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84

죽음과 차별을 멈추러 달려간 희망버스

죽음과 차별을 멈추러 달려간 아리셀 희망버스

 

 

2024년 8월 5일 월요일 지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오는 8월 17일 토요일에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서울출발) 8.17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에 탑승해 주세요.

 

'같이 갈래요?'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사진전 이틀 전이었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15일에 능곡 꿈터 갤러리에 사진을 다 걸었다. 그리고는 8월 17일 토요일 11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도착했다. 소식을 전해 준 이도 노란 배낭에 노란 샌들을 신고 대전에서 올라와 있었다.

 

10년 전부터 참사는 색깔로 규정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노란색, 스텔라 데이지호의 주황색, 김용균 참사의 보라색, 이태원 참사의 검정색. 이번 아리셀 참사에는 연푸른색 리본과 손수건을 받았다.

 

아리셀 희망버스

전국 60대의 희망버스 중 서울 지역에서는 백기완 버스, 종교 버스, 기후 버스 등 부문별 버스를 비롯해 청년 학생, 인권, 산재 피해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 문화예술인 등과 개별참가자를 합쳐서 8대의 버스가 동화면세점 앞에 대기 중이었다. 내게 배정된 희망버스는 2호. 종교인과 문화예술인이 탄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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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희망버스 탑승

 

 

11시 30분, 희망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네 개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 내용과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참사와 이후 경과를 정리해 본다.

아리셀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일차전지 리튬전지 제조 공장이다.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께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폭발 및 화재로 인해 전 직원 103명 중 31명이 다치고 사망했다. 23명의 사망자 중 21명이 외국인노동자였고 그중 18명이 여성이었다. 이들은 하청업체 '메이셀' 소속이었다. 메이셀은 실제 사무실도 없이 불법노동자 파견을 하는 곳이었다.

 

6월 30일 <아리셀 참사 '중대재해 참사 유가족 협의회' 구성 및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7월 1일부터 매일 평일 저녁 화성시청 분향소 앞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 추모제를 진행했다.

7월 3일 대책위 내 대응팀(피해자권리보장팀, 추모행동팀, 법률지원팀 등) 구성 후, 7월 5일 1차 교섭이 있었으나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와 준비 부족으로 종료되었다.

7월 둘째 주, 차별적 피해자 지원 문제 해결을 위한 화성시 대책 마련 요구를 진행하며, 동시에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 고발을 진행하며 대응 투쟁을 진행했다.

7월 셋째 주, 피해자 가족은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사측의 개별 합의 종용에 대한 문제에 대한 기자간담회 등으로 문제를 알려내기 위해 대응했다.

7월 22일 가족협의회는 '아리셀중대재해참사의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 긴급 국회토론회'를 했으며 27일 서울 아리셀중대재해참사 희생자 영정행진을 했다.

8월 들어 피해자 가족과 대책위는 경기남부경찰서,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 자택, 노동부경기지청을 오가며 직접행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교섭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지 않는 사측을 규탄하고, 제대로 된 교섭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법적 개별 합의를 종용한 박순관 대표 구속 수사를 요구하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8월 17일 아리셀 희망버스가 전국에서 화성을 향해 출발했다.

 

2호 차 담당자인 인권활동가 명숙의 사회로 탑승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소개와 마음가짐을 발언했다. 차내에는 파인텍과 콜텍 투쟁과 탈핵 현장에서 뵈었던 김정대, 조현철, 김정욱 등 신부님들과 수녀님들과 수사님인 니키와 종합예술팀 봄날과 극단 마루 등의 문화예술인들이 있었다. 종교인들이 많아서인지 발언을 듣는 동안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랑으로 마음이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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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현장과 유족

 

아리셀 참사 현장

13시,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단 12길 33 참사현장에 도착했다.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버스에서 받아 미리 글을 써둔 연푸른 리본을 공장 울타리에 묶었다.

 

'죽음과 차별을 멈춰라'

 

참사 현장을 사진 촬영하고 있는 내게 2호 차에 타셨던 김정욱 신부님이 다가오셨다. 그리곤 저 위를 찍어달라고 하셨다. 상호였다. 아리셀 ARICELL 아래에는 더 셀 이즈 하트 THE CELL IS HEART라고 쓰여있었다. 세포인 셀 CELL과 심장이나 마음이나 가슴인 HEART가 상호에 들어있다. 이름은 존재의 첫 번째 가시적 증명이 되는데, 아리셀이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회사였다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안전 수칙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일하도록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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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CELL - THE CELL IS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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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화재로 시커멓게 무너진 아리셀 건물 아래 빨간 조끼의 외국인 무리가 보였다. 원어민 강사지회에서 온 이들이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아리셀 참사 희생자와 저만치 서 있는 유족과 똑같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외국인이라는 동질감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한국인인 나도 한국을 벗어나 세계 어느 나라에라도 가서 머물고자 하면 그들과 똑같은 처지가 된다. 역지사지. 인권은 국적을 불문하고 지켜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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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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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 오두둑과 어쭈 등 평화바람이 군산에서부터 전북 희망버스를 타고 오셨다. 그들의 친구인 멀리 남해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도 왔다. 전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모였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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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

 

도보 행진

다시 버스에 올라 15시에 남양읍 사거리부터 화성시청까지 1.5km 도보 행진을 했다. 행렬이 시작되는 지점 전에서 얼음 생수병을 나눠주는 세실을 만났다. 얼마 만인지 날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비례해 반가웠다. 얼음물이 없으면 걷기 힘든 한여름 낮 아스팔트 위에 2500여 명 거대한 행렬이 이어졌다. 도보 행렬은 화성시청 앞에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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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아리셀

 

본대회

15시 30분부터 17시까지 본대회가 진행되었다.

민중의례인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과 구호 후 임정득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신날 수도 우울할 수도 없는 노래가 들리는 동안 유가족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슬픔 때문인지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인들이어서 그런지 유가족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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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 유족

 

노동, 시민사회, 종교, 법률, 이주 공동대표단의 발언 중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발언을 옮겨본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산업 현장에 노동력 필요에 의해서 정부가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무권리 상태에서 차별받고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 왔습니다. 내국인보다 세 배 높은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 멈춰야 하고 산재 노동 멈춰야 한다고 요구해 왔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노동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윤 수단에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얼마 전에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사업장 안전사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대책만으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막을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도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와 사업자들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은 필요하지만, 생명과 안전에 대해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주노동자 쓰다가 버리는, 이래도 된단 말입니까? 윤석열 정부와 사업주들의 이 썩은 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사고방식 바꿔야 합니다. 이주노동자는 죽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노동자가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함께 싸워나갑시다."

 

이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윤복남 공동대표 대신 민변 부회장의 발언으로, 2차 교섭이 아예 잡히지 않았음과 불법 방식 개별 교섭을 추진하는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함, 고위험 소규모 사업장의 불안정한 고용과 언어와 문화 문제 3중고에 놓인 이주노동자 상황에 대해 정부는 위장도급 불법 파견 해소 방안과 이주노동자 안전 법안 대책과 화학물질관리법안대책을 마련해야 함을 정리 발언했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 발언으로 공동대표단 발언이 끝났다.

이어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김진희 본부장은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후 유가족을 위한 박수를 청했다. 이후 추모 춤 공연과 희망버스 참가자 발언이 있었다. 제주에서 비행기 타고도 왔고, 일가족이 온 참가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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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참가자들

 

 

이후 416 합창단이 합창했다. 얼마 전 작고한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416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그동안 반응이 거의 없던 아리셀 참사 유족들이 울기 시작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아픔은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꿈에도 원치 않던 유족이라는 타이틀을 3,650여 일 동안과 55일째 달게 된 그들의 마음은 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처절한 위로가 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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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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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눈물

 

 

마지막으로 아리셀 참사 유가족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들은 오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더듬더듬 한국말로 죽은 자식과 조카와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3년 전에도 이틀 전에도 있었던 폭발 사고. 비상구에 물건을 적체해 놓지 않았더라면, 불을 소화기로 끄지 말고 빨리 도망가라고 교육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희생자. 유족들이 원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은 무시되는 지금, 아리셀과 정부는 공범이라는 그들은 구호를 외쳤다.

 

"진상을 규명하라"

"박순관을 구속하라"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피해자 권리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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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 유족 "죽음과 차별을 멈춰라"

 

 

박순관 구속 서명운동을 2만 명 목표로 진행할 예정임을 마지막으로 알리며 본대회가 끝났다. 이후 모두 화성시청 분향소로 걸어 올라가 조문을 했다. 그리곤 유족들이 직접 만든 하얀 종이 국화꽃을 시청 내 원통 기둥에 붙였다. 그 모든 진행 상황 옆에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카키색에 노란 꽃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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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

 

 

참가자들은 다시 아래로 내려와 집행부가 준비한 콩물 우뭇가사리를 먹고는 차에 올랐다. 화성에 남아 있는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에게 희망버스에 탄 모두가 위로와 힘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위에 밤이 내렸다. 숨이 찬 하루가 끝나가는 길에 아리셀 희망버스 소식을 알려줘 함께할 수 있게 해 준 이에게 감사하는 긴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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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이후

 

아리셀 희망버스 5일 후인 23일, 노동부와 경찰은 이달 23일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박 대표 등 4명에 대해 사전 구속 영장을 각각 신청했고, 11일이 지난 8월 28일,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28일 고용노동부에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일 자 문화일보에 따르면 '수원지법 손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박 대표에 대해 "혐의사실이 중대하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첫 사례다.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2500여 명의 염원이 효력을 나타내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근로자를 제조 공정에 불법으로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량 전지가 폭발 및 화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프레시안에 따르면 아리셀 참사 희생자들이 제조하던 배터리가 군에 납품됐다는 사실과 이 과정에서 군납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국방부와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아래 가족협)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9월 3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국방부 사죄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수사 결과 아리셀에서 제조된 배터리를 납품받은 국방부 역시 참사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반복되는 폭발에 대한 묵인 등 공급망 관리에 총체적 문제가 드러났다고 규탄했다고 한다.

 

제주 서남쪽 강정마을이 파괴된 것도 동쪽 제2공항과 새만금 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것도 모두 국방부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분단국가의 설움은 위기의식과 강대국의 간섭으로 자연 생명 파괴도 모자라 이 땅에 와서 먹고살겠다고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생명까지도 앗아가고 있다.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에게 살상과 폭력으로 다가가는 국가의 이름이 대한민국이 된다는 건 우리의 수치다. 우리는 그러한 나라가 아닌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국가에 살고 싶다. 다음은 대한민국헌법 전문이다.

 

 

대한민국헌법

 

[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 10. 29., 전부개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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