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정(세종로연구회)65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거절' 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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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우가 있다. 주변이나 드라마에서 보면, 나를 함부로 대하면서 싫다고 거절하는 나쁜 남자(혹은 여자)에게 더 매달리고 떠나지 못하는 경우들.

나로 말하자면, 내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는 나 또한 세상에서 가장 관심 없어 했으므로, 어떤 면에서는 위에서 말한 그런 나쁜 남자들을 만날 확률은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을 퍽이나 다행으로 생각하며 (속으로는 약간 우쭐대며) 살아왔던 것 같긴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상대로부터 '거절' 당할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는 일종의 절박함이 있어서 나를 거절하지 않을 상대들만 안전하게 만났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랬던 내가, 소위 상담자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거절'이라는 주제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가장 단순하게는, 내가 하는 말을 내담자가 곧잘 거절했다.

내담자 S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곳에 지원서를 내보았지만 떨어졌다는 대답들을 들었다.

(S) "오늘 여기 상담실에 오는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회사원들이 이 건물로 엄청 많이 들어오던데요."

(상) "그렇죠? 그런데 S씨는 현재 직장이 없고, 아직 일할 곳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직장인들이 점심 먹으러 가는 걸 볼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겠어요."

(S) "아니요, 어제는 떨어진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그러고는 상담이 자신에게 필요한 충고와 조언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거절하는 또 다른 방법은 지각을 하고 상담실에 오지 않는 것이다.

내담자 H씨는 지난주 상담에 오지 않았다. 이 날도 15분 정도 지각인데, 급하게 온 듯 현관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다.

(H) "지난주에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잘 못 자고 있다가 새벽 일찍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서, 다시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리고는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에 대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가 밖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기서 상담자인 저와의 관계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지난주에 상담에 열심히 올 생각이 없었던 건가 싶어요."

H씨는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담이 이제 어디로 가려하는지 모르겠고, 상담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결석하는 행동으로 상담자를 거절하지만,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담자와는 관계를 이어가며 소통을 할 수 있어서 희망이 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상담의 진전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기회를 통해 관계가 더 깊어질 수도 있다. 무엇이 내담자를 실망시켰는지, 혹은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면서, 상담자도 내담자를 더 이해하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내담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상담실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내가 무얼 실수했거나, 서운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내담자가 화가 나고 실망한 것일 텐데, 상담실에 오지 않으니 끝까지 알 수가 없다. 물론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이런 실수가 있었나보다 짐작은 해보지만, 결국 대답 없는 메아리로 끝나고 마는 독백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슬프다.

(혹시 이런 내담자들이 나중에라도 다시 연락을 해오지는 않을까, 혼자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다)

 

내담자 B씨는 어린 시절 박탈이 많았고, 지금도 어머니와 관계가 어렵다. 상담에 꾸준히 오지 못하고, 2회기 정도 오고 나면 한 3주 정도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기를 취소하거나 결석하곤 했다.

B씨가 직장 상사가 따듯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의지하고 믿었다가 결국 실망하고 말았던 일을 말한다.

(상) "B씨는 어쩌면 저와도 가까워지게 되면 실망할까 봐 두려운지 모르겠어요.(B) "아니요,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상)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보죠. 저는 B씨를 1주일에 한 번, 50분밖에 만나주지 않고 있어요. 그 때문에 상담이 냉정하다고 느끼시는 거 아닐까요?"

(B) "아, 그건 맞아요. 안 그래도 제가 친구한테 그랬어요. 무슨 상담을 1시간 밖에 안 하냐. 적어도 2, 3시간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1시간만 하는 이유가 있긴 하겠죠. 소개해준 동료한테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원래 시간을 칼 같이 지킨다고는 하더라고요."

 

내담자들은 때로 상담자가 정해진 약속 시간에만 만나주어서, 24시간 생각해주지 않아서 거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거절감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상담자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담자인 내가 거절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다면, 내담자를 만날 때 자유롭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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