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일곱째별의 정원일기]

d2d0d9

레퀴엠이 흐르는 정원일기

posted Apr 25, 2023
Extra Form
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6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레퀴엠이 흐르는 정원일기

 

 

기획사 소속 배우들 프로필인 줄 알았다. 

하나같이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젊음들이었다.

똑같은 경기도 고등학교 교복 입은 학생들도 아니었고 제각각 여유 있게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었다. 

 

159명.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는 몇을 제외하고는 거기 모인 모두가 불렀다. 

 

"기억하겠습니다. OOO”

 

 

그 정원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가 일어난 2011년에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밥상을' 피켓을 들고 서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는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었다.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인 2015년 4월 17일에는 4470명의 촛불로 세월호를 만들기도 했었다. 

22번이나 나갔던 촛불집회 이야기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

 

그 서울 시청 앞 정원에, 

유족들이 외로울까 봐 간 2023년 2월 4일, 

159명의 영정 사진이 ‘기습'이라는 보도 기사 제목처럼 왜곡된 땅 위 허술한 분향소 안에 놓여 있었다. 

 

지난가을, 2022. 10. 29. 

불과 몇 분 사이에 서울시 한복판 이태원에서 푸르디 푸르게 건강하던 젊은 가족을 잃고 유족이 된 이들의 손이 영정 사진 위에서 울부짖었다. 

 

 

DSC09450_resize.jpg

 

 

밤이 되자 전기를 공급해 주지 않은 서울시 덕분에 컴컴한 분향소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시민들이 길지 않은 줄을 이었다. 빨간 목도리를 맨 유족들은 조문객 한 분 한 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DSC09463_resize.jpg

 

 

한때 정의를 외치던 그 정원에 부정(不淨)과 분열이 걸어갔다. 

권력은 부패했고 민주는 주인을 잃었다. 

사랑타령이나 하던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10km 걸어 혹사함으로 스스로를 벌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 고개 돌리고 떠날 수 있는 정원도 없는 나는 서울 시청에 걸린 걸개에다 묻는다.

 

100일이 되도록 대체 누구와 동행했느냐고. 

 

 

DSC09476_resize.jpg

 

 

그날 너무나 오랜만에 광장, 아니 정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둘. 

지난 2년간 은둔에 가까웠던 내 바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더니 

다음 날 그 번호로 소식을 하나 보내왔다.

 

만나지 말 걸

알려주지 말 걸

차라리 모를 걸

죽음 가득한 서울에 올라오지 말 걸

 

訃告(부고) 

 

159명의 죽음에 100일 추모제를 하던 날,

사라진 또 한 생명

 

LBGT라 명명하는 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예배한 

故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며  

삼가 영전에 음악 한 곡을 올려 드립니다. 

 

부디 사랑이 가득하고 평등한 그곳에서 평화로이 영면하소서. 

 

 

https://youtu.be/_VLY2bd5w8k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sus.gif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했습니다.


  1. 레퀴엠이 흐르는 정원일기

    레퀴엠이 흐르는 정원일기 기획사 소속 배우들 프로필인 줄 알았다. 하나같이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젊음들이었다. 똑같은 경기도 고등학교 교복 입은 학생들도 아니었고 제각각 여유 있게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었다. 159명.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는 몇을...
    Date2023.04.25 Views117
    Read More
  2. 논산 가난한 자의 방 정원일기

    논산 가난한 자의 방 정원일기 종강일만 기다렸다. 2학기가 끝나고 일주일 후 시작된 겨울 계절학기. 그것 때문에 빗나간 운명. 계절학기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생태마을 집에 책꽂이와 스크린을 설치하고 책과 영화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목...
    Date2023.04.09 Views107
    Read More
  3. 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미역국 때문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종일 굶고 일한 후 늦은 오후에 첫 끼니로 맞이한 미역국. 연한 소고기와 부드러운 미역이 깊고 뿌연 바닷물에서 춤을 추다 뱃속으로 들어와 위로해 준 미역국. 맛은 예술이고 느낌은 감동인 미역국. ...
    Date2023.02.26 Views109
    Read More
  4. 눈물겨운 정원일기

    일곱째별의 정원일기 - 눈물겨운 정원일기 갈 곳이 없었다. 진도에서 나와 담양과 남원을 거쳐 6개월이 지났지만. 일단 원주로 갔다.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 문학의 달 <작가와 북토크>를 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려 녹음이 사방으로 에워싼 원주에 들어...
    Date2023.02.02 Views110
    Read More
  5. 진도 하얀집 정원일기 - 안녕

    진도 하얀집 정원일기 - 안녕 [모리의 정원]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전남편이 싫지 않지만 이혼한 여자와 남자가 30년 동안 정원 있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온종일 정원만 쳐다본다. 정확히 말하면 정원의 풀과 꽃뿐만 아니라 ...
    Date2022.05.03 Views472
    Read More
  6. 남원 귀정사 정원일기 1 – 낀방

    남원 귀정사 정원일기 1 – 낀방 삼일절을 맞아 독립의 지평을 넓혀 이사했다. 정읍을 떠나 남원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으로. ‘인드라망’은 서로를 비추는 무수한 구슬들이 엮인 관계의 그물망을 말한다고 한다. ‘더 나은 내일...
    Date2022.03.31 Views700
    Read More
  7.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10 – 축 생일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10 – 축 생일 지났으니 부담 없이 하는 말이지만, 작년과 올해 두 번이나 정읍에서 생일을 맞았다. 사주 명리나 별자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내 생일은 나랑 어찌나 닮았는지 일 년 중 유일하게 덜 떨어진 달에 있다. 속마음...
    Date2022.03.01 Views465
    Read More
  8.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9 - 다시 간 만영재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9 – 다시 간 만영재 달그락 달그락 조심스러운 설거지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잠시 후 딸깍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나면 몬스테라와 벵갈 고무나무와 접란이 있는 집안은 고요하다. 잠시 빌린 어두운 방은 관 속 같고 누워있...
    Date2022.01.31 Views399
    Read More
  9. 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5 - 위로

    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5 – 위로 자, 위로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백련재 문학의 집에 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라는 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삼색 어미고양이 (백)연재, 색깔별로 이름 지어준 까하, 회, 죽은 노랑이 그리고 아비고양이. 이...
    Date2022.01.03 Views388
    Read More
  10. 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4 - 나를 울리는 것들

    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4 – 나를 울리는 것들 내 이름 앞으로 온 우편물을 받아보면 내가 그 집에 머물고 있음을 실감한다. 보통 1~3개월의 입주 기간을 주는 다른 레지던스에 비해 5개월이나 살게 해주는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나는 그런 기쁨을 누렸...
    Date2021.12.04 Views41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