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번지점프를 앞둔
- 김하나 조합원
올해부터 길목의 청년 사업을 맡아 이끌어 갈 김하나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길목 새 사무실이 있는 향린교회 옆에는 느티나무가 누군가를 넉넉히 품어 안을 듯이 연초록 잎이 가득 피어난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습니다. 김하나 조합원이 우리 길목 청년들을 그렇게 두 팔 가득 안아주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어보았습니다. 그는 '선물 경제'를 실현하는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 묶인 한줄기 밧줄만 믿고 뛰는 번지점프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Q : 김하나 조합원은 목사님이시지요?
네. 향린교회에서 청소년 담당 전도사 일하고, 섬돌 향린교회에서 4년간 일했습니다.
지금은 길목 청년 세미나 지원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Q : 길목 조합원으로 가입하신 까닭이 있다고 하셨지요?
제가 청년 세미나 지원 간사를 맡게 되었고, 또 올해 심리상담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심심에도 관심이 많아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Q : 그동안 길목 청년 사업에 함께 하신 경험이 있지요?
제가 일했던 섬돌 향린교회는 지속적으로 청년 세미나에 참여했어요. 청년 평화 기행과 여름 캠프에 제가 서클 진행자로 참여해서 길목 청년들과 연결 지점이 있었죠. 청년 간사님이 그만두시고 공백이 생겨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길목 청년 사업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지원했습니다.
Q : 길목 청년 사업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요?
요즘 교회에 청년이 많지 않잖아요. 인원이 적어서 모임을 만들어도 활기찬 활동이 쉽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청년뿐 아니라 다른 세대들도 마찬가지인데.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대면해서 만나는 것에 대한 어색함이 사회적인 단절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청년 세미나모임은 개교회 청년들을 모이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다른 교회 청년들과 에큐메니컬 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 되잖아요. 그래서 같은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경험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단위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Q : 청년 세미나를 통해 청년들이 연결되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청년들이 기질이나 성향이 다르고 지향점도 달라요. 에너지가 높은 외향적인 성향의 청년들은 잘 어우러지지만, 사람이 많으면 부담스러워하고 친밀한 소그룹 관계를 원하는 내향적인 청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책을 매개로 하는 소그룹 모임은 안정적이지요. 적극적이지 않은 청년들도 책 모임은 스스로 참여하는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Q : 청년 책 읽기 모임을 했던 청년들이 발표회를 열지요?
참가 단위가 교회 청년회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다른 청년 모임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요. 그 모임 경험이나 성과가 개별 모임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모임의 배움을 간접적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청년들이 그 이후에 서로 친해진다거나 활동을 함께 하는 데까지 발전하나요?
그렇게까지 연결하지는 못했고요. 그게 평화 기행이나 이제 평화 캠프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책 모임이나 세미나 특강을 평화 캠프나 평화 기행으로 연결해 낼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죠.
Q : 그러려면 참가자들이 자주 만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지난해 여름에 섬돌 향린교회 청년들과 여름 교회 청년이 함께 수련회를 했어요. 여러 모임을 묶어 내려면 각 모임의 특성이나 상황을 잘 살펴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아요. 서로를 연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청년이나 리더가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책 모임들이 연말에 그 결과를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요. 그런 일을 기획하고 연결하고 초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 심리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제가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에서 심리상담 공부를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목회 현장에서 성소수자나,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제가 너무 아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 저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또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 주시는 분도 보호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학원에서 위기관리 상담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Q : 성소수자 심리상담을 하고 있나요?
목회 현장에서 성소수자 상담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섬돌 향린교회는 교우뿐 아니라 전국의 기독교 성소수자분들이 전화를 주세요. 주일에 본인 교회에서 엄청난 상처를 받고 주일 마치고 제일 전화가 많이 와요. 그런 의미에서 임보라 목사님은 섬돌 향린 만의 목사님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성소수자 크리스천들의 목사이셨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죠. 감사한 일이면서도 힘든 일이죠. 그래서 공부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하던 일이 평화 상담, 평화 교육, 갈등 전환 대화 진행자, 갈등 중재 대화'를 진행해 왔어요. 그리고 기존에 목회 상담했던 일들이 연결되어서 많이 도움이 돼요.
Q : 김하나 조합원님이 공부하는 위기관리 상담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누구나 인생에서 상실과 위기의 순간들이 있죠. 위기 순간에 처한 내담자에 대한 지원은 자신이 상처를 극복한다기보다는 상처를 잘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주변의 지지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돌보면서 그분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상담 체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위기 상담 공부는 이제 막 시작되는 그런 분야이기도 하고 또 필요를 요청받는 분야이기도 한데 저는 목회자여서 이 공부를 선택한 것 같아요.
Q : 김하나 조합원은 어린 시절 꿈이 목사님이었나요?
아니요! 저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서울태생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대학도 가지 못하고 일을 하며 지내다가 26살 때 연극을 너무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가려고 준비했는데, 엉뚱하게 신학과에 가게 되었어요.
Q : 인생 진로가 예상을 벗어났네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그때 연극영화과에 가기에는 나이가 좀 많았죠. 연기학원 선생님이 한예종 교수이셨는데, 조연출로 일하는 기회를 제안하셨어요. 사실 엄청난 기회였죠. 근데 제가 그 기회 앞에서 너무 무서웠나 봐요. 갑자기 생긴 이 기회를 환대하지 못하고 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이 실망하게 될까 봐 도망쳤어요. 도망칠 그때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컸어요. 그런데 그때 저를 잘 모르실 거로 생각하고 있던 담임 목사님께서 "너는 신학을 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신학과 입학을 권하셨어요. 수능 준비도 안 되어 있었는데 그냥 수능을 봤어요. 그리고 신학과에 합격했어요. 너무 황당하죠?
Q : 신학과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었나요?
26살 늦은 나이였지만 대학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청소년들에게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남들이 들으면 '빵 터지는' 까닭이 한 가지 더 있어요.
Q : '빵 터지는' 이야기? 궁금한데요?
제가 가난하게 자라고 청년 때도 가난했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요리 서빙. 편의점 일등 온갖 일을 다했어요. 밤새워 일하고 몸은 지치고 힘들었는데도 교회에 가서 봉사하고 싶어서 PPT 넘기고 찬양하고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전도사님, 목사님들은 교회 일이 직업이 되잖아요. 일과 신앙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목회자라는 직업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목사님들은 "너 같은 애 처음 본다"라고 하시며 빵! 웃으셨어요. 그런데 그게 완전 패착이었던 거죠. 제가 교회의 문화를 너무 몰라 큰 교회 목사님만 보고 모든 목회자가 다 그런 줄 안거예요. 이제 먹고사는 문제를 목회자로서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왔잖아요. 어쨌거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엄청난 전환이었어요.
Q : 그렇게 신학과를 입학하신 뒤 학교생활이 궁금하네요?
제가 돈 벌면서 공부하느라 학부를 10년 다녔거든요. 그때 저를 지지해 주셨던 아버지 같은 목사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신학을 계속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어요. 원래 저 같으면 선택을 잘 못 하거든요. 근데 그때 나도 모르는 용기가 났어요. 10년이나 끌면서 해온 신학 공부를 그만둔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는지 무작정,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선택했어요.
Q : 대학원 공부도 일을 하면서 계속하신 건가요?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에 다니면 공부를 제대로 못 하게 돼요, 그래서 대학원 입학한 뒤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결심하고 일을 안 했어요. 그랬는데 너무 신기하게 첫 학기는 저희 엄마가 여태까지 한 번도 저의 학비나 이런 걸 신경 쓴 적이 없으셨는데, 저희 엄마가 척추가 2개가 나가는 사고가 있으셨었어요. 그때 받은 보험금을 첫 학기 등록금으로 내주셨어요.
Q : 눈물의 등록금이네요?
저는 부모님이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제가 신학하는 것에 관심도 없으신 줄 알았는데, 그 일이 뼈저리게 감사했어요. 첫 학기를 그렇게 해결하고 전액 장학금 주는 학생회장을 3학기 동안 해서 4학기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그러니까 저에겐 아주 신기한 경험인 거죠. 10년을 아등바등 일하면서 대학을 다녔는데 내가 그냥 힘을 빼고 내려놓았는데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 거지요. 삶이 내 예상이나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험하게 해 주실 삶은 내 힘을 빼고 하나님한테 맡기고, 줄이 있다는 믿음으로 번지점프를 뛰어내리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번지점프를 다시 한번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Q :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신 힘을 채우는 방법은 어떤 건가요?
전도사 때는 청소년들에게 뭔가 많이 해줘야 할 것 같고 이런 마음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거리 조절을 잘 못하기도 하는 것이 저에게 큰 숙제였는데, 영성 훈련이 전환점이 되어 준 것 같아요.
Q : 어떤 영성 훈련을 하시는지요?
침묵 기도나 관상기도 같은 개인기도 시간과 5년 정도 참여하고 있는 소그룹 기도 모임이 있어요. 흔히 떠올리는 기도 모임과는 조금 다르게 개인의 영적 여정 중에서 항상 걸려 넘어지는 영적 과제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모임이에요. 이 기도 모임 안에서는 '조충 평판'을 하지 않아요.
Q : '조충 평판'이요?
조언, 충고, 평가, 판단의 줄임말입니다.
Q : '조언 충고 평가 판단'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이 네 가지를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하나님이라면 저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시겠느냐는 호기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훈련을 하는 거지요. 어떠한 일이나 상황에 너무 몰입하고 매몰되어서 잠식되는 일을 막아주는 것 같아요.
Q : 자기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는 거네요.
그렇죠,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요. 저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Q : '하나'님이시잖아요. ( 하하하)
Q : 요즈음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제가 신학 이후에 사회 혁신(협동조합 공부), 다음에 상담심리 공부 이렇게 석사가 세 개째인데요. 지금 저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Q : 어떤 사회적 협동조합인지 소개해주세요.
교육과 상담 서비스를 지역 사람들이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어요, 갈등 전환, 평화/성평등/생태 감수성 같은 인문학 또는 사회학 교육들과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일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상담, 집단상담도 해보려고 해요. 개별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서울이라는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하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방법들을 경험해 보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을 하면서 함께 경험하고 서로 배우는 장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물 경제를 실현하는 협동조합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Q : 선물 경제를 어떻게 실현하시려는 지요?
<사회 혁신>에서 중요한 '공유 경제' 안에 '선물 경제'라는 개념이 있어요. 선물 경제는 화폐를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교환 방식과는 다르게 대가를 지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제공하게 되는 어떤 교육 서비스나 상담 같은 것들을 자발적 기여를 통해 진행하려고 합니다. 선물 경제를 실현하는 게 이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또 교육이든 상담이든 결국 누군가에게 선물같이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Q :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을까요?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와 맹점을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처럼 능력 개발을 강조하고 그것이 스펙으로 연결되는 세태 속에서 돈이 없으면 자기 개발도 하기 어려워요. 빈곤이 빈곤을 낳는 악순환에 균열을 내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동안은 교회가 그런 역할들을 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교회를 넘어서 이것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어디서 어떤 기여가 올 지 저도 한정 지을 수 없으므로 무한하게 열어두고 새롭게 열리는 장을 우리가 함께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각자 가진 자원들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아도 충분히 서로에게 연결돼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향해 창을 열어놓는 거죠.
Q : 혹시 지역은 정하셨나요?
접근성이 좋은 종로나 광화문 쯤에 장애인 이동권이 가능한 곳으로 마련하고 싶었는데 세가 너무 비싸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종암동에 공간을 계약했어요. 13평 정도니까 크지는 않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가능해요.
Q : 새로운 협동조합 만드는 일을 '인생의 번지점프'를 뛰는 것 같은 일이라고 표현하셨지요?
제게 동생이 둘 있는데요, 우리 노동자들이 다 그렇듯 동생들은 아직도 정말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자로서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제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그렇게 지내요. 제가 한때는 굉장히 돈을 많이 버는 보험설계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요,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렇게 자본에 얽매여서 살았던 내가 자본이 여유로워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선물 경제'로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냈어요. 가난하고 없이 살았던 그때의 불안감과 공포에 이제 더 이상 (여전히 불안하지만) 매여 있지 않고 한 걸음 내디뎌 보는 이걸 번지점프 뛴다고 표현해 보았어요. 선물 경제를 실현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무모하겠어요? 아마 '뭔 생각을 하고 사나?' 하시겠지만, 저는 그것이 어떤 경험으로 다가올지 환대해 보려고요.
김하나 조합원은 자신이 '길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길에 서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가 꿈꾸는 선물 경제를 실험하는 협동조합은 길목과도 열린 마음으로 유연하게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단문 선 답]
1. 나에게 믿음(신앙)이란?
항상 하느님과 하느님의 벗들과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살아가는 것.
2. 나에게 행복이란?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벗과 연결되어 '나'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
3. 나에게 사랑이란?
존재 그대로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
4. 나에게 나이 듦이란?
다양한 경험들과 성찰들을 통해 발견한 자기 과제를 다뤄나가는 시간.
5.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의 목소리에 정직하고, 타자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삶을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