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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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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脫線) 1

posted Mar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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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오낙영
발행호수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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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캭캭캭! 그러니께 니눔의 전생을 알고 싶다 그게여?"

그 웃음소리 때문에 오리대사라는 별호를 얻은 땡중 감우(堪愚)는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을, 미간을 잔뜩 구겨가며 가느다랗게 눌러 뜨고, 건너편 자리에서 엉거주춤 막걸리 사발을 들고 있는 삼번 리어카꾼 김씨를 바라보았다.

김씨는 부끄러운 듯 어정쩡한 웃음을 흘리며 제 딴엔 진지하게 말했다.

"시님두 잘 알고 있겄지만요, 지 팔자가 영 갱그찮지 않더라는 거 아뉴? 가만 생각이란 걸 히여 본께, 전생에 뭘루다 살었는지 살그마니 궁금해지더라 그거유."

김씨가 엉덩이를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에 마저 붙이지 못하고 앉은 듯 만 듯 엉거주춤 서서 말을 마치자, 그의 앞자리에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오번 리어카꾼 이씨가 혀 접히는 소리를 냈다.

"원, 예미랄! 야, 삼 번아. 그런 건 알어서 뭐 한다고 쌩 지랄이냐. 시방 오후 경매두 취소되야서 당정 손꾸락 빨구 있는 주제에…"

"아, 그랑께 그런 거 아녀. 씨불, 나 펭생 못된 짓거리 안 허고 손바닥이 곰발바닥이 되두룩 얄심히 살었는 디두 요모냥 요꼴 이닝께, 전생에 뭘루 살었길래 시방 이런 꼬라진가 부애가 나서 그런 거 아녀?"

"야야, 삼 번아, 삼 번아, 삼 번아!"

오번 이씨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고, 머리 위로 치켜든 주먹은 어지럽게 갈지자를 그리고 있었다.

"시방 우덜 꼬라지를 봐라. 니 말대로 정직허게, 성실허게 살었는디두 하루하루가 아주 아귀 목구녕 쥐어 짜듯기 고통시럽기가 이루 말쓈이 아니잖여. 그럼 되았지, 그럼 알아볼 쪼 아니냐구! 그걸 기역자두 모른다구 낫을 쥐어줘야 허는 겨? 낫 개져다 쥐어 줘봐야 사고나 나지, 그거 휘둘러 불면 어쩔 텨. 어쩔 거냐구, 씨불!"

오번 이씨가 점점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캭캭캭! 선재(善才)로다, 참말로 선재여!"

땡중 감우는 죽장을 식당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오번아. 너 대구리 깍구 내 상좌로 들어오지 않을 텨?"

감우의 느닷없는 상좌타령에 이씨가 어안이 벙벙하였다.

"대산님은 그게 뭔 소리래유? 그 빌어먹을 선재는 뭐이구, 상좌는 또 뭣이여?"

감우는 막걸리 사발을 들어 이씨의 잔에 부딪치고는 단숨에 들이마셨다.

"아, 이씨가 그러지 않었능가? 시방 우리덜 꼬라지를 보라고 말여?"

"그런디유? 그게 어땠게?"

"그게 어땠게라니. 그게 김씨가 알고 싶은 전생을 찾는 열쇠다 이 게지!"

"열…쇠? 열쇠라구?"

순간, 땀에 쩐 몸뚱이에 들러붙은 하루살이 떼 마냥 기분 나쁘게 고여 있는 풍년옥 술청의 허공을 둥둥 떠돌던 말들이 자취를 감추고 무기력하게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에선 모든 것이 멈춘다. 시간조차 멎어버린다. 침묵과 멈춰 선 시간 속에선 의식만 흐른다. 처음엔 작은 구멍 속으로 흐르던 의식이 점점 그 구멍을 키워나가더니 마침내 둑을 무너뜨린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침묵을 깨는 것은 소리다. 소리의 파동은 강력한 추력이어서 순식간에 정지된 모든 것을 흩트려 움직이게 한다.

"아아아아아!"

이씨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비명을 질렀다.

침묵은 깨졌고 술판도 엎어졌다.

 

2.

 

지금쯤 바다로 나가 한창 그물질을 하고 있어야 할 배들이 태풍에 피항한 배들처럼 부두에 줄지어 묶여 있었다. 덩달아 바다를 향해 팔뚝질을 일삼던 선원들도 하릴없이 줄지어 앉아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입을 열기라도 하면 굳게 지켜져 오던 금기가 깨져 곧 재앙이 밀어닥치기라도 할 것처럼 무겁게 입을 단속하고 있었다. 갈매기들조차 눈에 띄질 않았다. 하늘도 바다도 유화 그림 속의 풍경마냥 미동도 없었다.

"굿이라도 해봐야 헐까나? 끙."

팽팽한 활시위가 끊기는 듯 비명처럼 말을 꺼낸 것은 일제히 앉아 뿜어대는 담배연기로 어선의 매연을 대신하던 선원들이 아니라, 수협경매인 최씨였다. 그제야 선원들은 마법에서 풀려난 듯 두런거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선원이 아니니 침묵의 판에 균열을 냈어도 동티가 나진 않을 거였다. 선원들은 그렇게 믿었으며 그게 고마웠다.

"물괴기들이 다 어디로 갔으까? 선광호 선주가 폐선 신청을 했다는 게 증말유?"

늙은 선원 하나가 누구 들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꾸하는 사람도 없었다. 너나없이 모두 이곳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굳이 입 열어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풍어제 끊친지두 꽤 되았지?"

절박하면 미처 챙기지 못한 일들이 뒷덜미를 잡는 법이다.

"제기럴, 요즘 같은 과학문명시대에 뜬금없이 풍어제는 찾고 난리래유."

기중 나이가 젊은 풍양호 선장 아들놈이 툴툴거렸다. 도회지물이나 먹다가 두어해 전에 귀어한 놈은 얼마 전 선장 면허를 땄다고 하는 데, 정작 늙은 선원을 타박하는 말은 아니었고, 다들 그렇게 알아들었다. 너나없이 답답했던 거였다.

견종을 특정할 수 없는 개 한 마리가 뒷다리 한쪽을 절뚝거리며 이곳저곳에 연신 고개를 처박고 큼큼거렸다.

"캭캭캭! 이누무 가이 새끼도 생선 비린내가 맡고 싶은 게로구먼."

시나브로 개의 동선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 오리감우가 한껏 고요를 가장한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3.

 

"이봐, 이씨. 그래 생각은 해 봤는 겨?"

땡초 오리감우는 등받이 없는 긴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오번 리아카꾼 이씨에게 말을 던졌다.

이씨는 같잖다는 눈길로 감우를 일별하더니 건조한 말투로 날을 세웠다.

"거, 부애 돋구지 말구 말 같잖은 말은 입막음용 껌 대용으루다 씹으시던가 허시우."

이씨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 연신 플라스틱 라이터를 거칠게 눌러대다 거칠게 팽개쳤다. 그는 찰스 브론슨을 좋아해서 말보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줄곧 그 담배만 피우고 있는데 최근엔 횟수를 줄이고 있는 중이었다. 오리감우가 누더기 승복 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건네주었다.

"시님두 담배 태시나?"

이씨가 냉큼 불을 받아 담배를 빨며 눙쳤다.

"웬걸? 이건 접대용 물품일 뿐이지. 정작 중생들에게 필요한 건 법어가 아니라 물질일 경우가 더 많거든. 캭캭캭!"

감우의 말에 이씨는 담배 빠는 것도 잊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뭐가 궁금헌디?"

감우가 눈길은 여전히 바다로 고정한 채 물었다.

이씨가 급히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이겨 끄며 말했다.

"시님두 거 뭣이냐, 아침마다 허는 게 거 뭣이여. 새벽 일찍 목탁 뚜들기멘서 염불허는 거…"

"예불?"

"이, 예불? 그류, 예불!"

그는 감우 곁으로 몸을 기울이며 뭔가를 낚아채려는 맹금류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왜? 땡중은 그런 거 안 허구 사는 게미?"

"그렁께, 그런 것두 허기는 허시는 게비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낯빛이 밝아졌다.

"단도직입적으루다 묻겄슈?"

이씨는 뭔가를 작심한 사람처럼 서두르고 있었다.

"시님은 깨달으셨어? 도를 읃으셨냐규."

이씨의 추궁에 감우는 난감한 심사를 애써 감추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삼번 김씨는 왜 안 보이는가?"

감우는 칼끝을 피하고 있었다.

"어제 얘기에 충격을 먹은 규. 시방 꼬라지가 겔국 전생의 열매라는 걸 알구…"

"나쁜 짓거리 안 허구 성실허게 얄씸히 살었대매?"

감우의 댓거리에 이씨가 빈정이 상한 투로 언성을 휘둘렀다.

"그렁께 더 부애가 난 거 아뉴? 이생에선 지금 꼬라지를 벗어날 수 읎다는 거 아녀? 씨불, 떵떵거리구 사는 눔들은 전생에 모다 나라를 구한 겨? 우덜은 나라를 팔아 묵고?"

감우는 난감해졌다. '하! 선무당이 사람 잡은 격이네. 나란 놈은 땡중도 못 되는 놈이로구나. 애초에 그런 거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거 였는 디, 탈선을 해버렸고만.' 난감하고 난감한 일이었다.

'애초에 인간이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거늘……'

스승은 그에게 감우(堪愚)라는 법명을 지어 내려주면서 '너는 그 어리석음을 감당하는 중이 되어라. 애써 밝아지려 하지도 말 것이며, 크고 너른 자리에 가 넙죽 앉지도 말거라.'하셨거늘, 주제넘는 훈수로 그렇지 않아도 거칠고 험한 그의 길에 장애물을 끌어다 놓았다는 자책이 들었다.

"아, 그려서 깨쳤냐니께 왜 대답을 안 헌댜?"

이씨는 곁줄기로 새어나가려는 물길을 되돌리고 있었다.

"끙…, 그런 걸 했으면 이 쬐그만 포구에서 빌어먹고 있겄는가?"

감우의 밋밋하고 싱거운 말투에서 어떤 공간(空間)을 읽었는지 이씨가 다시 말보로 갑을 열어 한 개비를 꺼내 들었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감우가 지포라이터로 불꽃을 일으켜 들이밀었다.

이씨는 담배를 빨아 깊이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또한 길게 뿜어냈다. 그리고는 연거푸 두 번을 빨고 다시 긴 줄기의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나는 무식허고 못난 사램이지만, 생각이란 걸 히고 보니, 사램이란 게 그런 거 같소. 풍어가 들고 공판장이 바뻐지먼, 제우 리아카나 끄는 주제에 우덜까지 덩달아 흥청망청 허더라는 게쥬? 그때는 도무지 사는 게 뭔지 생각할 겨를도 읎이 그저 웃고 떠들고 풍년옥 매상 올려주는 디 열중하다가, 요즘처럼 괴기 그림자도 보기 심들어지먼 그때서야 지 꼬라지 더듬어 보믄서 팔자타령을 허게 되더라는 겨."

"옳거니! 선재로다, 선재여!"

감우가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을 때였다.

"선재고 나발이고 시님이 책음지슈!"

감우의 뒤통수께서 단단하게 뭉쳐진 말이 짱돌이 되어 날아왔다. 삼번 김씨였다. 감우는 통증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 인연을 어찌 감당헐꼬!'

김씨는 이씨 곁에 쭈그리고 않았고, 이씨는 말없이 그에게 말보로 한 개피를 건네주었다. 감우는 또 잽싸게 라이터를 긁어 불꽃을 피워냈다. 김씨는 담배를 깊게 빨았고 길게 내쉬었다. 담배연기와 함께 탁하고 역한 냄새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큰물 지고 난 냇가의 모습 같은 그의 얼굴에서 간밤을 겪어낸 고뇌와 좌절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런거 읎유. 내 주제에 무슨 그런 거창한 얘기가 있겄남?"

감우의 짐작을 읽었는지 김씨는 손사래를 치며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몇 년 전에 해 박았다는 스테인리스 이빨이 반짝거렸다. 쓸쓸한 미소였다.

"해장허끄나?"

이씨가 김씨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녀!"

김씨가 이씨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색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여태껏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보진 않았던 것이다.

"나, 이제 맨 정신으루다 시상을 보먼서 살어 볼라구. 심들다구 에렵다구 맨날 술지운 빌려 시상에 대구 팔뚝질이나 허메 살었는 디, 인자는 두 눈 똑바루다 치켜뜨구 한 번 지켜볼라네."

그렇게 말하고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여전히 헛헛한 눈길로 빈 바다를 응시하는 김씨에게서 알 수 없는 색기(色氣)가 느껴졌다. (다음 호에 계속)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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