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가리
솔밭에 커다란 자루가 쌓여있다. 흙이 보일 정도로 깔끔한 바닥을 보니 솔잎을 모아둔 자루다. 소나무 낙엽은 솔가리라 불리는 좋은 땔감이었다. 긁어다가 거름 위에 뿌려 벌레가 꾀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놔두면 절로 썩어 거름이 될 텐데 사람은 참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낙엽 긁기가 나쁜 짓이 아니라 소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좋은 일이라고 한다. 솔잎이 거름이 되기 전에 낙엽 아래서 소나무를 죽이는 병균이 자라고, 소나무 씨앗은 낙엽이 걷힌 맨땅이 아니면 뿌리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솔가리 대신 연탄과 기름을 때면서 야산에 솔밭이 점점 줄어든다고도 한다. 우리가 영험하게 여겼던 소나무는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가축이나 작물과 다름없는 나무인 셈이다. 손바닥만 한 개나 고양이가 들에 살 수 없듯, 길 잃은 양이 자란 털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되듯, 난초가 바깥바람을 쐬면 금방 시드는 것과 다름없다.
원시림이 없는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절로 자라 숲을 이루었을 리 없건만, 그 강건한 듯한 모습에 멋대로 관념을 덧씌워 좋아했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가 소나무에 새겨넣은 지조와 절개와 풍류를 소홀히 하자 소나무도 생기를 잃었다. 정말로 그렇게 좋아했다면 쓸모가 없어졌다고 이처럼 금방 마음에서 멀어질 리 없고, 집 짓는 데 방해가 된다고 쉽게 파헤쳐 버릴 리 없다. 꽃에도 별에도 나무에도 강산에도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엮어 넣는 게 인간이고,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이름을 잊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삶의 모든 곳에서 이야기를 망각했고 이야기에 얽힌 것들은 사라져버렸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몇 그루 옮겨 심은 솔밭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느끼는 사람이 한둘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