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0 - 평화를 향한 철학적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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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0 - 평화를 향한 철학적 모험

새로운 사상이 기존의 사유체계를 실제로 대체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간혹 나타난 천재는 자기 시대를 외롭게 보내곤 한다. 알프레드 N. 화이트헤드(1861~1947)가 그 중 한 명이다. 물론 생애 전반부에 이미 수학, 논리학, 물리학, 과학철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외롭지만은 않은 삶을 보내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그의 생애 후반부 작업인 형이상학과 철학적 우주론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근대정신의 비극을 들여다보면서 인류문명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정신세계를 밝히고자 했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이 1970년대 이후 ‘탈근대’(postmodern)라는 이름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하지만 탈근대주의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알려진 해체주의에 기초한 상대주의적 미시담론은 탈근대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첨근대적’(mostmodern)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철학조류는 서구 근대사상사에서 발생한 큰 비극인 역사와 우주에 대한 전체적 비전을 상실한 ‘지식의 파편화’의 문제와 대결하지 않고 도리어 그 문제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탈근대 사상의 진정한 의미를 포괄적인 지평에서 제시한 철학자로 화이트헤드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빚어낸 ‘물질과 가치의 분리,’ ‘과학과 종교의 갈등,’ 이로 인한 “유기체를 전체상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습관”을 상실해버린 사상적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기계론(mechanism)에서 탈근대의 유기체론(organism)으로 이행을 가능케 할 형이상학과 우주론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에게 형이상학이란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에 반드시 적합한 일반적 관념들을 발견하려는 과학”이었는데, 그것은 근대정신이 깊어갈수록 더욱 크게 노출된 ‘과학과 종교의 갈등’과 ‘전문과학적 지식의 파편화’의 문제를 가장 근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기획이었다.

그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정초시킨 17세기 천재들이 했던 작업을 “(중세) 야만시대의 히스테리가 남긴 오점을 일소”하는 것이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이 구축한 근대사상의 특징을 “소박한 신앙에 기반을 둔 반합리주의 운동”으로 규정한다. 데카르트의 실체철학과 뉴턴의 기계론적 물리학에 기초를 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주의가 본래 추구하는 목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근대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관념이 죽은 물질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 ‘단순 정위’(simple location)되어 외적 ‘충돌’이라는 방식으로 운동한다고 전제하는 추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과학에는 오늘날 일반화 되어있는 관계성의 개념 즉,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유기체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우주의 실제성에 대한 고려가 있지 않았다. 화이트헤드는 그것을 근대사상에 담긴 “편협한 형이상학과 명석한 논리적 지성이 낳은 괴물”로 보았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까? 그는 사물 자체에 담긴 가치와 만물이 서로 맺고 있는 실제적인 관계성에 착안하여 “(추상적인) 원리에로 환원시킬 수 없고 굽힐 수도 없는 엄연한 사실들”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서, 환경과 유기체적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움’(novelty)을 탄생시키는 살아있는 우주 안의 ‘생명적 요소’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작업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19세기에 발생한 ‘낭만주의적 반동’부터 20세기 초반에 대두된 ‘상대성원리’와 ‘양자론’에 담긴 철학적 함의를 밝힘으로써 해결해 간다.

그의 철학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사라진 ‘신’을 형이상학에서 복권시킨 점이다. 신의 합리성이라는 전제로부터 세계의 모든 운동법칙을 연역해냈던 중세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인과율에 착안한 근대과학에 의해 대체된 후 신은 더 이상 근대사상의 중심담론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근대적 세계관에서 종교는 과학과의 사상적 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을 심화시켜갔으며, 이 사상적 대치 속에서 종교는 “안락한 생활을 장식하는 점잖은 형식 신앙으로 타락”하고, 과학적 지식은 “문명과 안전을 혼동”하며 사회적 진보를 가능케 할 모험의 비전을 잃어갔다.

화이트헤드는 신을 철학적 세계관 속으로 복권시키고, 우주가 창조적인 전진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움’(모험)을 만들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신을 다시 생동시킴으로써 화이트헤드는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의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과 우주론을 정립한다. 그것은 단순히 유신론적 철학의 복귀가 아니라, “생존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하여 인류역사를 질곡으로 빠뜨린 근대 후기문명을 극복하려는 것이요, 근대과학이 만든 편협한 문명의식을 채우고 있는 ‘힘의 복음’과 ‘획일성의 복음’에 저항할 수 있는 포괄적인 비전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문명의 궁극적 이상인 ‘평화’를 향한 모험이 가능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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