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애도의 길,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
-이태원참사 2주기에 부쳐
지난 26일(토) 시청광장에서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대회가 있었어요. 1주기에 이어 가수 하림 씨가 노래로 위로를 전하는데 특별히 '별에게'를 불렀어요. 최정주(최유진 희생자 아버님)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이날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해요. 함께 한 시간을 그리워하며 온통 딸에게 향하는 마음이 가득한 노래였어요. 희생자 생일에 청년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좋아하던 물건을 생일 선물로 사서 추모 공간에 가져갔다가 기부하고, 희생자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글이나 작품을 모아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는 유가족도 있습니다. 유가족과 지인들에 의해 개인적 애도는 다양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에 일어난 상실의 고통은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요? 올해 2월 어머니를 모시고 짧은 외국 여행을 다녀왔어요. 저녁 바닷가에서 쇼를 보고 나오는데 출입구가 한 곳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몰렸는데,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려요. '이러다 이태원처럼 사고 나는 거 아냐?' 그때 저도 이태원참사를 떠올리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지고 있었거든요. 사회구성원으로 우리도 간접외상으로 일상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을 가지게 된 것이죠.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은 늘 죽음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게 생명의 원리이기도 하죠. 그러나 사회적 참사의 희생은 개별적인 죽음의 맥락과는 다릅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9·11 테러와 참사 후 보복으로 대응한 미국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참사는 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참사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는 취약성을 마주하며 애도에 참여할 때, '사회를 하나로 묶는 애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는 기회가 될 때,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 10월 23일 재난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포럼에서는 참사 유가족들의 증언이 있었는데요.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로 배우자를 잃은 최현주 님은 6월 24일 참사 이후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고, 대다수 유가족들은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하면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은 왜 갑자기 죽임을 당했을까?,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참사를 일으킨 책임자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이 한 시도 떠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 질문은 사회적 참사에 책임을 느끼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진실은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알아야만 떠난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죽음은 억울한 희생으로만 남겨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해소할 수 없는 울분을 화인처럼 십자가로 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8월 부천 화재 참사 유가족인 송근석 님은 정책 포럼에서 자녀의 생사확인도 되지 않고, 어느 병원에 안치되어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던 끔찍한 시간을 떠올리며 아무런 매뉴얼도 시스템도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정민 운영위원장(이태원참사 유가협)은 유가족다움이 우리를 위축시켰다면서 그때는 모두의 눈초리가 왜 그렇게 매섭게 느껴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일방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말고 서로 만나서 아픔을 나누지도 말고 조용히 슬퍼만 하라는 정부의 태도가 사회적 애도라는 책임을 저버렸습니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것조차 경쟁이 되고 그곳에 간 개개인을 탓하는 사회가, 사회적 애도에 실패한 우리가 159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다고 무겁게 느낍니다.
10월 내내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된 해밀턴 호텔 광고벽은 추모 메시지와 꽃 등 추모 물품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10월 29일 녹사평광장에서 진행된 추모메시지 낭독제에 참여한 일본 아카시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 님은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이 혼잡 신고에 대응하지 않고, 응급 대응의 혼란이 23년 전 아카시 보도교 참사와 너무나 유사했다면서 일본에서는 이후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통과 슬픔은 달라지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람에게 친절한, 좋은 사회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요.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으로 애도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애도는 함께 슬퍼하며 진실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어 그에 따른 사회적, 도의적, 행정적,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반복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5월에서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9월 특조위가 출범하면서 이제야 진실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별이 된 159명의 희생을 기억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 우리 모두의 참사로 인한 고통과 상실을 치유하는 사회적 애도의 여정에 함께 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