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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띵동~ 왕진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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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치의로 만난 장애인들

posted Sep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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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60
글쓴이 고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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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대통령 주치의가 있다. TV 드라마에서 재벌 회장님이 아프면 무슨 박사라고 하는 주치의가 대저택에 와서 진찰을 하고 심각한 얼굴로 향후 예후를 말하는 장면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부러운(?) 주치의제도가 우리나라에 있는지? 있다. 중증장애인들은 주치의를 정해서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8회까지 집으로 오게 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방문진료 전문 서울36의원은 종로구에 자리 잡고 있어 처음 환자와 만나기 위해 한 일은,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노들야학>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는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은 장애인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곳 사무국장과 장애인 학생회장, 코디네이터를 서울36의원 직원 전원, 즉 의사 3 명과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함께 만나고, 그곳 탈시설 장애인들의 현황을 듣고 장애인 주치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곳 탈시설 장애인들은 자립주택에서 활동지원사와 생활하면서 자립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지하철 시위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장애인주치의로서 처음 만난 환자는 뇌성마비로 선천성 지체장애가 있어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38세 여성이었다. 늘 앉아만 있어서 요추와 천추 부위에 욕창이 생겨 방문진료를 요청받았다. 장애인 자립주택은 연립주택의 한 곳이었는데 실제 가보니 예상과 달리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탈시설 장애인들이 자립주택에 거주하게 되면 세 명의 활동지원사가 24시간 돌아가면서 돌봄을 제공하는데, 여기도 세 명의 장애인들이 방 세 개에 각각 자기 방을 가지고 공동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면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환자는 무척 명랑한 여성으로, 장윤정 노래를 유튜브로 들으면서 노래하기와 그림 맞추기가 취미였으며,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가볍게 화장도 하고 귀걸이 팔찌 등 멋도 잘 부리고 예쁘다고 칭찬을 하니 무척 좋아하였다. 남자친구와 함께 낀 커플 반지도 자랑하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변기를 대고 엎드려 소변보는 것도 스스럼없이 잘하였다. 욕창 부위 소독을 하고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고 자세를 자꾸 바꿔주기를 요청하였다. 약 40분간 앉아서 우리가 한 일은 욕창 치료 시간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냥 웃고 떠드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다음 달 방문할 때는 욕창의 크기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다짐을 시키고 다음 방문일을 정하고 나왔다.

 

또 다른 여성 장애인은 48세로 선천성 지체장애로 하반신과 팔과 손 마비와 입 주위 근육장애로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수년간 같이 지내온 활동지원사는 입모양을 보고 의사표현을 이해하여 그분의 통역(?)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 환자는 지체장애로 인한 근육통 외에는 다른 기저 질환은 없었으나 우울감이 심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또 진료할 때 심리상담을 원하여 상담 전문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같이 찾아갔다. 이 환자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큰어머니와 새어머니가 의논을 하여, 14세 때 시설로 보내졌다고 하였다. 네 군데 시설을 전전하다가 3년 전 탈시설하고 자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지막 장애인시설에서 남동생과 시설담당자가 통화했는데, 남동생은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생사조차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인은 더 이상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립주택에 잘 살 수 있게 되고 명절에 아버지나 동생에게 명절 선물도 보낼 경제적 여유도 생겼는데 그럴 수 없어서 슬프다고 하였다. 가족에 의한 내버려짐이 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듯하였다.

 

또 다른 나의 장애인 여성은 44세로 노들야학 학생회 부회장으로 야학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동권 시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이다. 7호선 수락산역 인근 주상복합건물로 이사하여 우리 진료팀의 동선도 매우 길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수락산역에는 장애인 이동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장애인전용 리프트가 없어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휠체어를 끌고 마들역까지 가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고 한다. 장애인 전용택시를 부를 수 있지만, 바로 오는 게 아니고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수 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 친구는 44세 여성으로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자신의 근육구축(오래된 근육수축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굳어진 상태)을 풀 수 있는 운동치료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나의 전문영역이 아니라서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물어보았더니, 이에 대한 치료는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고 물리치료사가 관여해야 하는 영역이고 잘못하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서 그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친구는 아침에 1시간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운동영역 안에서 누워서라도 스스로 재활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한다. 처음 탈시설했을 때는 입을 벌릴 수 없어서 이닦기도 못하고 치과치료도 마취를 해야 했는데, 열심히 구강 운동을 하여서 3년이 지난 이제 스스로 입을 벌려서 이닦기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발로 컴퓨터 자판을 치는 연습도 수년간 해서 능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을 해서 아주 조금씩,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크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주어진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고마워하지 못하는 비장애인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지금까지 만난 세 분의 여성 장애인들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었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거리감을 없애주었고, 똑같은 욕망과 인정 욕구와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들이 시설 속에 갇혀서 사회와 분리되어 그림자 같은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에 나와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직시하고 돕고 환대하고 받아주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열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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