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엔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최근에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많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이지요. 일제강점기, 일본군위안부, 한국전쟁, 군부독재, 세월호 등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큰 트라우마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는 엄청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자신감을 잃게 만들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믿음을 갖게 하여 본인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외로운 삶을 살게 하는 일상의 경험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숨겨진 유행병이라는 소제목으로 발달과정의 트라우마를 다루기도 합니다.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들은 “그만 잊어라.”, “너만 힘드냐,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게 산다.” “그냥 용서해라.”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고,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라우마는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그 경험이 마음과 뇌 그리고 몸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 경험은 마음과 감정에도 흔적을 남기고, 즐거움과 친밀감을 느끼는 능력에도 영향을 주고, 심지어 면역체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저자는 트라우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머릿속의 문제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트라우마에 반응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신경과학 지식으로 뇌와 정서, 기억에 대해 설명하며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그러하기에 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도 몸과 마음 그리고 뇌가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치료방법으로 뇌 회로의 재연결, 타인과의 관계 재연결, 마음챙김, 요가, 연극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함께 몸을 움직이며 즐겁게 참여하는 활동은 트라우마 치료에서 필수적이라는 설명과 함께... 흥미로운 내용이 많으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타인과의 관계 재연결에 관한 부분에서 ‘사람과의 접촉과 조화는 심리학적인 자기 통제감을 찾는 원천이자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종결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공지영 작가의 오래 전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사춘기 시절 성폭행의 충격과 가족들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상처를 지니고 있는 문유정은 3번째 자살을 시도하며 삶을 포기하고자 합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정윤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이제 행복이 오는가했더니 살인 누명을 쓰고 자신을 변호할 힘없이 사형집행으로 삶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세상과 차단되어 철저히 혼자가 되었고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둘의 만남은 처음에는 불편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고립되고 상처 받은 마음이 자신의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과 연결되면서 치유가 시작됩니다.
기쁜 감정도 아픈 감정도 모두 느낄 수 있고, 그 감정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고 정서적 뇌가 보내는 고통스러운 메시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타인의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