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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産과 恒心

posted Jan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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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영수
발행호수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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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쌀독에서 나온다.'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사한 맥락의 말로 맹자에 나오는 '항산과 항심'은 들어본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질문했던 양혜왕과 등문공에게 맹자는 '항산(안정된 생업)이어야 항심(항상 가지고 있는 도덕적이고 선한 마음)이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말을 현재의 문법으로 해석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이 잘 돌아가며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가져야 여유롭고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가 될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며 누구나 계획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와 실천 항목들 그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생각들을 궁리합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항산과 항심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이라 판단합니다. 맹자 시대의 백성을 위한 정치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 상황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문제들로 위기를 느끼고 있지만 해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사람들이 살기에 온전한 곳으로 지속 가능할 지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잘못된 '항산'을 보여주는 단면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서 중세 시대 농노를 떠올리게 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택시사납금 제도의 부당함을 알리려 애쓰던 故 방영환열사는 회사의 협박과 폭력에 분신으로 항거합니다. 그분의 사연을 들으며 자본가의 이익 밖에 안중에 없는 양아치 자본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며 시간이 중세로 후퇴함을 느낍니다. 경제활동은 민생을 위해 필요한 활동이지만 불평등한 분배구조로 인해 여전히 항산은 無항산이 됩니다.

 

항산이 항심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제구조 때문에 탈이 난 항심은 어떻게 될까요? 혹시 각종 방송 매체의 예능프로가 허탈해진 항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무명가수들이 나와 경연을 하며 최종 진출자를 뽑는 프로입니다. 노래가 끝나고 심사평을 듣는데 칭찬과 격려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프로가 끝났는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장면들이 있어 몇 번을 반복해서 보며 왜 이럴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맹자 시대와 현재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생이 경제의 화두가 된 시점에서 항산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항심을 유지하려면 맹자의 말처럼 고고한 선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항심을 회복하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성을 위한 왕도정치로 항산과 항심을 설파한 맹자의 말로 뭔가 희망을 갖고자 끄적였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요즘 같이 어색한 기분은 처음입니다.

윤영수-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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