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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나 이야기 하나

posted Jan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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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_resize.jpg

 

 

슬픔이 우리를 아프게 하거든

    슬픔이 우리를
    아프게 하거든
    더 이상 품고 다니지 말자
    낳아버리자!
    눈물과 함께 낳아서
    그 슬픔의 얼굴을 보자
    슬픔은 아름다운 것
    그 얼굴 속에
    위로의 복이 담겼네.

    우리는 ‘슬픈 위로자’가 될
    운명이니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 


인생은 희로애락喜怒哀樂 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이 네 가지 감정을 옛 부터 인생살이의 대표적 감정이라 보아 왔습니다. 어느 문화권, 어느 언어에서도 이 네 가지 단어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니까요. 오늘은 이 네 가지 감정 중에서 ‘슬픔’에 대해 생각 해 봅시다.

여러분 잠시 눈을 자신에게로 돌려 보실 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슬픈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슬픔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손님이기도 합니다. 오지 않기를 바라는 손님, 그러나 피할 수 없었던 손님이기도 하지요.
 
이 시는 “슬픔이 우리를 아프게 하거든 낳아서, 그 슬픔의 얼굴을 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슬픔은 아름다운 것 그 얼굴 속에 위로의 복이 담겨있네“라고 읊으므로 슬픔에 대한 반전을 기대 하게 됩니다.

슬픔이 아름다울까요?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시인은 슬픔의 얼굴에서 위로의 복을 보고 있습니다. 슬픔과 위로가 딴 얼굴이 아니고 한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슬픔은 보통 우리가 기획하거나 초대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고 ‘당하는’ 것이지요, 수동적으로.
그런데 신비한 것은 큰 슬픔을 당한 이들이 바로 위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설적이지요. 상처 받은 이가 치유 자가 될 수 있다는 이치와 통하는 말입니다.

이런 약간 상식 저 편에 있는 사고들은 어디서 유래 된 것일까요? 아마도 불교인들은 석가에게서,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서 그 원형을 보았고 그렇게 믿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원형이란 영어로 ‘Archetype’이란 단어인데요,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원조’란 뜻에 가깝습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봅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 난 일입니다. 한 달이 넘도록 뉴스에 올라 대부분 국민들이 알고 있는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이야기를 기억 하시지요? 그는 첫 직장을 얻게 되어 어머니와 함께 무한히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회사에 입고 출근하라고 멋진 양복 한 벌과 넥타이를 사서 집에서 입혀 봤습니다.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은 곱고 여린 얼굴에 새 양복을 입고 함께 행복 해 하는 모자의 영상이 TV화면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모자의 행복의 순간이 아직도 제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직장은 양복과 넥타이를 말끔히 차려 입고 출퇴근 하는, 꿈에 그리던 그런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터는 앉을 수도 설 수도 없고, 전기불은 너무 침침했고, 새까만 먼지가 가뜩 뒤덮인 곳, 그리고 들어 보지도 못한 이름 ‘Conveyer Belt’ 라는 물건을 이동시키는 장치가 있는 곳 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열심히 일 했습니다. 그에게는 일의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일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어둠 속을 더듬으며 일만 했지 안전하게 일하는 방법을 아무도 충분히 가르쳐 주지 않았나 봅니다. 그는 어느 순간 자기 몸이 물건처럼 그 벨트에 끌려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처참하게 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죽었는데도 그 벨트를 멈추지 않고 가동하고 있었답니다. 그 현장 목격자의 증언을 듣고 차마 저는 그 처참한 광경을 제 입으로 옮기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생산과 이윤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산이 사람목숨보다 더 중요한가요? 생산은 사람의 일이지만 ‘생명’은 감히 사람이 다쳐서는 안 될 영역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어머니의 슬픔은 그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었지요. 우리도 이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일원이기에 그 슬픔을 공유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모자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오늘 이렇게 짚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마저 무너질 것 같은 슬픔을 안고도 홀로 골방에서 몸부림치지 않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들이 왜 생명을 잃었는지 세상에 알려야만 했습니다. 그보다도 그 엄마는 용균이 같은 아까운 생명들이 다시는 희생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세상에 대고 외쳤습니다. 청와대에, 국회에, 매스컴에 경종을 울리며 바쁘게 뛰었습니다. 슬픔을 품고 있지 않고 낳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 슬픔의 얼굴을 보게 되었지요.

긴 이야기 짧게 하자면 그 결과로 최근에 ‘김용균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산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 ‘산재안전법(산안법)을 비로소 만든 것입니다. 시민들은 잇달아 김용균 추모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지금도 외칩니다.)

그 어머니는 말 했습니다.
“나는 이제 우리 아들을 볼 면목이 섰어요!”
이 말이 우리들의 슬픈 마음을 달래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용균이 같은 젊은 노동자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위로와 안도감을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한국의 수많은 젊은 아들딸들이 이 나라의 산업발전 그리고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희생재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슬픔으로 씨 뿌린 그 열매를 거두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피터 루비(Peter Rubie)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다; 이야기는 누구에게 일어났느냐 이다.“라고.
저는 여기 덧붙여 할 말이 생각납니다.
“이야기의 진실과 의미는 누가 그 이야기를 하느냐”에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 하나를 통해서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슬픔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동반하는 위로자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슬픔으로 씨 뿌린 우리들에게 행복과 위로의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그 약속 간직하고 싶습니다.


    슬픔이 우리를 아프게 하거든
    While Sorrow Pains Us


                         Young Kim
 
    Let’s not bear it any longer
    Let’s give birth to it in tears
    and look on
    The face of sorrow
    Beautiful is sorrow
    On it’s face
    The promise of comfort

    Since it is our fate
    To become a“sorrow-stricken comforter,”
    We cannot be otherwise.

    Friends remember!
    If sorrow is our fate
    Comfort is the promise.
    We shall be healers and comforters
    In this world as we are sorrowful.
    Peace be with you all!

     *  *  *
    Friends remember!
    If sorrow is our fate
    Comfort is the promise.
    We shall be healers and comforters
    In this world as we are sorrowful.
    Peace be with you all!

        
김영-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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