역할을 하는 것을 좀 더 잘하고 싶네요. 저도 50대를 맞이하고 보니 일하는 것도,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도 할 수 있을 때 잘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심심에서 노경선 교수님이나 이은경 선생님 같은 분들이 무료로 수업하시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상담 선생님들과 운영진들도 굉장히 헌신적이에요 공부모임에 오는 사람들도고민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굉장해요.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그런 분들을 만나고 삶을 나누는 것이 제게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 되어요. 그것이 제가 길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고, 그 힘으로 제 삶을 힘있게 살아가지요. 

 

Q : 길목 조합원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상담의 도움 받아보라고 권하셨는데 자신에게 상담이 필요한지 자기가 알아채지 못 할 수 있잖아요? 정말로 상담이 필요한 때는 언제인가요? 

A : 살면서 누군가가 너무 무섭고 싫다거나, 일하면서 굉장히 불행하거나 힘들거나,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할 때겠지요.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상담사는 내담자가 놓치고 있는 마음의 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때로는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그로 인해 삶의 태도가 유연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다 상담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제게는 상담이 제 인생에서 도움이 되었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성찰하는 것은 필요하잖아요.

 

 

이야기를 마치고 이수미 조합원은 심심 토요공부를 진행할 방을 둘러보고 예약을 했습니다. 안정적으로 공부할 공간이 생겨서 참 다행입니다. 우리는 전태일 기념관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옥상에는 사무실과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에는 조그만 텃밭도 있고 잔디밭과 테이블과 의자 세트가 두어 개 있습니다. 흰 차양이 쳐진 그곳에서 길목 조합원들이 담소를 나누면 좋겠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둘이서 기쁘게 여기 저기 구경을 했습니다. 봄 햇볕이 참 따스했습니다. 

 

<삶에 대한 단문 선답>

1. 나에게 믿음(신앙)이란? 저에게 믿음이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죽을 것 같은데, 그 느낌과 같이 한다면 살아난다는 거죠. 그것을 믿기까지 너무 오래걸렸어요.

2. 나에게 행복이란? 오랜 기다림의 대답인 것 같아요. 고진감래같은 거요.

3. 나에게 사랑이란? 삶의 위로라고 생각되네요

4. 나에게 나이 듦이란? 나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네요.

5.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삶을 의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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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어린이집 7살 어린이들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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