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CCTV철탑에 이웃이 산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세상을 꿈꾸는 아줌마의 죽 배달 일기
(강남역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님 농성장에서 2019.8.30. )
학부모들에게 꼭 반갑지만은 않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알아서 챙길 만큼 훌쩍 커버려 느지막이 아침을 시작할 여유를 갖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게을맞은 엄마를 소환해 공동 방학숙제를 하달한 이웃이 있었으니 동무를 잘 사귀어야한다는 어른 말씀은 예부터 틀림이 없으렸다.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격일로 죽 쒀서 배달하기. 하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고마운 숙제였다.
종교사회단체의 일회성 집회로 할 일을 했다는 마음으로 잠시 다녀가는 이들과 달리 더위와 소음에 대한 어떤 대비도 없이 도로 한가운데 화단의 좁은 농성장에서 밤낮없이 마음 조일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님의 동지들(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재용님.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박미희님)에 생각이 미친다면 지근거리의 이웃으로서 죽을 쑤어 올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운동 삼아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연대하는 이웃들과의 유쾌한 만남이라는 선물까지 얻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낮 12시 임무를 함께 맡은 이와 보온죽통 세 개를 메고 격일로 출근도장을 찍으면 농성장 동지들이 도르래로 죽을 철탑위로 올린다. 오랜 기간의 단식으로 처음에는 미음부터 시작했지만 고비를 넘기자 죽 양을 늘려도 된다는 농담을 던질 만큼 전화 목소리에 점차 힘이 담겼다. 동지들과 얼굴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의사의 권고를 살짝살짝 넘겨 도르래를 올리는 회수가 잦아지거나 우리끼리 맛난 점심 먹으러 간다며 놀려드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이심전심의 공범이 되어 철탑 위 고객 인기에 영합하는 죽 메뉴 경쟁과 지지방문 한 이의 정성가득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철탑아래에서 버젓이 폭식투쟁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급기야는 잦아진 도르래 운행에 대한 경찰의 의심 섞인 트집에 그렇다면 한 끼 정도는 경찰이 책임지는 것도 좋겠다는 넉살로 되받아치는 여유마저 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삭막한 농성장이라고 거기에 힘든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남에만 부유함과 비뚤어진 교육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강남역 CCTV 철탑 농성장의 동지들은 유목민 이웃으로 우리 곁에 왔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운 좋게 살아남은 우리도 언제든 같은 처지에 내몰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릴 적 마을에는 집들이 높은 비탈에 많았다. 여름수련회 중 집중호우에 교회선생님들과 반 지하 친구 집으로 뛰어가 바가지로 물 퍼내던 기억, 어쩌다 싸락눈이라도 오면 밧줄 감은 신발로 비탈 꼭대기 이웃집을 오르내렸던 기억은 문화충격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양한 주거환경의 여러 계층이 섞여 살았지만 뻐김과 부끄러움은커녕 서로 나누며 자연스레 어울려 살았다. 신앙이 사회정치적 분야까지 미치진 못했지만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가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와 마을의 생활공동체로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려져 있었고, 그런 어른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어디 사느냐는 물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니 인싸니 앗싸니 하는 말이 목회자 입에서 나올 일도 없었다. 여기저기 골목을 돌아다니다 용변이 마려우면 가까운 친구 집에 들어갔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나 아닌 아이들이나 함께 어울려 시장바닥이나 교회마당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현대판 호패인 양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곳이나 마음을 나누고 연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웃이 여전히 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6시간숙면이 숙원이었던 4년여의 수유기간 연년생이나 다름없는 두 아이를 끼고 밤새 젖을 빨리다 이른 새벽 몰려오는 허기에 꾸역꾸역 넘겼던 삼겹살 서너 점은 당시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폭식투쟁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기간 내 밑바닥을 마주했고 예수니 하느님나라니 지사연(志士然)하던 나 또한 별 볼 일 없는 본능적 동물임을 알았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 역시 자기연민이 아닌 이웃들과의 진심어린 대화였다. 나 아닌 것들에 대한 마음 씀으로 외롭고 쓸쓸한 이들과의 우정으로 그리고 눈물로, 사람은 참 자유에 다가갈 수 있음을 차츰차츰 알아갔다.
어린 시절 아이가 적은 문구가 식탁위에 놓여있다. “이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교육적 목적이라기보다는 매일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것이다. 하루치 생활비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 예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너희 스스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대로 살며, 티를 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 어릴 적 이웃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나누며 소박하게 어울려 지내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세상을 꿈꾸며, 나에게 선물 같은 임무를 준 철탑 위와 아래의 이웃들과 오늘은 또 무슨 유쾌한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생각에 이 아침에도 나는 히죽거리며 죽을 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