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86

백낙청 외, 2024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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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상과 종교공부

백낙청 외, 2024, 창비

 

개벽(開闢)은 천지가 처음 열린다는 뜻이다. 성서의 천지창조와 거의 같은 뜻이다. 한국에 개벽사상이 있다. 황당무계한 얘기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지성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개벽사상에 대해 몇 차례 대담을 하고, 그것을 도올TV, 창비TV, 백낙청TV에서 방영하고, 이어서 책으로 펴냈다.

 

선천개벽이 있고 후천개벽이 있다. 1860년에 최제우가 동학(천도교)을 창시할 때 세계를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했다. 선천개벽은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는 것을 의미하고, 후천개벽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의미한다. 후천개벽을 천명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대대적인 운동을 벌인 사건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후천개벽 사상은 최제우에서 시작되어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 등이 조금씩 다르게 이어갔다. 백낙청은 이런 변혁운동이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 일어난 고유한 사건이며, 고유한 사상적 기여가 있다고 해서, K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다.

학창 시절 어느 땐가 개벽에 대한 이야기 들은 적이 있지만,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았다. 나라가 망해가는 처참한 현실에서 오죽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그냥 세상이 확 뒤집혀 버리라고 성토하는 줄 알았다.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은 창조주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한 사상과 충돌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담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벽사상이 한국에 고유할 뿐만 아니라 깊이가 있고 삶과 세상을 바꿔놓는 힘이 있으며, 지금도 계승하고 발전시켜 갈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이비 종교인들이 한 얘기가 아니다. 이름 있는 대학의 교수이거나 교수를 지냈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진지하게 대담한 거다.

 

백낙청은 개벽사상에 주목하는 것은 국수주의나 '한반도 예외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중요한 점은 한반도에서 발상한 이런 사상과 운동이 나머지 세계를 위해서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 성격이냐는 것이다. 만약에 이 개벽사상의 세계적인 쓸모가 확인된다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개혁운동과 혁명운동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기준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내부에서 진행되는 여러 변혁적 흐름을 일관된 잣대로 평가하는 데도 긴요할 것이다.

 

백낙청은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를 안고 있으며, 그 과업이 어느 곳에서 수행되든 '개벽'의 차원에 도달함으로써만 원만한 성공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임을 강조했다.

 

이 책은 네 토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토막은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 K사상의 출발'이란 주제로 백낙청, 김용옥, 박맹수가 이야기를 나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와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구한말 한반도에서 태동한 두 종교의 시작과 그 사상적 뿌리를 해석한다.

 

둘째 토막은 '동학의 확장, 개벽의 운동'이란 주제로 백낙청, 김용휘, 정지창이 이야기를 나눈다. 동학이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로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는지, '불연기연'의 참뜻이 무엇인지 풀이한다.

 

셋째 토막은 '원불교, 자본주의 시대의 절실하고 원만한 공부법'이란 주제로 백낙청, 방길튼, 허석이 이야기를 나눈다. 소태산 박중빈이 누구인지, 그가 정신개벽 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원불교의 핵심 사상들을 토론하듯이 설명한다.

 

넷째 토막은 '기독교, K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다'란 주제로 백낙청, 이은선, 이정배가 이야기를 나눈다. 기독교를 맨 뒤에 배치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이들은 한국 기독교 사상의 선구자들, 특히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에 대해 논의했다. 특이한 점은 이은선이 'K여성신학'을 제안한 것이다. 그녀는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뒷부분에 있다.

 

저자들은 K사상이 수반하는 역사적 실천이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졌음을 자랑했다. 그렇지만 촛불혁명이 지금도 진행 중인지,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그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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