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사고 13년 : 316 에너지 전환대회
공공·시민 주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2024년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3주기였다. 대한민국에서는 3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을지로입구역 3번 출구 청계천 방향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 전환대회>를 했다. 시청 앞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지나 을지로로 갔다. 을지로 입구에는 차선이 통제되었고 부스가 설치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으면 좋았겠지만, 지역별 행사 이후라 서울 집회에는 그리 많지 않은 800여 명이 모였다. 그중 광주와 충북과 삼척에서 온 탈핵 벗들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나는 모처럼 흥겨웠다. 전국 각지에서 차린 부스를 돌아보다 곡성 강빛마을에서 오신 분을 만났다. 예전에 한달살이를 한 적이 있는 곳이라 그 지역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반가웠다. 울산에서도 영상과 진영과 석록 외 여러분이 오셨다. 전국에서 서울로 모여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는 날이었다.
석탄발전 정의로운 전환과 탈핵 OX 퀴즈
그중 가장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나주 3M 해고노동자, 금속노조 박근서 광주전남지부 사회연대위원장이었다. 해마다 4월 16일 진도 팽목항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해고 14년, 아직도 복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다음 달에 진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박근서 광주전남지부 사회연대위원장
<후쿠시마 핵 사고 13주년 에너지 전환대회>는 전문 MC의 사회로 시작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이현숙 공동대표,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최경숙 상황실장이 첫 발언에 이어, 3·16에너지전환대회준비위원회 이영경 집행위원장은 "남들은 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핵 발전 영업 사원 1호 대통령을 두고 있다. 핵 진흥 정책 뒤에는 10만 년을 짊어질 핵 폐기물과 더 많은 송전탑 건설로 고통받을 주민이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위기, 기업들의 이윤만 챙기는 정부의 민영화, 줄어든 연구비로 기후 재난을 연구할 수 없는 연구원들이 있다.……오늘은 핵 발전의 위험만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닌, 윤석열 정부의 핵 폭주를 막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해 나가겠다고 말하는 자리이다. 핵 발전소 지역 주민들과 석탄·가스 노동자들, 태양과 바람 에너지를 원하는 시민들, 먹거리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날"이라고 했다.(뉴스앤조이 2024.03.19.)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던 지난겨울, SK, GS, 포스코 등 재벌 대기업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천연가스 사용을 최소화하고, 평소보다 3배나 돈을 더 벌었는데 가스공사는 모자란 물량을 채우느라 미수금 15조 원을 떠안았고, 국민은 난방비 폭탄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바로 내가 당한 고통이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조사결과가 있다.
한국신용평가에는 “LNG 현물가격 급등으로 재벌대기업들이 현물계약을 최소화한 것이 가스공사 적자의 일부 요인으로 판단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는 “재벌대기업들의 이익은 기술혁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도시가스사업법’의 허가 사항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물가 상승에도 재벌 대기업은 역대급 실적을 올렸는데, 가스공사의 적자는 고스란히 미수금으로 쌓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은 가스사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하고 있고, 정부는 공공요금, 가스 요금을 올려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대기업의 민간 직수입 제도가 가스 공공성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일부 대기업에 편중되고 있다. 정부는 가스 산업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가스 에너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를 통해 알게 된 현실이었다.
한국 탈핵의 꿈
120여 단체의 공동주최로 이에 속한 사람들이 밀집한 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2018년 3월 18일 화요일 정오, YWCA 제200차 탈핵 캠페인에서 본 독일 지구의 벗 BUND(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 리차드 메르그너 당시 부회장이었다. 그때 그는 <“독일에서 배운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 강연을 했었다. 독일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40년 동안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핵에너지 반대 운동을 해 왔고, 이에 독일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 여름에 8개의 핵발전소 즉각 폐지를 선언했고, 2022년까지 핵에너지 완전 폐지를 목표로,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력 회사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20년 간 관세 혜택을 보장하고 있다고 했었다.
6년이 지난 2024년 3월, 독일 지구의 벗 BUND(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 바이에른 지부 리차드 메르그너 회장, 전 지구의벗 독일 후버트 바이거 회장은 독일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탈핵에 실패했다는 것은 가짜뉴스라고 말하며, 핵발전은 평화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한국에서의 탈핵 운동에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
독일 지구의 벗 BUND 리차드 메르그너 회장
태안에서 온 노동자가 있었다. 2025년 태안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 20기가 폐쇄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발전소가 폐쇄되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어떻게 되는가? 일자리 보장과 정규직 전환은 없고 정부는 ‘직무 훈련 제공, 기후 창업 등 지원’만 언급한다고 한다. 기후위기가 고용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3월 30일 태안에서 시작해 이후 이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기후위기에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당연한 수순이라면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은 간과할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 공공재생에너지확대, 노동자와 지역의 생존권을 지키는 산업전환을 이뤄냅시다!’
이번 대회에서 제일 신났던 순서는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문어의 꿈’을 개사해 ‘한국탈핵의 꿈’을 깜찍한 율동과 함께 소개한 것이고, 마지막에 한바탕 춤판으로 함께한 시간이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13주기
이번 13주기 대회에서는 4월 10일 22대 총선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요구하는 '6대 의제'가 발표됐다. 6대 의제는 '기후 정치, 핵 오염수,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에너지 공공성'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확보하려는 소수정당의 움직임이 보였다.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와 탈핵 탈석탄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감이 커져야 할 판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거대 여야당을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지난 14일 오후 3시에 열린 탈핵시민행동 주최의 ‘기후위기 대응 핵진흥으로 가능한가’ 토론회에 두 정당은 불참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이번에 주최 측에서 초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후위기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정치권은 이번 총선에서 시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작년에 벚꽃이 2주 일찍 피었다. 올해도 4월 초 벌써 벚꽃이 피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개화기가 점점 앞당겨지는 봄, 2024년 4월 10일 총선에서 우리 모두 기후유권자가 되어야겠다.
후쿠시마 핵 사고 13주년 에너지 전환 대회 공동 선언문
이제 우리 여기서, 전환의 정치를 시작하자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 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죽고 병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고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어떤 동물들은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 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 버린, 뜨거운 핵연료가 그대로 있다. 그것을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이 재난은 13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다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역시 핵 발전의 위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핵 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지진이 계속될 때마다, 분별 없는 누군가가 새로운 핵 발전소를 짓겠다고 엄포를 놓을 때마다 우리는 몸서리를 치며 그 위험을 느낀다. 10년 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 내던 밀양 주민들에게 행해진 극악한 국가 폭력은 핵 발전이 안전의 문제를 넘어 얼마나 부정의하고 반평화적인 에너지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 거대한 핵 발전소로부터 생산된 전기가 대도시의 밤을 밝힐 때, 핵 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 피폭과 공동체 파괴로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또한, 폭염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폭우로 도로와 집이 잠기는 것을 보며, 거대한 산불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동물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세계가 이대로 지속할 수 없음을 느낀다. 기후 위기가 재난과 참사로 나타나고 있다는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참혹한 현실조차 이제 막 시작된 기후 위기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2도 상승한 지난해를 살아 낸 우리가 보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도대체 어떠한가.
신공항, 케이블카, 그린벨트 해제, 신도시 개발과 같은 온갖 파괴적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화석 연료 퇴출과 플라스틱 규제에 대해 강력한 전망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없다. 핵 발전소를 폐쇄하기는커녕 핵 산업을 진흥시키자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말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시장을 활성화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자는 다디단 말 뒤에는, 국가의 전력 공급을 차츰 민간 기업에 위탁하려는 민영화의 불순한 의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주요 정당들은 고작 환경 운동가 출신 후보 한두 명을 장식품처럼 앉혀 놓고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고 허언을 일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유례없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핵 위험을 끝내고 기후 위기를 최소화할 진짜 기후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후쿠시마 13주년과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당에 요구한다. 첫째, 빠른 시일 내에 모든 핵 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퇴출할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라. 핵 진흥으로 폭주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고사하고 기후 위기 대응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들고 통제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이로써 에너지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지역이나 계층 간의 격차가 없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모든 이들의 삶을 지키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라. 일부 지역의 주민이나 특정 당사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이것이 결국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며 기후 정치의 실천이다.
우리는 또 이번 총선을 넘어, 기후 정치를 위한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할 것임을 선언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핵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해양 생물들의 바다, 그리고 나무와 동물들의 숲이 오염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핵폐기물 더미와 처리 비용으로 고통받는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전환의 대상인 발전소와 공장과 건설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우리 자신이며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정치를 바꿀 것이다. 핵 발전과 에너지 민영화를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해낼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 낼 것이다.
2024년 3월 16일
후쿠시마 핵 사고 13년: 에너지전환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