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카메오 8 - <올드보이>, 영화의 미술 폄훼

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8. <올드보이>, 영화의 미술 폄훼


결코 잊을 수 없는 표정이 있다. 절망, 좌절, 분노, 슬픔, 자포자기, 생존본능, 비웃음, 넋 나감 등등. 어느 한 단어로 콕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박찬욱과 최민식이 만들어낸 old boy face”라고.
실재로 이 하나의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과 배우는 무척이나 많은 공력을 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관객은 마치 모나리자의 신비스러운 표정을 기억에 남기듯 <올드보이> 한 편의 영화를 이 표정 하나에 응집시켜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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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감독은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이 표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하나의 그림을 등장시킨다. 감금된 방에서 최민식이 이 표정을 지으면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림.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의 <The Man of Sorrows>. 여기에 더해 그림의 하단에는 미국의 시인 엘라 윌콕스의 시 <고독>의 첫 구절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을 굳이 써넣었다.
여기서 사달이 발생했다. 문제의 그림은 정확히 말하자면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을 누군가가 고의로 변조하고 왜곡한 그림이다. 박찬욱 감독의 요구로 앙소르의 그림을 입맛에 맞게 뜯어고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앙소르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술사가에 따라서는 현대 미술의 개척자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화가이다.
앙소르의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미술사에 수없이 소재가 되어온 ‘수난의 그리스도’ 상을 담은 것이다. 그렇기에 원작에는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다. 영화 속의 위작은 가시면류관을 지워버렸고 색채도 뜯어고쳤으며 그림의 크기도 다르다. 과연 이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양해되고 통용되는 관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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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단지 한 소절 스쳐지나가는 노래조차 영화의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작곡자, 편곡자, 연주자까지 꼼꼼히 명시된다. 그러나 영화 속에 사용되는 그림은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은 스페인의 알모도바르 감독이나 우디 앨런 감독 정도가 되어야 화가명, 작품명, 저작권자 등이 명시될 뿐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그냥 소품처럼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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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독방에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다. 18세기 영국의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린 사무엘>이 그것이다. 이 그림은 영화에서도 글자가 새겨 있듯이 “오늘도 무사히…”로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에 어쩌면 소품 취급하는 것이 양해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박찬욱-최민식이 창조한 ‘표정’만큼이나 강렬한 도발과 감정을 담은 앙소르의 예수상을 아무 말 없이 변조해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감스러운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2019년 상영된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5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올드보이>와 마찬가지로 영화(드라마)로서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의 죽음>을 ‘훼손’한 것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19세기 말에 그려진 이 작품은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인 레핀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올드보이>의 앙소르 작품이 다시 그린 ‘모작’이었다면, <체르노빌>의 레핀 작품은 원화의 사진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가로형의 그림 양쪽을 싹둑 잘라내어 그림의 역사적 배경을 사상한 세로 그림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후 정신 나간 듯이 그 아들을 붙들고 있는 난폭한 러시아 황제 이반 4세는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하였다. 대형 핵 재난을 당한 소련의 고위 관료들이 고르바초프와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 장소 앞 복도에 걸린 이 그림은 영화의 분위기와는 적절하게 어울리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원작을 이렇게 훼손해도 되는 것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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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그림을 훼손해서 영화에 사용했다는 점만 무시한다면 앞서 언급한 두 경우 모두 영화의 분위기 또는 주연배우의 심리나 감정 상태를 미술작품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TV드라마 <체르노빌>을 언급한 김에 한 가지 모범적인 TV드라마의 사례를 끄집어내보자.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처음에는 미국의 지역 케이블을 통해 방영되다가 점차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지상파를 통해 전국 네트워크에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명탐정 몽크>의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몽크가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그림 앞에서 혼자 주절거리는 장면이 나온다(실제로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몽크가 어떤 사람인가? 그의 강박장애는 결벽증,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등을 포함하여 312개나 되며 심지어 우유에도 공포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런 몽크의 특징을 하나의 그림을 통해서 강렬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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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하러 왔다가 엉뚱하게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한눈을 팔면서 “이것이 뭐지요? 이게 나네. 나.”라면서 그림에 표현된 정신적 분열상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한 장면을 통해 탐정 몽크의 강박장애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어 8년 동안 시즌 8을 이어가게 된다. 한 순간 주인공이 집중하는 한 폭의 그림을 통해서 감독이 묘사하고 싶은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들추어내는 아주 잘 구성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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