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강렬한 햇볕에도 텃밭의 농사는 나름대로 풍작이다. 초보 농군은 과연 심은 씨가 잘 자랄까 애가 탔었고 예쁜 연두색 싹이 돋아 나오는 게 신기하다 싶었는데, 일주일 집을 비우는 동안 장마가 지나간 뒤에 가보니, 텃밭이 온통 초록으로 덮여있고 과실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가지도 탐스럽게 보라색을 자랑하며 매달렸고 고추도 수도 없이 달려서 탱탱한 초록빛을 뽐내고 있다. 적로메인은 꽃대까지 올라왔고 트레비스와 치커리도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밀집하여 민트 허브와 자리싸움을 한다. 단호박은 아예 담장을 넘을 기세인데다가 다른 밭도 이미 침범하고 노란 호박꽃 바로 아래 둥근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방울토마토는 원줄기 놔두고 곁가지를 제거했건만 어느새 곁가지가 훌쩍 자라서 토마토 방울을 구슬처럼 대롱대롱 매달아 지지대가 주체를 못하고 쓰러질 지경이다. 강낭콩도 잎을 들추니 콩깍지가 숨어서 분홍색 얼룩무늬를 한 채 익어가고 있다. 무릎 아래까지 자랐던 옥수수도 어른 키만큼 커졌다. 씨를 뿌려놓은 조선 아욱도 토끼풀처럼 싹이 나온 걸 봤는데 잎이 퍼지게 올라왔다. 오크라는 꽃이 피어 기다란 오각형 열매를 매달고 있다. 부추도 열심히 길이성장과 부피성장 중이다. 당귀는 너무 더운지 맥을 못 추고 있다. 머위는 한번 줄기를 다 베어냈는데 다시 새롭게 무성하게 올라왔다.
꽃을 많이 심지 못한 앞마당 꽃밭에도 천일홍 꽃이 피고 해바라기도 어느새 키 높이로 자라 꽃봉오리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천사의 나팔이라는 백합 종류도 한번 피고 그 다음 꽃봉오리는 보이지 않아 옮겨심기 몸살이를 하나보다.
여름철 장마와 햇볕의 힘으로 이렇게 무섭게, 정말 무섭게 식물들이 자라는구나하고 감탄하는 중이고, 한편 그 변화는 초보농사군 실력으로 감당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이 수확물들을 요리할 수 있는 나의 요리능력이 일천하지만 일단 가지요리부터 도전해보기로 한다. 덤으로 샐러드는 싱싱함 그 자체로 맛을 유지한다.
오늘은 날이 밝아오는 새벽 5시에 밭에 나가 한 시간 반 정도 수확을 하였다. 가지, 고추, 강낭콩, 방울토마토, 오크라 등. 집과 나무 사이의 빈 공간만 있으면 집을 짓고 영역을 주장하던 거미와 거미줄을 빗자루로 제거하였다. 그리고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땡볕에 요 커버 등 빨래를 널었다. 아, 한 여름 더위의 장점은 빨래가 정말 보송보송 잘 마른다는 것. 이것이 시골살이 맛의 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