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그것은 마치 봉인을 누군가가 풀어줘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막상 장선우 감독이 ‘꽃잎’이란 영화로 80년 광주를 기억하려고 했을 때에 무모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앞섰다. 그 두려움은 자칫 섣부르게 잘못 풀어냈을 때 갖게 되는 두려움 이상이었다. 그것은 두려움 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리고 ‘박하사탕’이란 영화가 성큼 다가왔다. ‘성큼 다가왔’다고 한 것은 잠깐 동안이지만 그 두려움이나 공포를 직시하고자 한 것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서서히 봉인이 풀리듯 뉴스 등을 통해 광주의 실상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사진들이 노출되기 시작했고 어느덧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상기’된 기억의 다름 아니었다. 현실세계는 어쩌면 이렇게 역사라는 이름을 빌려야만 현실세계의 두려움이나 공포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택시 운전사’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에 힌트를 주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위르겐 힌츠페터가 생전에 자신을 80년 광주의 현장에 데려다 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찾아왔었고 제작사도 그 ‘김사복’을 찾게 되면서 그 과정 자체가 영화와는 별도로 극적으로 현실세계에서 뉴스로 다뤄져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JTBC에서 80년 광주에서의 헬기 기총 사격 기사가 다뤄지고 현재, ‘80위원회’란 것이 있어서 실제로 광주를 왜곡하고 덧씌우기를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위르겐 힌츠페터는 외국인이지만 죽음과 공포를 기억하기위해 기록했고 그 기록이 30년 뒤에 살아나서 우리를 김사복처럼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됐든, 밀린 집세가 됐든, 현실에 등 떠밀려 들어가게 된 두려움과 공포의 현장에서 한동안 현실을 부정하지만 늪처럼 빠져 나올 수 없다고 느끼는 김사복의 모습은 30년간 두려움과 공포를 애써 회피해온 나의 페르소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기록과 기억의 힘을 믿는다. 기록과 기억의 힘으로 이름 없이 쓰러져간 광주의 영령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고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생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을 것이며 두려움과 공포의 상징이지만 실체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심장부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간단 줄거리)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독일 기자가 80년 광주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하여 광주까지 자신을 태우고 갈 택시를 찾는데 마침 김사복이란 택시기사는 밀린 집세 때문에 장거리 전세를 뛰기로 하고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그런데 집세만이 목적인 김사복에게 광주행은 목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 아니었는데 광주에 도착해보니 이미 삼엄한 경계 속에 광주는 봉쇄 되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도착하여 실상을 목격한 김사복은 충격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