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
저자 김재인 | 동아시아 | 2023.05.23.
우리가 사는 세상을 2022년 11월 30일 Chat GPT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 1년 반 동안 쉼 없이 발전한 생성 인공지능들의 진화된 성능은 매번 놀라움과 충격 그리고 살짝 공포를 안겨준다. 오픈AI의 Chat GPT를 비롯하여 구글의 Gemini 등 초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의 챗봇들은 모든 질문에서 효과적으로 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일부 거대 언어 모델은 소스 코드를 자동으로 생성하거나 개발자의 코딩을 돕는 코파일럿(Copilot) 기능을 제공한다.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이미지 생성 모델은 사용자의 프롬프트(prompt)로부터 높은 수준의 그림을 생성할 수 있다. 멀티모달(multimodal, 2개 이상의 매개변수로 학습하는 것을 의미)로 언어, 이미지, 음악, 영상이 두루 학습되면 프롬프트에 맞는 연속된 동영상 생성도 가능하다. 오픈AI의 소라(Sora), 스태빌러티 AI의 스태이블 디퓨전 비디오 모델(Stable Diffusion Video model), 구글 딥마인드 출신자들이 공개한 하이퍼(Haiper) 등 비디오 생성형 AI 모델들간의 경쟁도 본격화될 조짐이다.
도구는 활용하는 사람을 증강한다. 20세기말 워드 프로세서의 등장으로 타자수의 일자리가 사라졌듯 생성 인공지능의 발전은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지능적 활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잠식할 전망이다. 구글 Gemini에게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는 일자리 목록을 작성해 달라고 하니 데이터 입력원, 통계 조사원, 생산라인 작업자, 단순반복성 사무직 노동자, 콜센터상담원, 금융기관 고객상담원, 매장 판매원, 법률문서 검토, 회계보고서 작성 등의 직업들이 떠오르는데, 불과 2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광경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기반한 콜봇과 챗봇의 성능 개선에 따라 간단한 전화상담 업무는 기계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이러다가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나아가 초지능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많은 미래학자들의 걱정대로 인공지능은 인류 멸망의 디스토피아를 펼치게 될까?
저자는 철학자로서 30여 년간 문화철학과 기술철학 영역에서 활동해 왔으며, 특히 인공지능과 연계한 인문학, 철학, 교육 등의 이슈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꾸준히 이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성 인공지능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사색 과정을 전개한다. 책은 1부 [생성 인공지능의 빛과 그림자]와 2부 [창조성의 진화]로 나누어지는데, 개인적으로 1부에서 큰 감동(!)을 얻어 조합원 책소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의 1부 첫 문단은 “인공지능은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고찰하자는 제안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내놓는 답은 역설적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은 예술일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작품은 작가가 그 안에서 자기 의도에 도달할 때 만족된다.”는 렘브란트의 말에 의거하여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할 권리는 최초의 감상자인 작가 본인에게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작품을 아무렇게나 내놓지 않으며 평가를 거친 후에 내놓는다. 창작의 진정한 의미는 결과의 관점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 개입되는 ‘평가’에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도 충분히 경탄할 만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자기 작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으며 따라서 ‘평가’ 작업을 할 수 없다. 원리상 인공지능은 평가 기준을 자기 바깥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가 기준은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결국 모든 인공지능 창작물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판정한 ‘인간 평가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이 아주 세련되고 훌륭한 창작의 도구일지언정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명쾌한 ‘단언’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인공지능의 이미지, 다시 말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인공일반지능의 이미지가 허구라는 것을 방증한다.
저자는 이어서 초거대 언어 모델(LLM)의 한계를 지적한다. 아무리 언어 샘플을 많이 쌓아도 존재는 구성될 수 없다. 이미지, 소리, 동영상 등 멀티모달 역시 전적으로 언어에 의지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입력되는 모든 데이터는 언어와 짝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logos)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영역, 들뢰즈가 말한 아이스테시스(aesthesis, 감각된 것)는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음악이나 회화를 말로 번역해 전달한들 그 말을 듣고 작품을 느낄 도리가 없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표상인 언어만이 컴퓨터가 인간에 접근하는 길이기 때문에 초거대 언어 모델에 아무리 많은 언어를 학습시키고 매개변수를 늘리더라도 세계와의 접점이 극적으로 증가하지 못한다.
그다음으로 저자는 “기계(인공지능)가 과연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사색을 이어 나간다. 인간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마음, 생각, 의식 등이 기계에 의해 그대로 수행될 수 있을까? 레이 커즈와일, 대니얼 데닛, 유발 하라리, 맥스 테그마크 등 초지능의 등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의 뇌가 물리적 하드웨어라면, 그 안의 소프트웨어 격인 마음의 구현도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원리상 불가능하다고 냉철하게 답한다. 어떤 유형이건 모든 기계학습은 자율학습이 아니며, 해결 과제가 내부가 아닌 외부의 인간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따라 계산할 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혼자 목표를 세우거나, 자기를 점검하고 평가하고 수선하는 능력이 없다. 고민하고 궁리하여 문제 해결하는 시도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점이 동물 또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결정적 지점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 기계에 대한 물음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책의 2부 [창조성의 진화]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삶 안에서 협업과 교육 그리고 인문학의 르네상스에 대해 보다 깊은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고 주요 이슈별 제안들을 담았다. 확장된 문해력을 포함하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생성 인공지능을 유용하게 활용할 방도를 찾아가되, 인공지능의 한계를 인식하여 가치창조에 대한 ‘평가자’로서 인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차별성을 추구해 나갈 방향을 찾는데 여러 가지 신선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AI 시대에 인간 존재의 문제를 냉철히 사색하고자 하는 분께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