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맥주를 탐하는 지식 12 -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적당히 마셔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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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목사의도원 주를 하는

둘,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적당히 마셔라 쫌!

          (에일 종주국 영국, 그리고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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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겨울을 대표하는 단어라면 단연 ‘삼한사미(三寒四微)!’
잠시 찬바람이 불다가 따뜻해지면 예외 없이 대기 중 먼지 농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올라가곤 한다. 잠시라도 외출을 할라치면 모래알을 뿌린 듯 눈은 뻑뻑하고, 마스크는 어느덧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뭐 나부터 그리 환경적으로 살고 있지 않은 마당에 누굴 탓하랴. 다만 서풍이 불면 여지없이 대기가 ‘엉망진창 상진창’ 됨이 자명한 마당에, ‘대한민국 대기오염은 우리와 무관하다’는 중국 측의 발언을 접하자니, 그 호방한 대륙성,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 기상에 경외심이 일어남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나는 건, 그 사이 목에 낀 먼지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또 ‘이렇게 갈증 운운하면서 슬슬 맥주 이야길 꺼내겠구먼. 드립 스킬이 너무 뻔한 거 아냐?’라는 분들의 비난이 즉각 나의 관심법에 감지된다. 하지만 뭐....... 이정도도 사실 선방한 것 아닌가? 게다가 1911년 맨체스터 회의에서 ‘스모그(Smog)’라는 단어로 대기오염문제를 가장 먼저 개념화시킨 나라가 영국이니, 미세먼지 문제를 언급하다가 영국 맥주이야기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구성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에 성냥불이라도 댕겨보려는 ‘아싸’의 노력에 부디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영국맥주와 수도원 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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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내가 아는 한, 인간이 거주해온 지역치고 술이 없는 곳은 없다.(혹시 없는 곳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그런 점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유럽대륙 서쪽바다의 섬에도 그 옛날부터 술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최초 삼림지대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벌꿀을 채취해 술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만 들어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꿀 술! 하지만 제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꿀벌들이 사람들의 몫까지 따다 저장해 두진 않았을 터, 꿀은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꿀 술 역시 귀한 존재가 되었고, 곧 지배자들이 몽땅 차지해 버렸다. 하지만 술 한 잔이 그리운 것이 어디 귀족만의 욕망이랴? 서민들은 꿀을 대체할 당분을 고심하게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발아시킨 보리알, 즉 ‘맥아’였다. 처음엔 맥아로 빚은 음료와 벌꿀 술은 모두 ‘미드(Mead)’라는 이름으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저 천한 것’들과 같은 음료를 마신다는 것이 내심 불편했던 지배계급에 의해 꿀로 만든 술만 미드로, 곡물로 만든 것은 ‘에일(Ale)’로 구별되었다. 한글의 처음이 지배자들의 천시였던 것과 같이, 이 위대한 술, 맥주에 대한 고대 영국의 지엄한 분들이 가졌던 첫 인식 역시 ‘비하’였던 것이다. 이 섬의 술 이야기가 다른 유럽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BC1세기 로마의 침공 이후였다. 브리튼 섬의 새 지배자로 들어선 로마인들은 와인을 극상의 술로 평가하는 반면, 이집트, 게르만을 통해 알게 된 맥주는 2류 음료쯤으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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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좌)와 켄터베리수도원 맥주(우)

 

 

음료 중에 보리나 밀로 만든, 다소 포도주와 비슷하고 품위가 떨어지는 액체가 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중에서

 

그러니 점령지의 에일 역시 하찮게 여겼을 것은 자명할 터, 에일은 새로운 지배자들에게도 역시 천대받는 술이었다. 로마통치시기 지배세력 중 고대 영국 땅의 보리음료를 주목했던 이들은 포교를 목적으로 브리튼 섬에 도착한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 적응하기 위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으며, 교회를 세웠다. 초기 그들의 정착과 포교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난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는데, 그것은 와인의 안정적 확보였다. 지중해지역 문화에 익숙한 수도사들에게 있어 와인은 미사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음료였다. 하지만 본토에서 가장 먼 변방 중 하나였던 브리튼 섬까지 오는 동안 막대한 분량의 와인항아리가 깨져버렸다. 그게 아니더라도 장거리 이동 중 변질되기 일쑤였고, 일부는 노상강도나 반로마 저항군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도착한 소량의 와인마저 주둔군 사령부 등 다른 지배세력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추진되었던 포도재배역시 낮은 기온 탓에 실패했다. 이런 이유로 교회가 겨우 확보한 와인은 거의 전량 미사용으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마른 목을 움켜쥐고 허덕이던 수도사들은 서민들의 에일을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 수도원과 에일, 즉 상명발효맥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
 

켄터베리에서부터 시작된 영국수도원들은 하나둘 에일을 빚기 시작했다. 초기, 수도사들의 어설펐던 실력은 계속된 양조와 기술축적 및 전수를 통해 유튜브에서 가짜뉴스 생성되듯 급격하게 자라났고, 오래지 않아 민간 양조 기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수도원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래지 않아 이 기막힌 맛은 순례를 위해 수도원을 방문했던 사람들을 통해 사방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영성수련과 성자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형성된 수도원 인근 숙박시설과 맥줏집을 통해 수도원 맥주가 유통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수도원의 중요 수입원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맥주는 순례자 뿐 아니라 당연히 수도사들도 마셨다. 노동과 수행의 퍽퍽함과 수도원의 적막함 속에서 유일한 낙이었을 맥주는 수도사들에게 있어 생명수와도 같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 생명수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분들도 여럿 계셨던 듯싶다. 6세기 이후 영국 수도원에서는 과음으로 해롱거리는 수도사들에 대해 엄격한 규율로 다스렸다.
 

성가를 부를 때 혀가 풀린 자는 12일 동안 속죄해야 한다. 구토를 할 정도로 만취한 자는 30일간 속죄한다. 성찬 빵마저 토할 만큼 심하게 마신 자는 90일간 속죄한다. 속죄기간 중에는 빵과 물만 제공된다.
                                                   -중세 영국수도원 계율 중에서

 

맥주를 사랑하는 이에게 최대 90일간 금주령을 내리다니! 위와 같은 규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그와 같은 고주망태들 역시 존재했었다는 의미한다. 당대 인근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생산시설에 살았던 수도사들이 에일에 흠뻑 빠졌던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그들은 맥주 한 잔을 통해 얻었던 위로, 그 한잔의 즐거움에서 얻은 힘을 통해 녹록치 않은 수행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축적된 신앙과 다양한 학문적 지식은 이후 세대의 기독교신학과 인문학적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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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수도원에서 축적된 맥주 양조기술은 영국을 에일종주국의 위치에 올려주었고, 한자동맹과 뮌헨 등 유럽대륙지역의 양조술이 일가를 이루기전까지 홀로 맥주천하를 호령했다. 지금도 영국에는 수도원 맥주전통이 여러 군데 남아있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펍 가운데는 ‘장기판(Checker)’이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앞서 설명했던 수도원 앞 숙박시설이나 맥줏집이라면 어디나 펼쳐졌던 놀음장기가 전통이 되어 펍의 상징이 된 것이다. 아예 지명이나 술집 이름이 수도원과 연관된 경우도 있다. 또 런던에는 ‘블랙플라이어(Blackfriar: 검은 수도사)’라는 동네에 같은 이름의 펍이 있는데, 이는 런던에서도 가장 오래된 맥줏집 중 하나이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무슨 흑마술이라도 시전할 것 같은 악마의 하수인 느낌이지만, 이는 사실 도미니크 계열 수도사들이 입었던 검은 색 외투에서 유래된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옛 도미니크 수도원 양조장의 맥주는 맛 볼 수 없다 해도 유구한 영국에일의 전통 가운데 수도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Tip!
영국을 대표하는 맥주는 비터와 포터 에일을 들 수 있겠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맛 볼 수 있는 맥주로 플러스에서 출시하는 런던 프라이드를 추천하고 싶다. 이 맥주는 영국식 비터 맥주가 가진 맛의 특징을 가장분명하게, 그리고 가장 대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에일 중 하나다. 런던 프라이드를 한 모금 들이켜면 먼저 달콤 쌉싸름한 맥아 맛이 향긋한 정취와 함께 마중을 나온다. 이후 입안을 기분 좋게 채워주는 바디감 속에서 풍부한 과일 맛을 선사한 후, 깔끔하게 쓴 맛의 목 넘김으로 마무리 된다. 맥아와 홉의 어우러짐이 작은이들이 맞잡은 두 손과 같이 견결하다.

열세 번째 이야기 :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그리고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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