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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다. 6.10과 6.25가 나란히 있는...

그는 열아홉에 원양어선을 탔다고 했다. 일찍 학교 문을 나와버린 그가 선택한 뱃일은 그의 일생의 업이 되었다. 타고난 체격에 얼마간 고등학교에 붙어 있을 무렵 럭비부에서 근육과 뼈에 힘을 다져 넣었던 탓에 첫 일로 먼바다에서의 어부가 가능하였으리라. 그렇게 뱃사람이 되어 참치잡이, 게잡이 조기잡이 문어 홍어 갈치 등속을 잡는 배를 타고 외국 바다와 남해 동해 제주 해안을 떠돌았다.

 

제주의 밤,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겨우 행색을 차리고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부터 소주, 막걸리에 고기를 굽는 제주 처자들 옆 테이블에서 한치물회 한 사발을 먹고 어리목 가는 버스를 탔다. 바람에 춤추는 구름이 분화구를 감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사이 남벽을 지나 돈내코로 내려간다. 작년 시월에 한라산 등반을 처음 하고 오늘 어리목을 올라 돈내코로 내려왔으니 주요 등산로는 얼추 다닌듯하다. 어제는 한라산 둘레길 안내가 유난히 눈에 들어와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마침 돈내코 종점을 앞두고 하산길이 둘레길 동백길 코스와 연결되기에 자연스레 발길이 그쪽으로 옮겨 간다. 산행 시작한 지 네 시간이 넘었는데 챙겨 온 에너지바 두 개, 자유시간 하나, 막대사탕 세 개를 먹었다. 중문 출장길에 매일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던 탓에 다행히 허기지지 않는다. 동백길 걷는 동안 송이째 댕강댕강 떨어진 동백꽃을 여럿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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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길을 다 걸을 만큼의 시간 여유가 없다. 적절한 곳에서 하산하기로 하고 길을 남쪽으로 잡았다. 우연한 선택이 주는 행운인가, 어째 나무들이 심상치 않다. 거대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카카오맵 네이버맵 구글맵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은 인공 조림숲으로 들어선 것이다. 알고 보니 무려 산림청 소속 국가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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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그루의 편백, 350본의 삼나무가 1969년에 심어져 반세기를 살아낸 것이다. 내 나이와 엇비슷하다. 그때도 국가가 기능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넋을 놓고 쳐다보며 걸었다. 날렵한 몸매의 스님과 조우하여 인사를 드렸더니 우아한 포즈로 합장하며 지나간다. 극강의 산책길이라 부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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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출장은 중문단지 내에서 열린 전기차 엑스포 때문이다. 숙박비에 여유가 없어 십여분 떨어진 인근 마을에 머물렀다. 아침 산책하다 동네 어귀에 나란히 서 있는 비석을 만났다. 얼어붙듯 서서 4.3 희생자 위령비와 전몰장병 충혼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6.10과 6.25가 나란히 있는 6월에 다시 생각한다. 저렇게 살아왔구나! 별일 없다면 앞으로도 저렇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왼쪽과 오른쪽이 너무 과하게 어긋나지 않고 살짝살짝만 비켜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족: 그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가 원양어선을 탈 때 나는 6.10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35년 만에 만난 우리는 늦은 시간 신제주 어느 골목, 그의 안사람이자 억센 제주 여인이 하는 식당에 마주 앉아 새벽까지 통음(痛飮)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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