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68

에두아르도 콘, 2018 - 숲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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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역

(2018, 사월의책)

 

 

포스트휴먼 생태주의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공감을 하면서도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공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인 내가 나무의 눈을, 혹은 개의 눈을, 혹은 명태의 눈을, 혹은 신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인간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근대 이후 인간중심주의에 물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신을 관념상의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아니 인간이 그 자체로 소(小)우주이고,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의 주변에, 혹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인간중심적인 사고와 개발 작업과 생활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지구가 오염되고 이상기후가 빈번하고, 이제는 인간 자신도 살기 어렵게 되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 저자는 비인간 존재와 인간이 맺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방법을 개발하고,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해 온 방식을 비판한 포스트모던적 비평에 합류한다. 저자는 모든 사고의 기초를 형성하는 '표상 과정들'과 '살아있는 과정들' 간의 연결고리를 포착한다. 이 연결고리는 인간적인 것 너머에 놓여 있는 것들을 민족지학적으로 주시할 때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저자는 표상의 성질에 관한 우리의 전제를 다시 사고하게 해 주는 시야를 먼저 장착하고, 다음으로 그런 새로운 시야가 우리의 인류학적 개념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이런 접근법을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anthropology beyond the human)이라 부른다.

 

저자는 에콰도르에서 4년간(1996~2000년) 지내면서 아빌라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첫 방문은 1992년, 마지막 방문은 2010년이었다. 아빌라 지역은 아마존 밀림의 상류지역에 있다. 저자는 이곳에서 사는 루나족 사냥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그들이 다른 부류의 존재들과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는지 조사했다. 저자는 루나족이 속한 생태적 그물망을 감지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위해 수백 개의 민족생물학적 표본들을 채집했다. 이런 수집품들을 모으면서 숲과 그 수많은 창조물들에 관한 실마리를 손에 넣었다. 이를 통해 생태적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 첫발을 내디뎠고, 반드시 특정한 인간적 맥락에 구획되지 않고서도 이러한 이해와 숲의 세계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연결 짓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 인간을 예외적으로 만드는(그 외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우리의 배타적인 관심의 결과로서 축적되어 왔던 과도한 개념적 수하물로부터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 너머의 세계에서 우리가 민족지적으로 발견한 뜻밖의 특성들로부터 새로운 개념적 도구를 연마하는 길을 열어준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정신적 폐쇄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인간을 넘어선 인류학. 이 책은 숲의 진정한 본성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런데 읽기가 그리 녹녹지 않다. 몇 번씩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숲이 생각한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식물이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고, 동물도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고, 인간도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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