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63

고통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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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B가 어느 날 상담 시간에 선생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죽을 것 같은 고통 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면서 상담에 왔어요. 그런데 상담을 통해서 깨달았어요. 나한테 없는 것이 발견될 때마다 시기심에 뒤집어져서 미칠 것 같았고, 화살이 내 가슴에 꽂히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어요. 그 고통을 끌어안으면 쓰러질 것 같아서 고통을 외면했고, 그렇게 고통을 회피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미쳐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미쳐 있는 동안 얼마나 내 현실이 파괴되었는지 깨달았어요. 이렇게 고통이 내 마음속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동안 내 마음은 텅 비었어요. 그래서 나도 사라지고, 텅 빈 마음속에 공허감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내 고통을 만나는 게 너무나 두렵지만, 이제 내 고통과 괴로움을 끌어안는 것이 당면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담자 S는 마음의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이기려고, 마음속에서 늘 몽둥이와 칼을 휘두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있는데 나에게 없는 것과, 내 것이 다른 사람 것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세상을 향해 성질을 부리면, 내 고통이 없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전쟁터가 됐고 폐허가 됐어요. …… 엄마가 주는 밥을 먹고 몸은 자랐는데, 시기심을 다루지 못해서 나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내 마음이 자라지 못하고, ‘나는 나다’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내 시기심과 고통을 없애려다 ‘나’가 사라진 거예요. ‘고통이 숨을 쉬게 하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고통이 숨을 쉴 때 희망이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아요. 왜 고통을 느끼고 끌어안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 내 안에 이런 목소리가 있네요. ‘고통을 없애는 것이 나를 없애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있고 싶다.’

 

내담자들은 대부분 B와 S처럼 상담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 제거되기를 바란다. 사실 내담자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고통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있으면 고통스럽지 않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많아도,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어도 죽는 날까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통은 B와 S의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있는 좋은 것이 나한테 없다.’ 혹은 ‘내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자극되는 상실 경험과 시기심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시기심을 자극받으면 고통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나한테 없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크고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내 것이 작고 적은 것을 발견할 때 쉽게 상처받고 고통받는다. 한 개인이 시기심과 상실 경험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경우, S처럼 잔인해지고 성질을 부리면서 현실을 폐허로 만들거나, B처럼 정신증적 상태에서 자신의 현실을 파괴한다.

 

한 개인이 상처받고, 고통받을 때 그 고통을 감당하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개인이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없을 경우, 마음은 정서적인 고통 앞에서 마음을 마비시키거나, 필요하다면 마음 자체를 완전히 비워버린다. 즉 마음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 마음 그 자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그는 살아있음이 불러일으키는 고통 때문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증오하고 시기하고 공격한다.(마이클 아이건, 정신증의 핵, p. 56.) 이러한 태도는 고통을 감당하고 견디는 능력이 없는 정신증적 개인이 고통에서 비롯된 공포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B와 S도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정신증적 행동화를 통해 고통을 회피했다. 그 결과 ‘나는 나다’를 성취하지 못함으로써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숨 쉬는 기계 같은 존재, 즉 영혼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위니캇에 따르면, 고통을 견디는 능력은 생의 초기에 어머니의 정서적 돌봄을 통해서 발달한다. 생의 초기에 유아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가 제공하는 환경 안에서만 “자아 핵”을 모으는 것, 즉 “나는 나다”를 성취할 수 있다. 위니캇은 이러한 어머니의 기능을 “안아주기”라는 말로 개념화했다.(울타리와 공간, p. 52.) 안아주기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의존 상태의 유아에게 제공하는 자연스러운 돌봄을 말한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약한 유아에게 최적의 편안함과 위안을 주고, 적절한 시간에 유아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준다. 또한 유아가 좌절과 시기심과 공격성, 상실의 고통을 경험할 때 달래주고 공감해주며, 유아의 공격성에서 살아남음으로써 유아의 약한 자아를 지원해준다(정신분석 용어사전, p. 327.).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안아주기는 어머니가 유아를 온전한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울타리와 공간, 52.) 그것은 어머니가 유아의 본능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적응해주며, 유아를 침범하지 않고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완벽한 어머니가 아니라 평범한 보통의 어머니를 말한다. 유아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섬세한 돌봄을 통해서 고통을 견디고 달래는 능력이 생기고,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며,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경험한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없는 정신증적 개인은 살아 있음이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고통을 제거하려다 삶의 현실을 파괴하고, 고통 대신에 지옥을 경험한다. 이에 반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개인은 시기심과 절망으로부터 야기된 고통이 숨을 쉬게 하며,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살고 싶은 마음과 만난다. 이때 개인은 위니캇의 말처럼 본래부터 힘들고 어려운 삶이지만,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경험하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좌절과 고통을 외면할 때 희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개개인의 좌절과 고통에 무관심한 사회와 국가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대신 불안과 절망을 안겨준다. 최근에 젊은 청년들이 산업 현장과 이태원에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잃었다. 산업현장의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10. 29.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없는 현실이 무척 암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고통 속에 희망이 숨 쉬고 있다는 진실이 압사당하지 않는 세상, 젊음과 희망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주: 위에 적은 사례는 내담자가 동의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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