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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라북도에서 보낸 12월

posted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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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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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라북도에서 보낸 12월

전북도청 앞 월요 미사와 군산 팽팽문화제와 수라갯벌

 

 

2024년 12월 2일 전북도청

제19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월요 미사

 

12월 첫 월요일 오후 세 시. 부안군 해창 갯벌이 아니라 전주시 전북도청 앞으로 갔다.

'새만금만이 현장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이들의 의무를 요구하도록'모인 신부님들과 신자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송년홍 신부님은 35년 새만금 개발의 이유를 탐욕이라고 하셨다. 개발 욕망과 돈, 이익, 물질만능주의 등. 2050년 완공 예정이라는 새만금 사업은 들어간 돈보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더 많은 사업, 전라북도민이 아닌 도지사와 정치권과 결탁한 토건 업자들을 위한 사업. 그렇게 만들어진 새만금은 상시 해수유통을 해야 한다. 이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생태적 회개. 오염, 투기, 붕괴의 삶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걷고 일회용품 쓰기 않고 미사에 참석하는 것 등이라고 하셨다.

 

CKB01349_ 제19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미사.JPG

 

 

이날 미사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영정 사진을 들고 있었다. 사진 속 웃는 얼굴은 부산에서 구미 한국 옵티칼 하이테크까지 열흘 동안 걸었던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이 뚜벅이 마지막 날이었던 전날, 찾아간다고 했던 김제의 산재 사망 이주 청년이었다.

 

미사 후 아들을 잃은 엄마와 친구를 잃은 친구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 다섯 살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故 강태완은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26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군포에 살던 故 강태완은 인구소멸 지역인 전라북도에 취업해서 5년이 지나면 국적을 준다는 조건에 따라 김제 HR E&I에 취업했다. 그런데 입사 8개월 만에 특수장비 차량에 끼어 사망했다. 그리고 사측의 공식 사과 없음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익산 원광대학교병원 장례문화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전라북도에서 죽음을 본다. 갯벌도 사람도.

 

다음 날인 12월 3일, 심야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목요일에 있을 고인의 추모집회를 걱정했다. 비상계엄령은 150여 분만에 해제되었다. 목요일에 추모집회에 가려고 서두르다 왼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익산으로 향했다. 화기 빼는 응급처치를 못 해서 통증이 심했다. 예정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스호스텔 주차장에도 장례문화원에도. 급하게 나간 길이라 고인의 친구가 준 명함도 못 챙겨 연락할 길이 없었다. 익산 거리에 시민들이 탄핵 피케팅을 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의 날벼락으로 일상이 파괴되고 불안정했다. 불안은 사고를 낳고 통증은 계속되었다. 송구하게도 전태일 열사가 생각났다.

 

CKB01412_ 고 강태완 어머니와 친구.JPG

故 강태완의 어머니와 친구

 

 

2024년 12월 9일 전북도청

제20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월요 미사

 

이날은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미사라기보다는 윤석열 퇴진·탄핵 촉구 시국미사였다. 12월 3일 심야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비상계엄령과 155분 만의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과 약 여섯 시간 만의 계엄 해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역사를 45년 뒤로 끌어내린 모욕적인 사건이었다.

 

CKB01438_ 제20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미사.JPG

CKB01455_.JPG

 

 

12월 12일 목요일 오후, 故 강태완의 유족과 사측이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는 13일 익산에서부터 14일 김제를 거쳐 경기도 군포로 올라와 치러졌다.

 

 

12월 15일 원광대학교 산본 병원 장례식장

 

토요일에 국회의사당 앞 문화예술인 시국 기자회견과 북 토크를 마치고 일요일 오전에 산본역에 내렸다. 때마침 흰 눈이 폴폴 내렸다. 하늘도 태완 군을 포근히 배웅하는 듯했다.

 

아담한 빈소 영정 사진 앞에 흰 국화를 놓고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렸다. 일어나 마주한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어머니 옆에 외국에 있다던 누나가 서 있었다.

접객실에는 고인의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상장과 사진이었다. 제30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집과 전태일 평전도 있었다. 고인이 대학교 2학년 때 전태일 이소선 장학금을 받고 사 본 책이었다.

그의 작업복 옆 모니터 속에 살아있던 고인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10월 19일에 촬영한 영상의 고인 분량 풀 영상이었다. 만 다섯 살에 한국에 왔으니 고인에게 한국어는 모국어였다.

 

내 옆에는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두 주 전 전주 전북도청 앞에서 그이가 고인과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해서 진짜 동네 친구인 줄 알았다. 명함을 받아 들고 그 안에 새겨진 글씨, 박사를 보고는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 편견을 질책했다.

'왜? 이주노동자랑 박사랑 친구일 수도 있지 왜 아니라고 생각해?'

 

그이의 이름은 아주 먼 옛날 한남동 산동네 외가에 가면 막내 이모 방 책꽂이 꽂혀 있던 프랑스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이름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빈방에 서서 그 소설을 다 읽었다. 아마 그 책이 내가 맨 처음 읽은 긴 분량의 외국 소설이 아니었을까?

 

그 작가랑 같은 발음의 이름을 가진 그이가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군포에서 2년 함께했던 어머니와 고인. 모자는 한국에서 '없는 사람처럼, 신호등 빨간 불에 건넌 적 한번 없이' 살았다고 한다. 왜 아니었겠나. 언제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쫓겨날 수 있었기에, 정말 착하게 살았던, 착하게 살 수밖에 없던 이주 아동, 소년, 청년이었던 고인.

 

고인은 체류 자격을 위해 자진 출국해서 몽골에 다녀와야 했고, 국적 취득을 위해 전라북도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고 애사심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취업 후 체류증을 받자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서 사고 일주일 전에 소원이었던 엄마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던 고인. 회사로 돌아가면서 크리스마스에 오겠다고 인사하고 갔다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2024년 11월 8일이었다.

사고 원인을 고인의 '애사심과 책임감'으로 돌린 회사의 책임을 통감하는 공식적인 사과와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35일이나 미뤄진 장례. 전국에서 관심을 갖고 연대하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회사는 12월 10일에 유족과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회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회사는 사과문을 작성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2024년 12월까지 게시한다.

-회사는 행정청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되, 특히 다음과 같은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긴급 정지 기능 등 우선 개발 및 적용, 장비 운용 시 충분한 안전 공간 확보, 유족이 지정하는 대리인에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대한 확인)

-회사는 산재신청과 관련해 적극 협조한다.

-회사는 소정을 합의금을 유족에게 지급한다.

 

고인은 약속대로 크리스마스 전에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애통하게도 갈 때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의 장례식장엔 어머니도 누나도 있었지만, 어머니 곁에 늘 함께였던 친구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소망했던 대학생 친구처럼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연구하고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친구가. 대화가 끝나갈 무렵, 어느 겨를에 내 앞에는 모니터 속 태완과 그의 친구 사강이 함께 미소 짓고 있었다. 장례식장 밖에는 어느새 눈이 그치었다.

 

 

2024년 12월 16일 전북도청

제21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월요 미사

 

대림절 삼 주째, 세 개의 촛불이 켜졌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하다."

 

아홉 분의 신부님 중 이가진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하셨다.

위기에 강한 우리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태우 후보 시절부터 전라북도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새만금에 쏟아붓고 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갯벌이 죽어가고 있다. 바다 생명과 철새들의 보금자리였던 그 땅이.

내측 수위 –1. 5미터를 유지하는 방식은 생태계를 악화시키고, 갑문을 많이 열수록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발표가 있었다. 해수유통이 되면 갯벌은 살아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인간도 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사로잡혀 새만금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어주신 양심 그리고 자신의 존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스로 얼마나 복음화하고 있는지. 빛과 소금이 되어 희망을 간직한 존재가 되도록. 행동하는 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날은 문정현 신부님 사제 서품 58주년 날이었다. 19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으니 꼭 58년이다.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이의 시신을 지키시려다 영구차 탈취 크레인에서 떨어져 무릎부상 후 지팡이를 짚으시는 신부님. 2004년부터 2년 반 평택 대추리 투쟁 이후, 2010년부터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때문에 13년을 투쟁하시고 다시 군산에 오시니, 군산에선 제주 사람, 제주에선 군산 사람 취급한다고 하시는 신부님.

'신부님은 전국구예요. 이 땅의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신부님이 계시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글로나마 남긴다.

 

매주 월요일 오후 세 시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는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월요 미사가 계속된다.

 

CKB01506_ 제21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미사.JPG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 팽팽문화제

 

하제마을 팽나무를 보러 가는 날은 일찌감치 나선다. 군산에서 들를 데가 많기 때문이다. 12시 반 복성루엔 기다리는 사람 줄이 길고, 마리서사에는 아직 내 신간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성당 팥죽을 먹어야 겨울이 온다던 벗의 말을 기억하고 이성당으로 갔다. 빈자리 없는 카페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후다닥 팥죽을 먹고 나오는 길에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보니 평화바람 딸기가 생각나서 하나 샀다.

 

2시 좀 넘어 옥서면으로 들어가 미군기지를 거치고 있는데, 저만치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긴 머리 소녀가 보였다. 얼른 차를 몰아 옆에 가서 창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세요?"

"팽나무요."

 

그럴 줄 알았다. 어서 타라고 했다. 일찍 가서 준비를 도우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아뿔싸, 겨울엔 세 시가 아니라 두 시 시작이란다. SNS를 하지 않고 귀동냥과 기억으로 다니니 발생하는 일들이었다.

 

하제마을에서 평생 사셨던 여 씨 주민이 소개하셨다. 예전에는 팽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고. 지금의 팽나무는 동네 놀이터이자 각종 회합의 장소였다고. 군산 일 년 살이 하는 분도 계셨고 꾸준히 오시는 분도 처음 온 분도 계셨다. 그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나를 문정현 신부님께서 보시고는 환하고 반갑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험한 날씨 뚫고 먼 길 달려와서도 늦어버린 노고를 사르르 녹여주면서 역시 오길 잘했다고 확인케 했다.

 

카메라가 두 대나 촬영 중이었다. 영화 <사수>의 공룡과 <수라>의 황윤 감독. 영상 기록하는 이가 많으니 나는 노래를 따라 했다. 인디언 수니가 기타 치며 부르는'조율'과 '상록수'를. 문정현 신부님은 노래에 맞추어 지팡이를 흔들흔들 흔드셨다. 노래에 맞춘 건 아니겠지만 눈발은 굵다가 잔잔하다가 그쳤다. 마무리로 모두 넬켄라인 댄스를 하며 팽나무를 한 바퀴 돌았다.

순한 맛 팥죽을 먹으며 선물 교환을 했다. 책, 화장품, 영양제, 옷 등등 필요한 물품들을 서로 나누었다. 웃음과 나눔 속에서 2024년 마지막 팽팽문화제가 화이트 동짓날에 끝났다.

 

CKB01597 팽팽문화제.JPG

 

 

잠시 들른 평화바람 집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열세 명이 나누어 먹었다. 언제나 풍성한 오병이어의 기적.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기쁘게 확장한다.

 

서둘러 군산 터미널에 긴 머리 소녀를 내려주고 나포로 향했다. 내가 주로 가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동쪽 철새관찰소 부근에 있었다. 이날 나는 애초에 팽팽문화제 후에 나포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완두도 가창오리 떼를 보러 가신다고 했다. 해지고 십 분이면 가창오리 떼가 날아간다고.

뛰지 않고 재바르게 걸었다. 날은 흐리고 해는 벌써 사라졌다. 잠시 후 강 건너에서 시커먼 그물 같은 윤곽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려갔다 또 올라 사라졌다. 금강은 거침없이 흐르니 가창오리가 50만 마리씩이나 와서 쉬었다 간다. 새만금이 틀어막고 있는 만경강과 동진강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0주기 순례했던 영산강도 4km 넘는 하굿둑으로 막혀있었다. 지류도 아니고 거대한 강을 바다와 맞닿는 곳에서 막는 인간들의 경제 논리가 궁금하다. 흐르는 물을 막으면 수질 오염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생태계가 죽으면 사람도 결국 아프거나 죽는데 부자 나사로처럼 돈이 무슨 소용인가.

 

새들이 더는 날지 않을 때 아니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새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그 인사가 새들에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하는 인사로는 맞았다.

2024년 안녕, 잘 가.

 

CKB01630_ 나포 가창오리떼.JPG

 

 

지난해 11월, 평화바람 20주년 팽팽문화제 때는 혼자 나포 텅 빈 강둑 위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 곁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를 보는 평화바람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혼자 어두운 강둑 위를 타박타박 걸어 내가 주로 찾는 곳으로 갔다. 강바람은 칼바람처럼 차가웠지만 견딜만했다. 강도 하늘도 땅도 어두웠지만 내 마음은 어둡지 않았다. 작년엔 집에 돌아와 뒤척이다 눈물이 터졌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씩씩한 전문 시위꾼 평화바람의 삶에 반년 정도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배롱나무꽃 피던 7월 말부터 중간에 사진전 때문에 8주 빼고 11월까지 매주 왕복 네 시간 넘게 200km 이상 거리의 새만금에 갔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채우려는 마음이었다. 살살페스티발 때는 열심히 기록하려는 의무감이 강했다. 11월에 부안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전주에서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에 봬요~."

인사하고 돌아가면 또 한 주를 기다렸다. 월요 미사가 끝나야 한 주가 끝났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눈에서 가까우면 마음에서도 가까워지는 게 맞다. 좋은 걸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내게 사람보다 더 끌리는 명분은 없었다. 월요 미사에 가다가 우정이 생겨 버렸다. 새만금을 지키려다 친구가 생겼다.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식구다. 그렇게 나는 가끔 식구가 되었다.

 

딸기 셰프의 정찬 디너와 프리타타와 수제 빵이 있는 조식 그리고 더덕 바리스타의 모닝 원두커피가 종종 생각난다.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요?" 물어주는 완두의 발랄한 초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안식년 끝나고 돌아온 오이의 위트가 더해졌다. 다들 주방에서 요리할 때 접시 위에 스푼과 포크를 살며시 놓으시고, 설거지 끝난 밤중에 그릇 정리를 싹 해 놓으시고 커피 원두도 로스팅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계시기에 평화바람 공동체는 17년째 깔끔하고 질서 있게 유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모인 식탁 위로 까르르 쏟아지는 웃음이 싱그러웠다.

 

수라갯벌의 철새, 하제마을의 팽나무, 그 옆에 사는 평화바람. 살아있는 그들이 그곳에 있어서 좋다.

 

팽팽문화제는 매달 셋째 일요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세 시(겨울철엔 두 시)에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한다.

 

CKB01635_금강.JPG

 

 

2024년 12월 31일 수라갯벌 일몰

 

할 말을 잃은 12월. 

애도도 위로도 분노도 미처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

12월 30일 계절학기 수업은 묵념과 눈물로 시작했다. 

2024년 마지막 날 수업에서는 올 한해 감사와 사랑과 사과를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라는 과제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마음은 무안공항으로 가고 싶었지만 저물어가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서쪽으로 달렸다. 반년 동안 노래했던 수라 갯벌, 북풍이 불어대는 새만금에 도착하자 올해 마지막 태양이 막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새들도 숨었나 보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몫인데

 

응시는 무얼 남길까?

해는 지기 전에 가장 붉은데

 

감사와 사랑으로 마무리하려던 2024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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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바란다면

부디 평안을 빕니다.

 

삼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79 고인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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