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보통 내담자들은 이해받기 위해 상담을 찾는다. 그러나 어떤 내담자들은 마치 자신이 이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거나 부정적인 치료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내담자들에게 자신을 이해받는 것은 마치 자신이 침범받는 일이며 상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는 경험이 내담자의 마음에서는 마치 나쁜 일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은 모르고 싶었던 일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어 아주 불쾌하다는 말하기도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바뀌고 왜곡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내담자 A는 요즘 매 회기마다 자신은 더 이상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생각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상담이 자신의 삶을 방해하고 힘들게 하고 있다고 불평불만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며 그게 비록 좀비나 산송장같이 느껴지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바로 원하는 것이라고 고집을 피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내담자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나에게만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답답하다. 그러던 중 내담자 A는 주중에 혼자 있을 때 상담시간에 나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고, '이제부터 나에게 좋은 것을 줘야겠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공황증세와 불안, 두려움이 느껴져서 즉시 그 생각을 멈췄다고 했다. 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할 때 이런 감정이 느껴졌을까? 두려움은 위험하거나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드는 불안한 마음인데, 뭔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온은 모성적 담아주기가 실패한 경우 유아는 어떠한 대상과도 유익한 관계를 추구하거나 배우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이고 시기심 많은 초자아가 발달한다고 했다. 로널드 페어베언은 유아적 의존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대상경험을 한 유아는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대상이 아닌 유아 자신의 사랑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 결과 유아 자신을 약하고 무력하며 수치스럽게 느끼게 된다.
내담자 A는 부모의 무관심, 학대 속에서 자라났는데, 어릴 적부터 자신은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마음속으로 자신은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된 지금도 자기 비난, 수치심이 심했다. 내재화된 나쁜 대상들이 자아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재경험을 계속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이해받기 위해 상담실에 왔지만, 동시에 이해받는 경험은 위험하게 느껴지고 좋은 경험은 쌓이지 않았다.
사실 내담자 A와 마주하고 있으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오래 동안 상담자와 좋은 경험을 쌓지 않고 배우지 않았으며 무의식적으로는 파괴적인 나쁜 관계를 주로 추구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상담실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상담자를 미워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내가 그렇게 말을 걸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기비난이 심했고, 피학적이었으며 때로는 가학적이었다. 어느 꿈에서는 나에게 다가오는 멋있고 우아한 노신사분에게 화를 내며 내쫓기도 했다. 아마 그 노신사분은 지혜 노인이었던 것 같은데, 나 역시 좋고 나쁜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내가 부모님의 좋은 모습은 보고 배우지 않고, 부모님의 실패와 단점만 붙들고 화를 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얼마 후 엄마와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너랑 있으면 좋으면서도 늘 불편했는데, 오늘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늘 내가 불편하셨구나. 참 많이 미안하고 죄송했다.
상담은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감싸주는 과정인 것 같다. 내담자 A도 나도 마음의 상처를 감싸고 자신의 내면에 '나는 이대로 괜찮다.'라는 마음이 중심에 자리 잡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