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73

상담사란 사람이 되는 길 – 오자연 조합원

상담사란 사람이 되는 길

- 오자연 조합원

 

오자연 조합원을 만나러 우산을 쓰고 종로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이 물러나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비까지 촉촉이 내립니다. '오~ 자연의 변화는 내 마음속 시계와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진행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늘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조합원의 이름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오~!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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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름이 '오자연'이신데, 우리가 아는 그 '자연(自然)'인가요?

 

네.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벚꽃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 지으신 자연 안에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살라'는 뜻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제 동생은 '오우주'랍니다.

 

Q :길목 회원들께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로 가려고 신학을 붙들고 고민을 하다가 '대상관계연구소'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목회 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사의 길을 가게 됐어요. 지금은 '세종로 정신분석 연구회'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Q : 언제부터 길목 조합원이 되셨나요?

 

세종로 정신분석 연구회가 심심과 연결이 되었을 때 첫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그 당시에 너무 오고 싶었으나 아기 키우느라 한 10년을 보낸 뒤 이제야 오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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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 정신분석 연구회 선생님들과 함께

 

 

Q :신학을 선택하신 배경이 궁금하네요?

 

어머니가 전도사로 일하셨고, 아버지는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늘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셨어요. 제가 진로를 고민할 때 부모님께서 "네가 앞으로 뭘 하든 간에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신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Q :신학을 선택하신 것에 만족하셨나요?

 

네. 참 좋았어요. 잘 왔다고 생각했지만,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 어디 계세요?" 하는 그런 물음이랄까요? 나에게 닿지 않는 마음의 공허와 세상이 회색빛 같고 뭔가 알 수 없이 힘들었던 내가 있었어요. 그런데 상담받으면서 이게 내 마음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풀려가니까 살만해지는 거예요. '이런 세상이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변화하고, 신앙도 회복하게 되었어요.

 

Q : 목사님이신가요?

 

목사 안수는 받지 않았고 결혼하기 전까지 주로 교회 교육부에서 활동했어요. 그 후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느라 한 10년은 쉬다가 3년 전에 초동교회 영아 유치부를 맡아 일했어요.

 

Q : 앞으로 목회를 하실 계획은 있나요?

 

목회할 생각은 접었어요. 두 일 모두 같이 하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에요. 교회는 어떤 틀이 있어서 상담을 꺼리는 사람도 있어요. 목사라는 틀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벽이 될 수도 있어서요, 저는 그런 틀을 갖고 싶지 않아요.

 

Q :언젠가 <길목인>에 조합원님의 아이 민우 이야기를 쓰셨지요? 많이 아프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민우 이야기를 하시면서 민우랑 병원에서 투병하며 보낸 시간이 사실은 다 봄날인데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노라고 하신 그 글이 마음에 남았어요. 혹시 그 이야기를 여쭈어도 될까요? (▶민우 이야기)

 

네 다들 조심스러워하시는데 저는 민우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그런 물음들이 오히려 고맙더라고요. 제가 첫딸을 낳은 뒤 둘째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어요. 그런데 출산 전에 두 아기 중 한 아이가 다운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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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 쌍둥이 아기가 민우와 지우군요?

 

네. 처음 진단을 받고 너무 충격이라 친정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렸는데 우리 엄마는 되게 단단하신 분이에요.

"자연아~ 괜찮아. 이 세상에는 정상인처럼 보여도 장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장애가 있어도 우리가 같이 잘 키우면 돼.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아."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힘이 되었어요. 딸이 아픈 아기를 낳는다고 할 때 친정엄마 마음은 어떻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그냥 그 존재를 끌어안아주셨어요. 민우가 태어나서 자랄 때 엄마가 제일 예뻐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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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민우는 투병 생활을 많이 했지요?

 

민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약하게 태어났어요.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발육이 늦으니 '언제 걸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똑같이 태어난 지우는 걷고 뛰어다니는데 민우는 겨우 서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내 아들이 걷기만 해도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키웠어요. 다운 증후군 아이라 언제까지 옆에 있어 줘야 하는지, 학교는 어딜 보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모두 막막했는데 그런 중에도 어쨌든 민우만의 성장이 계속되었어요. 민우는 백혈병을 앓게 되어 투병하다가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런데 얼마 전 지우와 민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민우를 다시 낳을 수 있다면 낳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저 자신도 놀랐어요. 민우와 보낸 시간이 아주 힘든 과정이었음에도 민우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그리운 거예요.

 

Q : 그 경험이 자신의 삶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상담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네. 나를 잡아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민우가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만약에 민우가 내 곁에 계속 있었다면 내 손을 많이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러면 상담사를 못 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상황을 원망하고 힘들다고 투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루하루를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훌륭한 상담사의 길만큼 뛰어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상담사가 되고 싶다'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죠.

 

Q : '상담은 고통을 같이 끌어안는 거다'라는 말을 글에 쓰셨던데요? 그렇다면 상담하는 일은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힘든 삶을 가지고 오는 내담자들이 그런 걱정을 많이 하고 오시더라고요. 그래요. 물론 힘들 수 있어요. 저희가 그것을 소화해 가면서 상담할 수 있는 것은 저에게도 상담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어떤 내담자를 만났을 때 내가 힘들어진다면 그 안에 나의 고통이 함께 있는 거거든요. 제가 걸어온 길이나 내담자들을 생각할 때,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란 자기 고통을 만나는 과정이고, 누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대신 느껴줄 수도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 내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길에 함께 해 해 주면 버티면서 자기를 찾아가고, 헤쳐나갈 수 있게 되지요.

 

Q : 다른 선생님께 상담받는 것 말고도 힘을 얻는 것이 있나요?

 

제가 신앙인이니까 기도이지요. 제가 상담을 받기 전과는 기도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런 면에서 신앙적으로도 새로운 경험인데요, 전에는 내 얘기만 계속하는 기도였다면 이제는 듣는 기도를 하는 거예요. 상담을 통해서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내 고통을 꺼낼 수 있고, 솔직한 내 마음을 만나는 거죠. 거기서 힘을 많이 얻어요.

 

Q : 상담사 일이 내담자에게는 당연히 도움을 주겠지만,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치는군요?

 

상담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한 가지는요, 내가 너무 힘들다 하면서 살 때는 늘 외부의 어떤 것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상담을 꾸준히 받다 보니까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거기에 열쇠가 있었어요. 그것을 깨닫게 되니 전쟁터 같은 현실이 가라앉고 마음이 평온해져요. 아내로, 엄마로서도 제가 저 자신을 살펴 가며 마음에서 편안함을 찾을수록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Q :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거네요. 그럼 끊임없이 이런 상담이 필요한 건가요?

 

어쩌면 아이가 자라날 때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여러 번 이야기해 주고, 달래주고, 설명해 주고, 또 설명해 주고, 그러면서 자기 삶에 스며들고, 돌아보면 성장해 있죠. 상담도 그런 과정을 가는 것 같아요.

 

Q : 어린이들도 상담하시나요?

 

네. 내담자 중에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처음에는 또래에 비해 어린 행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랬는데 6개월 정도 지나자 놀이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자기 얘기를 길게 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 변화가 신기하고 어린이 내담자도 자기 길을 잘 찾아가고 튼튼해지고 자기답게 성장해 간다는 것을 배웠어요. 마음먹고 시작하면 다 희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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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성인 내담자도 그런가요?

 

어릴 때 가정 폭력을 겪었던 내담자가 있었어요. 그분이 처음에는 부모님이나 어린 시절 좋은 추억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상담 기간이 1년쯤 지나자 자기 부모님에 대해서 현실적 인식을 하게 됐고, 자신이 감정을 억압하고 있고 속에 엄청난 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가 자랄 때는 부모에게 의존해야 해서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것이 힘들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힘이 생기면 자기 내면에 엄청난 아픔과 감당하기 힘든 분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놀라운 변화이죠.

 

Q : 상담은 운동처럼 오래 지속해야 하는 작업이네요?

 

네. 빨리 되면 좋겠지만 시간이 걸려요. 그렇지만 6개월 1년 3년 이런 순간마다 분명히 자신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 조금씩 풀려가는 걸 느끼지요. 그런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꾸준히 상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담사도 자신이 깊어져야지 그걸 다뤄갈 수가 있어요.

 

Q : 길목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길목같은 단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뜻을 가지고 모여서 뭔가를 해나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꿋꿋하게 해나가시는 한 분 한 분이 되게 소중하게 느껴져요. 심심도 상담사들이 토요일마다 공부하고 노경선 선생님도 연세가 있으신데 기꺼이 2주에 한 번씩 상담에 대한 것들을 즐겁게 유쾌하게 가르쳐 주셔서 너무 존경스러워요. 노경선 선생님과 이은경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제가 상담사가 되려고 걸어왔던 시간이 저의 성장 과정이면서 사람이 되는 길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런 한 사람으로 길목에서도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요.

 

오자연 조합원님을 만나고 돌아오며, 귀하게 살아가는 귀중한 조합원 한 분을 또 만나게 되었으니 내 마음에 보물 하나를 더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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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단문 선 답]

 

1. 나에게 믿음(신앙)이란?

내가 딛고 서 있는 땅 같은 거에요. 나를 살게 하는 토대.

 

2. 나에게 행복이란?

마주 본 모든 눈빛이요. 바라본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3. 나에게 사랑이란?

이 질문에 왜 눈물이 날까요? 나에게 사랑이란 저 하늘의 해님 같은 거예요. 해가 해로 있어 줘서 내가 살 수 있어요.

 

4. 나에게 나이 듦이란?

삶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보석이라면, 그 보석이 많아지는 거죠.

 

5.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나로 사는 거예요. 해는 해로, 나무는 나무로, 나는 나로 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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