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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책이 가슴에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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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조용하고 절망적인 생애에 관한 이야기

posted Jul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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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서옥경
글쓴이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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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조용하고 절망적인 생애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

 

 

흔히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며 지금 주어진 삶 그대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더 높이 더 멀리 가기를 갈망한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두 글자를 떠올린다. 롤러코스터를 타고난 후의 삶은 성공으로 연결 짓고 싶어 한다. 극적인 변화나 반전에 호기심을 가진다.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감동을 할 때 가 있다.

 

눈앞에 닥친 절망에도 휩쓸리지 않고 무심할 정도로 인내하며 자신을 지켜간 평범한 사람의 서사가 있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다. 스토너는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이름이다. 책 표지 스케치가 먼저 눈길을 끈다. 반쪽의 초상화는 쌓아 올린 책들이 완성한다. 주인공의 삶이 책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한다. 소설은 드라마틱한 전개나 화려한 꾸밈없이 그저 덤덤히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편안하게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읽다 보면 무미건조한 주인공의 일생이 문학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게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한동안 상념에 젖어들게 된다.

 

스토너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힘겨운 농사일을 거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의 권유로 집안에 보탬이 되는 농과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영문학으로 옮겨 박사학위를 받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학강단에 선다. 동료 교수와 갈등으로 은퇴할 때까지 정교수가 되지 못한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없다. 첫눈에 반한 여자, 이디스와 결혼하지만 금방 실패한 결혼임을 인정한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 덕분에 한동안 행복했지만, 아내의 방해로 부녀 관계도 소원해진다. 대학에서 만난 젊은 강사, 캐서린과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되지만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헤어지게 된다. 60대 중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대략적인 줄거리로 보면 어느 교수의 실패에 가까운 일대기다. 하지만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에게 던진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을 파멸시킬 듯 괴롭힌 아내 이디스에 대응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동료 교수나 학생사이에서 겪는 어려움도 받아들인다. 진정으로 사랑한 캐서린과 헤어져도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다. 딸의 불행도 먼발치서 바라보듯 한다. 그는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주어진 문제들에 대해 조급하게 해답을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인내하며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살아낼 뿐이다. 인생을 답답할 정도로 관조하듯 살아온 스토너였지만 놓칠 수 없는 열정이 있었기에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자문할 수 있으리라.

 

스토너는 평생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녔다. 열정만이 그를 배반하지 않고 유일하게 지켜주었다. 교육자의 지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 그 자체가 소중한 거다. 그는 연구하고 공부하며 학생을 가르치는 열정이 살아가는 힘이요 삶의 답인 것이다. 나는 왜 스토너의 물음에 멈칫할 수밖에 없을까. 그의 목소리가 그저 귓가에 맴돌 뿐이다. 훗날 내 삶의 표지를 만든다면 나의 초상화 반쪽을 채워 줄 열정은 무엇이 될까. 기대해 보자. 삶은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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