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 그것은 지구의 역사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약 45억 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역사를 지질학적으로 구분할 때 홀로세(Holocene)는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를 말한다. 이 시기는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던 시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갯벌은 이러한 홀로세 시대에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한 약 8,5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연평균 1mm씩 쌓이고 있다. 이는 홀로세 이후 지구의 연안지형(Landform)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갯벌은 홀로세 이후 한반도의 변화와 그 변화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갯벌은 '멸종위기종 및 생물다양성의 서식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받았다. 갯벌은 이제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러한 갯벌 생태계는 큰 범주에서 살펴보면 (연안)습지 생태계로 분류된다. 습지 생태계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 이래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문명형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갯벌을 비롯한 습지는 환경적, 경제적, 그리고 생태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태계이며 인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습지와 상호작용하고 이에 의존해 왔다.
인류는 습지생태계를 통해 어류 및 섬유질을 공급받았으며, 신선한 담수 공급과 수질 정화, 기후 조절과 홍수 조절, 해안 보호, 관광 등 광범위한 생태계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다. 인류 문명은 생존을 위해 습지를 이용한 어업과 농업 등의 다양한 경제활동을 지속해 왔으며 이러한 경제적 가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기후위기 비상상황에서는 습지의 탄소 저장 기능 역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본다면 습지생태계는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먹이사슬(Food chain) 구조에서 인간의 식량공급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습지생태계의 중요성과 인류 문명과의 상호연관성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이후 2015년까지 전 세계에 분포한 자연습지의 35%가 손실되었다. 현존하는 습지생태계 역시 오염 및 침입종의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습지의 감소와 훼손에는 인간의 경제활동과 도시화, 산업화 등이 긴밀히 연관된다.
또한 동일 기간 논과 저수지 등 인공습지의 면적이 233% 증가했다는 사실은 습지 감소와 관행 농업의 긴밀한 관계도 보여준다. 인구의 증가에 따라 식량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농업과 농지의 확장은 불가피하게 유사한 공간적 위치의 자연습지 감소를 초래하였다. 이는 역으로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의 미래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우리나라 역시 식량생산 및 식량안보라는 미명아래 새만금 갯벌을 비롯한 서해안 연안습지인 갯벌의 막대한 손실을 경험하였다.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인구증가와 동반된 경제공간의 확장 등 인류의 공간 확장에 따른 자연공간의 감소, 그중에서도 습지생태계의 손실은 숲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다른 생태계의 감소 속도보다 더 빠르다.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한 육상과 연안의 과도한 개발 압력에 의한 습지 생태계의 변화는 규모가 크고, 되돌리기가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자연생태계의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습지를 비롯한 생태계의 변화는 대응이 쉽지 않다. 다계층적인 생태계 및 다양한 생물종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성, 생태계의 장단기적인 변화 예측의 어려움과 회복 불가능성의 증가,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멸종의 시대의 일상화된 모습이다.
앞서 한국의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한 지질시대를 이르는 홀로세라는 용어 이외에도 최근 자주 사용되는 지질시대 용어가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이다. 인류세는 지구에서 인간 활동이 지구의 지질 및 생태학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인간의 시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구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속적인 영향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현재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 및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산업화와 도시화, 대량소비와 환경파괴라는 특징을 동반한 인류세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는 상황이다.
인류세의 시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twin Crisis) 시대'. 인류세의 시대를 요약하면 이중의 위기에 기반한 지구적 차원의 멸종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생태적 위기의 시대이다.
상황은 이렇게 엄중한데 전망은 희망적이지 않다. 코로나 19 팬데믹 초기에 자연의 공간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외침에도 이후 자연의 공간을 점령해 가는 속도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많은 지혜로운 스승들은 현재의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 '생태적 삶'과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생태계의 균형을 고려한 우리와 사회적 차원의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실천이 핵심이라면, 전환의 핵심 인식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는 방법과 시각을 재규정하고 '생태적 전환'을 유행하는 주제어 수준을 넘어 개개인의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실천을 정부의 역할로 간주하곤 한다. 이 역할은 정부가 법률을 만들고 정책을 집행해서 대처할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태발자국에 책임을 지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유기농 생활 방식의 선택과 화학물질의 사용 감소, 가정용 쓰레기의 재활용, 수자원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 그동안 제시된 수많은 대안적 삶의 방식 자체가 습지를 비롯한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방법이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맞선 변혁적 전환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의 손실을 막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이러한 생활 실천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한반도 갯벌과 습지 생태계는 잘 보전될 수 있을까? 인간의 삶 너머에 존재하는 자연의 고요함과 질서를 지키는 활동.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새만금 갯벌과 수라갯벌, 팔현습지와 노자산을 마주하고 보전하는 활동. 8천 년 이상의 시간을 담고 있는 그곳으로 떠나보자. 그곳에서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며 새로운 질서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자. 과거에서 미래로의 발걸음을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