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도시대의 “구상도(1848)’’, 보스턴미술관 소장
가녀린 꽃과 연한 이파리로 간절하게 피어나는 생명들이 흘러 넘치는 잎새달 4월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 옆지기와 용인 호암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미술관 진입로 정원에 매화와 홍매화 나무가 꽃등을 켰고, 산수유나무도 노란 꽃잎을 수줍게 피워 올렸습니다.
한·중·일 3국의 옛 불교미술 속에 나타난 여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서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극복하고 성불(成佛)하고자 한 여성들의 염원이 묻어있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구상도(九相圖)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구상도는 일본 불교에서 간혹 등장하는 그림 장르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시신이 9단계로 부패하여 해골과 한줌의 재로 변해 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은 화사하게 핀 벚꽃 아래 서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죽음과 시신의 부패, 들짐승과 벌레들이 파먹는 장면과 해체 과정을 거치며 역겨운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더니 자연으로 돌아간 후 다시 평온해집니다. 수행하는 남성 승려에게 여성의 몸은 집착과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악'이란 경고 메시지를 그림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구상도에서 여성 혐오보다는 네덜란드의 바니타스(Vanitas) 화풍이 전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교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바로 옆에 있을지 모르는 죽음과 소멸을 기억할 때,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4·3에서 4·19를 거쳐 4·16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오늘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4월 10일을 전환점으로 굽은 것이 바로 펴지고 새로운 삶이 열리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4월의 바람이 붑니다.
이웃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