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뜬별 ▏하제마을 팽나무 - 전쟁 말고 평화·공항 말고 갯벌
군산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낭만서점 마리서사, 빵지순례 이성당, 짬뽕맛집 복성루. 여기까지는 대부분 안다. 그렇다면 수라갯벌과 하제마을은? 영화 <수라> 덕분에 조금은 알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기지는? 미군기지로 인해 사라진 마을 하제. 그곳을 지키는 600년 된 팽나무를 드디어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군산으로 가는 길은 올 1월 도보순례를 했던 연산~논산~강경~익산~군산 길과 봄여름 자전거 순례를 했던 금강 따라가는 길. 제법 익숙한데도 이제는 꽤 멀게 느껴졌다. 군산 시내를 빠져나와 국도를 타자마자 눈에 익은 공구상이 보였다. 지난 6월, 군산 수라갯벌을 거쳐 영광핵발전소까지 자전거 순례를 했을 때, 어설픈 내 짐 때문에 도반이 짐 끈을 사서 묶어준 곳이었다. 거기서 15분쯤을 차로 달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보았던 수라마을의 수라갯벌은 하제마을과는 거리가 꽤 떨어진 곳이었다. 그만큼 수라갯벌은 넓었고 새만금 방조제는 길었다.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오후 3시에 팽팽문화제를 시작하는데 한 시 반쯤 하제마을에 도착했다.
군산평화박물관에 소개된 하제마을은 다음과 같다.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해송이 즐비하게 늘어선 바닷가 마을이었던 상제-중제-하제. 일본 제국주의 시대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상제와 중제 일부가 없어졌고,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중제가 없어졌다. 2001년 탄약고 안전지역권 확보 강제토지수용으로 하제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주민이 떠나고 마을이 사라진 곳을 지금은 600년 팽나무가 지키고 있다.’
입구에서 팻말이 즐비한 길을 따라 400여m 차로 들어가야 했다. 644가구가 있었던 곳이 철거되고 두 가구 남은 상태였다. 주차한 곳엔 비닐하우스로 된 기억관이 있었다. 사진 몇 점이 전부인 기억관은 빛바랜 듯 옹색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멀리서부터 우뚝 선 우람한 팽나무 어르신이 우람하니 서 계셨다. 600년 가까이 사셨다니 얼마나 험한 세월을 견디셨을까. 팽나무를 향해 다가가는 발걸음이 왠지 숙연했다.
팽나무는 사람들의 염원으로 2021년 6월 전라북도 지정문화재가 되었다.
600살 하제마을 팽나무
팽나무 앞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항상 활기 넘치는 오두둑은 만나자마자 변한 내 모습에서 살이 빠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곤 ‘나이가 들어서’라는 명답을 밝혀내셨다. 우린 작년 팽목항 이후 1년 8개월 만에 만났다. 어딘지 수줍음과 신비로움이 배어 있는 오이는 반가움에 다가와 주었다. 어쭈는 요즘 안부를 물어봐 주었고, 늘 성자의 미소를 지으시는 문규현 신부님은 인사하면서 손부터 내밀어 주셨고, 평화박물관을 지키다 오신 문정현 신부님, 가덕도에서 만났던 소성리 친구, 기륭전자·쌍용차 등 노동운동가, 인권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등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문규현 신부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작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한 단체사진전 ‘청와대는 어디로 갔죠?’에서 제주 제2공항 반대 투쟁 9일 기도회 때 찍은 내 소중한 모델이셨다. 두 분께 도록과 ‘봄바람’이야기가 짧게 실린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를 드렸다.
반가운 인사가 끝나자 우선 후원 차원으로 달력을 샀다. 달력을 담은 봉투에는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문정현 신부님의 붓글씨가 쓰여 있었다.
2023년 시월의 어느 날, 아침밥을 먹다가 나온 얘기였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고 했다.
“죽을 때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그건 너무 무겁고 처절하고 아프니까.
살아있어야 할 것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
살아 움직일 힘이 있다면,
평화바람은 달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바람이 되어.
자, 살아봅시다, 살려봅시다.
죽을 때까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달력 봉투에 있는 문장‘2024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바람 되어’를 보니 없던 자발성도 불어올 듯했다. 지금은 스스로 바람 되어 불어갈 바람의 시대.
이 달력은 노순택 작가의 사진 16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사진뿐만이 아니다. 달력 뒤쪽에는 평화바람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참 고맙다.
여기서 잠깐, 달력 뒷장에 나와 있는 ‘줄이고 줄여도 더는 줄여 쓸 수 없는 ‘유랑단 평화바람’의 지난날’을 일일이 옮겨 본다. 내 글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하니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유랑단 ‘평화바람’은 2003년 11월 14일에 출발했습니다. 온갖 그림과 구호를 그려 넣은 ‘꽃마차’에 시동을 걸었지요. 하지만 먼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4월 9일, ‘인민혁명당 재건위’라는 간첩(조작) 사건으로 재판 하루만에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죽은 이들을 곧바로 화장터로 옮기려 할 때, 젊은 사제 한 명이 운구차를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문정현 신부입니다. 평화바람의 씨앗은 어쩌면 그날 심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32년만인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의 총칼을 이어받은 전두환 신군부는 민주주의 열망을 짓밟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억압했습니다.
장기간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혹사당했고, 노조를 결성하거나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해고와 투옥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그 시절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다 수배의 긴 터널을 걸은 젊은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오두희입니다. 성당을 은신처 삼았던 그가 문정현 신부를 만나고, 가톨릭 노동사목 운동을 함께 하며 우리사회의 모순, 이 세계의 모순에 대해 고민을 나눕니다. 씨앗에 물기가 닿았습니다.
1998년 5월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의 결성은 새로운 운동의 모색이자 출발점이었습니다. 분단체제 아래 점령군처럼 주둔한 미군이 어떻게 군사시설을 확장하고 운용하는지, 어떤 범죄가 감춰지고 묵인되는지, 그 과정에서 분단권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군산에서 싸우되, 군산에서만 싸워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씨앗이 움틉니다.
2000년, 주한미군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상경투쟁을 벌입니다. 반세기에 걸친 미공군 폭격훈련으로 몸살 앓던 매향리 주민들과 함께 폭격장 패쇄투쟁에 나섭니다. 매향리에서 싸우되, 매향리에서만 싸워선 안 된다는 걸 다시 절감합니다.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벌어진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2002년 훈련 중이던 주한 미국장갑차에 여중생들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2003년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한국군이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낱개가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보잘 것 없을 지라도 알리고 저항하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들이 모여 2003년 11월 유랑단 ‘평화바람’을 꾸리기에 이릅니다. 식구들이 늘어납니다.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의 시작입니다.
2004년 첫 유랑지나 다름없던 평택 대추리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2년을 눌러 살며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운동에 나섭니다. 허나 지고 맙니다. 2009년 용산참사가 벌어지고 화마에 숨진 철거민들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자 그을린 망루 아래서 한 해를 보내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에 맞섭니다.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콜트콜텍, 한진중공업 등 숱한 노동현장에서 자행된 해고와 죽임, 손배가압류에 맞서 노동자들과 연대합니다.
2010년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강행되자‘평화상단’을 만들어 주민들과 연대하고, 급기야 한마을 주민이 되어 구럼비 폭파를 막아보지만, 또 지고 맙니다.
2012년 밀양 초고압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에도 연대했지만, 송전탑은 결국 강행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연대투쟁에 나섭니다.
2017년 비정규노동자의 집‘꿀잠’을 짓기 위해 원로운동가 백기완 선생과 함께 주춧돌을 놓습니다.
2019년 미군기지로 내어질 군산 하제마을의 600살 팽나무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돌입합니다.
2020년 군산의 여인숙을 개조해 평화박물관을 엽니다.
2022년 제주강정에서 출발한‘봄바람순례단’을 이끌고 전국의 투쟁현장, 고통과 아우성이 있는 곳을 순례합니다.
그리고 2023년 새만금 강제 매립 속에 겨우 살아남은 아름다운 수라갯벌, 이곳에 미군을 위한 공항이 강행되는 걸 막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어느새, 평화바람이라는 나무가 스무 살을 맞이합니다.
오두둑, 오이, 딸기, 어쭈, 문정현 신부님까지 다섯 명을 주축으로 함께하며 드나든 이들이 ‘평화바람’이다. 그들이 결성된 지 어언 20년. 그들의 20년을 축하하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평화바람의 친구들, 평지풍파(평화바람과 함께 지랄 맞은 세상에 풍덩 뛰어들어 파도가 되려는 사람들)가 마련한 팽팽문화제를 소개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평화바람이 생명과 평화의 장소를 지키고 싸우고 살아가는 군산에 함께 모여 국방부가 미군기지로 쓰라며 넘겨준 하제마을을 할아버지·할머니 팽나무와 함께 지키고, 전투기를 위한 새만금 신공항 때문에 파괴하려는 수라갯벌을 저어새들과 함께 지키는, 평화바람과 만나 걸음을 포개며 든든하게 또다시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시간’
전쟁 말고 평화
공항 말고 갯벌
팽 팽 문 화 제
달력을 산 후 왼쪽 볼에 파란 꼬리 하얀 머리 고래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달력 판매도 페이스 페인팅도 어린이가 담당했다. 평화바람이 대를 이어 유지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팽팽문화제는 군산시민의 인사말과 어린이들의 공연에 이어 평지풍파의 공연에 있었다. 이어 노순택 사진작가의 사진 설명이 있었다. 노순택 작가는 참 예술가였다.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글도 탁월하여 평화바람 한 분 한 분을 사진과 문장으로 기리는 작업을 했다. 현장에서 2만 원씩 판매하던 달력은 전액 후원금으로 쓰인다.
신세는 한 번이요
평화는 영원하다
사랑에 갇힌 신부님
맑은 눈 오두둑
평화바람이 무대 위에 올랐다. 캐로로 중서 어쭈와 딸기와 블랙요원 오이가 한마디씩 하고 오두둑이 호소력 있는 발언을 했다. 문정현 신부님이 85세가 넘으셔서 이젠 캠핑카처럼 좋은 차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따뜻하게 계시다가 짠 나오셔서 발언하시도록 해야 한다고. 그러니 후원이 필요하다고. 2003년 11월 14일부터 이라크 파병 반대 서울 미대사관을 시작으로 대추리, 용산, 밀양, 부산, 군산, 제주, 그리고 봄바람순례로 전국을 유랑한 평화바람이 앞으로 타고 다닐 안전하고 편안한 꽃마차를 위해.
평화바람
마지막으로 문정현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군산은 군사문제 한미문제에 빨려 들어가 시작한 곳입니다. 그런데 팽나무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동네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수없이 다녔어도 있는지도 몰랐는데, 국방부 소속이 되고 집이 헐려버리고 나니 팽나무가 드러났는데 600년! 되었습니다. 근데 이 팽나무 할머니가 우리 신세와 똑같습니다. 국방부 땅 안에 서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 48호입니다. 우리 문화재가 국방부 땅으로 돼 있고 미군기지로 들어가려고 하는 판인데, 우리 눈치 보고 있습니다. …… 팽나무는 제가 마지막으로 지켜야 될 곳입니다. 국방부 땅이 되고 미국놈들한테 넘겨줄 위기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안 된다. 오늘이 36회 팽팽문화제인데 36회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빠지지 않을 겁니다. 오늘처럼만 모이면 절대로 국방부고 대통령이고 이 팽나무 할아버지·할머니를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세 시 함께 모여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문정현 신부님
평화바람은 2022년에 군산미군기지평화답사를 했다. 답사기록물을 보면 군산시 옥서면 미군기지에는 ‘1480억을 들여 지은, 미사일에도 안전하다는 3세대 격납고 20동과 하제주민을 내쫓은 탄약고 지역’이 있다. ‘벼가 자라던 논이 격납고가 되고, 아시아 최초 드론부대가 들어오고, 기지에 새로 건물이 솟아나는 동안 하제마을은 사라졌다.’그 탄약고가 팽나무 바로 앞 철책 너머에 보였다.
군산에 공항이 생긴 유래는 평화박물관 상설전시소개에서 알 수 있었다.
군산미군기지는‘1940년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다치아라이 비행학교에서 시작되어 몸집을 불려왔고 현재는 군산시 옥서면(20.88㎢)의 61.4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서해안에 위치한 평택, 제주 그리고 성주와 함께 MD(비행 중인 적의 탄도 미사일을 미사일이나 레이저로 요격하는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의 거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평화바람은 이를 ‘서해안전쟁벨트’라 명명하며 관람객에게 서해안전쟁벨트를 평화지대로 전환하는 상상을 촉구한다.’
기가 막힌 사실은 우리가 군산공항을 이용할 때 미국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다 수라갯벌에 군사공항을 또 짓겠다는 것이다.
다시 ‘평화가 무엇이냐’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 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https://youtu.be/DV7Yz15vZtc?feature=shared
팽나무 앞 사람들
함께 춤을 추던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어깨동무로 기차를 만들었다. 빙글빙글 돌던 사람들이 팽나무 주변을 돌았다. 사람들의 염원으로 팽나무도 신이 나 보였다. 600년 된 팽나무가 보기엔 짧은 20년. 그러나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긴 세월 동안 평화바람과 평지풍파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달력에 나와 있다. 2000년 여름 매향리,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압사사건 서울 종로 추모제, 2006년 평택 대추리, 2008년 새만금, 2009년 서울 용산 4구역, 2008년과 2012년과 2013년 제주 강정마을, 2015년 밀양과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및 쌍용차, 콜트콜텍, 한진중공업, 파인텍 등 노동운동 현장에 그들은 함께했다.
지키세 지키세 우리 땅을 지키세
지키세 지키세 팽나무를 지키세
지키세 지키세 수라갯벌 지키세
미군기지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자
수라 살려보자
나는 그 현장에 함께 한 시간이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아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비슷한 색깔로 어우러져 있음을 보았다. 그 색깔은 좌우 적청이 아닌 흙과 바람과 햇빛의 색, 눈물과 피와 땀의 색, 하늘과 강과 바다와 갯벌의 색, 저어새와 검은머리갈매기와 검은머리물때새와 붉은어깨도요와 나문재와 갯잔디와 모새달과 퉁퉁마디와 해홍나물과 흰발농게의 색, 싸우고 지는 평화의 색, 져도 당당한 자유의 색, 팽나무와 어울리는 거칠고 강인한 생명의 색.
전쟁 말고 평화 공항 말고 갯벌
오후 다섯 시가 넘어 햇빛이 사라지자 급격히 추워졌다. 모두가 흥에 겨워 있을 때 그곳에는 벌써 각종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떡과 수육과 김치와 어묵탕. 여러 후원의 손길로 차려진 음식을 참가자들이 풍성히 나눌 때 나는 자리를 떴다. 급하게 가볼 곳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같은 군산이지만 하제마을을 떠나 30분을 달려 도착한 나포십자들. 여섯 시도 안 됐는데 해는 이미 지고 강너머엔 수평선처럼 산자락 위 주황빛 노을이 깔려 있었다. 그 사이 어둠을 대비하는 자잘한 불빛들이 강물 위에 켜있었다.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왔으나 칼바람에 십 분도 채 못 있고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표현할 수 없이 복잡했다. 어린이가 볼에 그려준 고래를 지우기 싫어 세수도 미루고 미루다 억지로 했다. 그리고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못 이루다 마침내 눈물이 터졌다. 팽나무 아래 모여있던 사람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땅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평화를 지키겠다고 그곳에 있었다. 정작 평화를 지켜야 할 인간들은 전쟁놀이를 일삼고 있는데, 햇볕과 바람에 그을린 거친 얼굴의 맑은 눈을 한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겠다며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들어갈 것 같았다. 그들은 이 땅에서 낮은 삶을 택했기에 하늘에서 상급을 받을 것이다.
팽나무가 자꾸만 떠올랐다. 주변에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고스란히 보았을 600년. 오래 산 만큼 보아왔을 험한 꼴. 그리고 오늘처럼 흥겨운 날과 앞으로 볼 그 무엇.
*
마감일을 일주일 가까이 미루며 원고를 마무리하다가 불현듯 평화박물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박물관도 안 가보고 평화바람에 대해 쓰는 게 미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터넷 소개엔 영업 중.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미 오후였지만 부리나케 차에 올랐다. 짙고 무거운 대기를 뚫고 곧장 평화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3시가 훌쩍 넘어 도착한 박물관 문이 열리지 않았다. 휴무 안내문도 없이 열리지 않는 박물관을 우두커니 쳐다보다 차에 올랐다.
허탈한 마음에 100m 위 동국사로 갔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는 공사 중이었다. 소녀상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고 해우소에 들렀다가 절 뒤로 둥글게 감싼 왕대숲으로 올라갔다. 몇십 미터 되지 않는 오솔길이었지만 대숲 속에 있으니 잠시 세상과 분리된 듯 숨을 깊게 쉴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자취와 미군이 남아있는 군산.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시던 문정현 신부님 말씀대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강대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지켜야 할 마지막 상징이 아닐까.
군산 평화박물관
군산 자전거길 시작지점부터 자전거길과 차도는 나란히 간다. 자전거를 타듯 자동차를 몰아 나포십자들에 도착했다. 강둑으로 올라가 보니 사방이 뿌예 강도 맞은편 산도 멀리 다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 강이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뿌연 하늘에 불그스름한 해가 있다. 지는 해인데 뜨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해가 지면 다시 뜨지. 태양계에 이상이 있어 공전과 자전이 뒤바뀌지 않는 이상. 진리가 현재형인 것처럼 선(善)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은 계속 불겠지.
웅포까지는 계속 자전거 길 따라 도로가 나 있다. 자전거 순례한 길을 자동차로 되돌아왔다. 웅포를 지나 내륙으로 들어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와이퍼는 창을 깨끗이 닦아주지 못한다. 얼룩진 창은 시야를 확보해 주지 못한다. 맑은 눈이 아니면 세상을 잘 볼 수 없다. 속도를 낮췄다. 오후 다섯 시가 넘자 금세 어두워진다. 밤길을 달린다. 이 어둡고 탁한 세상에 소슬하니 맑게 불어 정체되지 않게 환기해 주는 평화 바람을 타고.
【함께 하기 2】 평화바람 20년 꽃마차 후원
국민은행 362701-04-124913 (예금주 : 김소연)
【함께 하기 3】 평화바람 20주년 기념달력 “살아있는 동안”
평화바람 20년, 지난 시간과 현재의 걸음이 담긴 2024 평화바람 사진예술달력 판매.
달력 판매 수익금은 군산평화박물관 운영을 비롯해 평화바람 활동에 쓰임.
- 달력 1부 20,000원(택배비 3,500원 별도/ 10부 이상 택배비 무료 / 11월 25일 이후 발송)
- 입금계좌 : 국민은행 582502-01-236258 이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