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5G와 계백장군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들이닥치는 두려움은 수천 년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도 가본 적 없어 이정표도 없는, 길 아닌 길은 언제나 깊은 숲으로 이어져 아무리 발돋움을 해보아도 멀리 볼 수 없다. 인적이 드물어 물어볼 수 없을 듯 하지만 불가사의하게도 가까운 나무 밑에는 천년은 살았을 듯한 노인이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인은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명쾌하게 알려주는 법은 없다. 무언가 철학적인 무언가 예언적인 말을 들려주며 어느 길을 택하던 책임은 나그네에게 있다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약간의 사례를 하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를 적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진다. 이제는 약간은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영웅은 길을 뚫어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마다 장승이 서고 미지의 길이 사라지고 어디로 통할 길인지 모를 리 없게 되었을 때, 그래도 사람들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모르는 길 끝에 있는 괴물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선택이라는 것,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갈림길에는 옛날에 사라진 영웅을 모시는 ‘현자’가 있어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현자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사위를 굴리고 동전을 던지고 별을 바라보고 동물의 피를 뿌려 가르침을 갈구했다.
가로등 밝은 길을 인공위성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가는 우리도 갈림길에 다다르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현자’들은 죽었고 미신으로 멸시받아도 가르침은 아직도 필요했다. 이제 구름 속 어딘가 있는 지식의 덩어리가 최적의 선택을 뽑아주고 우리는 두려움을 덜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부실한 인간들의 가르침은 필요 없다. 사람의 실수는 기계의 정확함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5G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지시에 우리는 선택하는 두려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따라가기만 하면 누군가 갔던 길은 누군가 도달했던 목적지에는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하지만 이정표가 서고 장승이 마을을 지키고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어도 그 길은 누군가 걸었던 길. 프로스트가 가지 않았던 길도 누군가 벌써 갔던 길이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옛 영웅처럼 우거진 수풀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 했을 터이고 지금도 너무 똑바르고 너무 밝고 너무 지루한 길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런 평범한 길에서도 헤매는 평범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우리는 알기 힘든 옛 영웅을 따르려는 사람들. 천년을 살았을 노인이 죽어버린 지금, 계백장군을 모시는 ‘현자’도 5G를 통해 알려주는 인공지능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길은 두려움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