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명70

도토리와 참나무

심심은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공부모임을 갖는다. 한 번은 책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시간이고 다른 한 번은 상담자들이 실제 상담사례를 가지고 심심의 상담사들과 나누고 노경선, 이은경 선생님께 슈퍼비전을 받는 시간이다. 정신역동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부족한 나는 슈퍼비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이해하지 못해 따라가 보고자 중간중간 추천해 주신 책들을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어려운 면들이 많기도 한 시간이다.

 

여하튼 사례발표시간에는 여러 내담자를 만나볼 수 있는데 어떤 내담자의 사례를 들으면서는 내담자에게 무척 공감이 되고 돕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드는 반면 어떤 내담자의 경우는 상담내용을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나기도 하고 나라면 그만두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상담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에게는 주로 우울한 내담자들이 많다. 실제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거나 양극성 장애2형인 분들이 주를 이루고, 힘든 삶을 이어가는 그분들이 덜 고통스럽고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파라노이드 하거나 나르시시즘이 강한 분들을 만나야 하는 경우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내담자를 상담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그런 분들은 쉽게 상담장면에 오시지는 않는 듯하다) 사례발표시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될 때, 그분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와 어려움이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직접 상담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사례발표시간을 통해 잠시 만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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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얄롬(Irvin Yalom)과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했던 때가 있었다. 인간이란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의 타고난 경향성을 가지고 있어 마치 도토리가 한그루의 참나무로 성장하는 것처럼 방해물이 제거되기만 한다면 그 개인은 성숙하고 완전하게 자아실현을 하는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내용이었다. 그리고 상담자의 역할은 그 방해물이 무엇인지를 찾고 내담자와 같이 제거하는 일이라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내가 신앙을 가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마치 인간은 누구나 그 안에 하느님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들리면서 사람을 보게 되는 시선, 상담을 하는 자세, 나 자신에 대한 태도까지 많은 것을 바꾸게 된 일이 있었다. 사실 그간 내가 만나온 우울한 내담자들은 자신을 무척이나 하찮고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하는 많은 일에서 죄책감, 자책감을 느끼시는 분들이다. 자존감이 무척 낮은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전엔 이런 분들에게 작은 성취감을 지속적으로 갖도록 도우면서 자존감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 방식이 백 프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방식은 본질적으로 자존감을 갖도록 돕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젠가는 실패하고 실수하고 현재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내려와야 하고 현재는 건강하다 해도 늙고 약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성공경험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실패하고 실수하고 힘이 없고 늙어도, 젊을 때처럼 강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수용하고 자신의 내면에 한그루의 도토리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은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지난주 사례발표시간에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깨닫고 감동했던 카렌 호나이와 얄롬의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례발표시간에 내담자에게 강한 저항감, 불편감을 성토하고 있을 때 노경선 선생님이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내면에 그런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담을 할 수 없다고 조용히 한 말씀을 하셨다. 스터디가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손발로 가는 거리가 제일 긴 거리라고 이야기했던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깨달은 바가 실제 생활로 잘 이어지지 않는 내게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나 자신 역시도 내 안의 하느님이 부처님이 본성을 꽃피울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여느 내담자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금씩 방해물들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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