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4살 때부터 콩팥병으로 혈액투석을 하고 있다. 20대 때 다음카페 ‘신장병환우들을 위한 모임’ 카페지기를 했었다. ‘아라야’라는 모임을 통해 인문학을 공부했고, 사회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4년 서울시 힐링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통해 치유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나를 위한 글쓰기’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글을 계속 해서 쓰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게 .....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장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공부도 못했고, 운동도 못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 단점들을 보완해 주는 것이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할머니, 어머니, 형, 동생까지 모두 아픈 나를 챙겨주었다. 지금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나의 장점이 무엇일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찾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도시락은 반찬을 공유하며 나눠 먹어야 하는데, 나는 같이 먹자고 할 수 없어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다닐 때 아프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무시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다. 내가 다가가지 못했을 뿐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한 달 정도 입원하고 학교에 가면 10페이지 이상씩 진도가 나가 있었다. 수업을 도저히 따라 갈수가 없었다. 몸이 아프다 보니 운동도 못 했다. 투석을 시작하면서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운동장 한 바퀴 달리기를 해도 여자아이들 보다 늦게 들어왔다.
나의 단점을 보완해 주었던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할머니는 아픈 나를 늘 걱정하고 챙겼다. 귀한 과일이나 과자가 생기면 다른 형제들 몰래 나에게 주곤 했었다. 어머니는 아픈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30년 전 투석은 돈도 많이 들고 힘들어서 가족들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돈 때문에 포기 하지 않기 위해 동사무소, 군청, 도청을 찾아다니며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하셨다. 한 번씩 입원 할 때면 일도 신경 쓰지 못하고 나를 간호했었다. 형은 내가 서울대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해 있을 때, 대학교를 휴학을 하고 퇴원할 때까지 병간호를 해주었다. 동생들도 아픈 나를 항상 챙겨주고 걱정해 주었다.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20대 때 온라인카페 환우모임의 운영자로 활동 했었다. 카페 게시판에 회원들은 답답한 마음에 질문을 많이 올렸다. 나는 그곳에 댓글을 달기도하고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운영자로써 모임을 주선하고 회원들이 나오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걸었다. 내성적이었던 나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소모임 ‘아라야’를 하면서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싫어했던 공부가 재미가 있었고 더 배우고 싶어졌다. 사람들과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 치유활동인 ‘맘프’를 하면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삶이 잘못 살아온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절망적인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사랑과 주위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들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환자들이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며 외롭고 힘들게 살아간다. 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사회에서 무시를 당했다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사느냐? 또는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에 따라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장점이 단점이 되어 무시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