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가 온다 : 진화를 지배하는 놀라운 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제니퍼 다우드나, 새뮤얼 스턴버그 지음
김보은 역
(2018, 프시케의 숲)
2018년 11월 28일,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쌍둥이 아기를 태어나게 했다는 중국 과학자의 충격적인 발표를 나는 홍콩 학회 현장에서 직접 들었다. 160명이 넘는 기자들이 빼곡히 몰려 취재하는 가운데, 유전자편집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인 <인간 게놈편집에 관한 제2차 국제 정상 회의(이하 "게놈편집 정상 회의"로 약칭)>에서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가 한국의 생명윤리전문가로서 필자를 발표자로 초청해서 한국의 유전자편집 과학자인 김진수 교수와 함께 그 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 영국의 사회학자가 나에게 귓속말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개발로 노벨상을 받을 만한 후보들이 이 회의에 다 모였다고 했다. 그 회의를 주도한 조직위원들 가운데 키가 크고 늘씬한 금발의 미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버클리대 화학과 교수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1964~ )였다. 그녀는 2012년 크리스퍼 캐스9(이하 "크리스퍼"로 약칭)를 처음 고안하여 2년 후인 2020년에 공동연구자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같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최초로 여성 두 사람이 공동 수상하게 된 경우다. 크리스퍼가 생물학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기 때문에 크리스퍼를 만든 지 10년도 안 되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제3세대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는 가히 혁명적인 기술혁신이다. 크리스퍼는 비용이 저렴하고 정확하며 고등학생의 생물학 지식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유전자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무궁무진한 활용성을 가진 크리스퍼는 선하게 쓰이면 식량문제, 환경문제, 질병과 공중보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무기가 된다. 그러나 악한 의도를 가지고 생물 무기를 만들거나 무분별하게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생물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전 가능한 인간 유전자편집이 문제이다. 크리스퍼로 높은 지능, 미모, 체력, 장수, 음악이나 스포츠에서의 탁월한 재능처럼 원하는 특성을 가진 맞춤 아기, 슈퍼베이비를 만드는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게 된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밤에 자다가도 돼지 모습을 한 아돌프 히틀러가 크리스퍼를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악몽을 꾸며 일어나는 고뇌를 겪은 다우드나 교수는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고 실험실 내에 안주하는 대신 과감하게 세계 시민들과 이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아가고자 하였다. 문제는 과학자의 세계와 시민들의 일상 세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으며, 양자 사이에 벽이 너무 두텁다는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도 세계 과학자와 시민들과 소통을 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박사학생이었더 새뮤얼 스턴버그와의 공동저작인 이 책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1부 '도구'에서는 흥미진진한 과학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의 크리스퍼 발견에 이르기까지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발견 이래 유전학의 획기적인 발견과 기술혁신을 다룬다. 전문용어가 나오기도 하지만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며, 논리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00년대 초반 박테리아가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조각으로 절단하여 파괴하는 독창적인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이를 DNA를 교정하는 독창적인 기술로 전환해서 고안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2부 '과제'는 크리스퍼 기술을 실제 적용하는 이야기이다. 크리스퍼 기술로 인해 이미 근육이 강화된 개, 뿔이 없는 젖소, 형광 빛이 나는 돼지가 만들어졌다. 특히 인간의 질병 치료에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전 세계에서 연구되는 바를 설명한다.
이 책의 탁월함이자 다우드나 교수의 탁월함은 크리스퍼라는 혁신적 과학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녀의 헌신과 결단이다. 원자폭탄은 비밀리에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후에나 이의 사용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 오펜하이머를 언급하며, 다우드나 교수는 지금까지 인류가 가져보지 못한 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무기인 크리스퍼를 고안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너무 늦기 전에 인류가 크리스퍼와 이의 사용에 대해 알고 논의하고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크리스퍼 이용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다우드나 교수의 고뇌와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대중을 참여하게 하기 위한 활동들을 다룬다. 다우드나는 2015년에 미국에서 처음 유전자편집 정상 회의를 조직하였다. 유전자편집 기술이 인간배아에 활용되어 영구적으로 유전되는 일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과학자뿐 아니라 윤리학자 종교인 사회학자 정치가 정책입안자들이 모여 논의와 숙려를 통해 정책 결정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역사를 바꿀만한 거대한 과학적 혁신을 이루어낸 주인공이 그 직후에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책을 내는 일은 드물다. 게놈 편집이라는 혁명에서 과학기술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가 세계 시민에게 보내는 이 책은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처럼 고전의 반열에 들게 될 것이다. 다우드나 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적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미증유의 기술을 가진 인류가 이 기술을 이해하고 정책 결정에 시민사회가 참여하여 선한 방향으로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