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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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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posted Oct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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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편집자 스토리북작업 자료)

 

아주 귀한 글을 받았습니다. 심심 개인상담을 받으신 내담자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조용히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큰 울림이 전해집니다.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힘을 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흔들리며 피는 꽃

 

2017년 12월 25일, 차라리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장이 빠르고 크게 뛰었다. 쉬지 않는 심장이 멈추기를 바랐다. 무섭고 두려웠다.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떻게 해도 진정되지 않아 다음 날 정신과를 찾았다.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이런 것들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우울한 기질도 아니었고, 어려움 따위는 항상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17년 가을을 지나며 한순간에 삶이 지옥으로 변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대안적인 삶을 만들자며 함께하던 이들이 모두 나를 죄인이라 비난했다. 공동체교회 리더인 사모의 잘못을 언급했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나에게 회개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회개할 게 없었다. 교회에서 제명되었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갔다.

아직도 생생한 12월 25일을 지나며, 내가 정말 죄인인가 보다 생각했다. 남편에게 목사에게 사모에게 무릎 꿇고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교회에서의 제명과 이혼 요구는 번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1월 26일, 7년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일했던 공동체 대안학교에서도, 행복한 날들을 꾸려가던 신혼집에서도, 10년을 헌신한 교회에서도 내 흔적을 지우고 낯선 도시로 홀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 일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니 사실 어떤 힘도 없었다. 24시간 중 22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가족 외에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지내다 친구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난 몇 달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너에게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조심스럽게 상담을 권유를 했다. 싫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내가 가졌던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동체적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상담은 가족들도 권유했었지만 이미 몇 번 거절한 상황이었다.

난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언제나 그렇듯 씩씩했고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씩 회복된 줄 알았다. 나도 내가 이제 멀쩡해 가는 줄 알았다. 친구와 가족이 그 후로도 몇 번 더 상담을 받으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지만, 내 힘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믿었다.

“너 울었니?”

함께 술을 먹던 지인이 물었다. 정신이 들었다. 울고 있었다. 특별한 주사가 없었는데, 술만 먹으면 눈물이 났다. 술을 먹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은 집으로 들어가 다음날 눈이 부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함께 술을 먹으며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자꾸 흘렀다. 몰래 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숨길 수 없는 상황까지 된 것이었다.

상담이 필요했다. 겉으로는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마음의 상처는 여전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길목’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상담을 지원받았다. 일반적인 상담소보다는 활동가들을 상담해 온 단체이기에 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담 날짜를 잡고 부담이 몰려 왔다. 내 이야기를 이해할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꺼내야 한다는 것부터 싫었다.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갔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었던 상황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곤욕이었다. 선생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으셨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셨고 나는 답을 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했다. 아는 사람이라곤 언니밖에 없는 낯선 도시로 이사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사람들은 금방 나를 좋아했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연히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났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났다. 너무 괴로웠다.

“미친년, 그런 일을 당해 놓고 또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만나고 다니니. 그냥 집에서나 있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씨는 자책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씨잖아요.”

이게 나인가. 그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또 다시 사람을 좋아하는 게 나인가. 그런 나를 나는 왜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한 번에 많은 질문이 몰려왔고, 선생님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던졌다.

“그러면 힘들지 않아요? 난
씨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데,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과 전혀 다른 질문을 하는 선생님의 말에 새로운 고민을 했다. 그렇게 15회기가 넘어서면서 스스로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던 일들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찾아졌다.

20회기가 끝나고 10회기가 연장되었다. 선생님은 상담이 끝난 후 상황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조심스레 상담을 정리해 주셨다.

30회기, 상담으로 내가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치유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끔찍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고 무참히 나를 버릴 거라는 생각부터 든다. 예전에 경험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심장이 뛰고 모든 생각이 멈춘다. 경미한 공황장애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이 구강기 결핍 같다고 이야기를 한, 사건이 터지고 생긴 입안이 헐도록 빠는 버릇도 여전히 존재한다. 꿈을 꾸다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고, 분노와 슬픔에 쉽게 휩싸인다. 그래서 집에 우울증 약을 상비해 놓았다.

30회기가 끝나며 선생님이 걱정을 하셨다. 여전히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집이 가까웠다면 상담을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직장을 다니며 2시간이 넘는 길을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또다시 손을 내밀면 된다는 생각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난 후 달라진 것은, 이제 어떤 상황이 생기면, 상담했을 때 선생님과 대화하듯, 천천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응답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준다. 혼자 우는 시간이 줄었고, 술 먹고 보이던 반응들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 10년 기독교 신앙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잃었던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슬프다. 또 기쁘고 즐겁다. 실수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게 나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건 되돌리면 되고, 안 되는 건 그 안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답이 찾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 난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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